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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생가 & 유적지

(2021.2.6)  다산문화관 & 출입문(실학연수)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선생은 참으로 존경스럽고 놀라운 분으로 조선의 보배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난해한 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산기념관 & 사당(문도사)다산은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의 총애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대목에서부터 난해해진다.  그의 생애 74년 중에서 약관(弱冠)을 갓 넘어 21살에 진사시에 합격을 했으니 21년을 빼면 53년 정도의 사회생활을 한 셈인데, 정조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관직 생활을 했던 것은 불과 10년 정도에 불과하고 36년 동안을 유배와 은거로 야인생활을 했다는 게 난해하다.         다산 묘역다산은 당시에 서학(西學)이라고 했던 서양의 문물 중 천주교에 형제자..

경기도 2021.02.18

양평 양강섬 & 남한강

(2019.1.29.)  양근성지와 물안개공원에서 양근섬으로 가는 길은 이런 부교(수위 변화에 따라 다리가 위아래로 뜨고 내린다.)를 건너가는데, 양강섬에도 양근성지 관련 기념물이 있으며, 가을의 모습(위)은 이렇다.       남한강의 어부보통 생업은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계속된다.물 위를 달리던 배가 빙판에 가까워지면 적당히 속도를 낮추면서 부드럽게 빙판 위로 올라간다. 이런 곡예를 할 날도 많지는 않을 거 같다.       물소리길양강섬의 산책로를 물소리길이라고 이름 붙였다.풍경을 감상하며, 시계바늘의 반대 방향으로 돈다.       산책로 & 길조호텔 길조호텔도 전망이 좋지만, 퇴촌 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서 Hill House의 전망도 좋고, 붕어찜으로 유명했던 팔당 물안개공원 주변의 전망도 좋..

경기도 2021.02.14

어머니의 무게

SBS 보도사진 신화사에서 2010년 1월 30일 중국 중남부 장시성의 난창(南昌)역에서 찍은 사진이란다. 등짐 짊어지고, 오른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왼손에는 꽉 채워진 배낭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이다. 이 사진이 보도되던 당시에 "14억을 울린 사진"이라고 했다지만, 사실은 최소한 30억 이상을 울린 사진 같다. 이 여인은 중국 쓰촨성 량산 이족자치주에 살고 있는 32세의 이족 여성 바무위부무(巴木玉布木)였다고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신화사는 이 여인을 찾아내기로 하여 있을 만한 지역을 모두 수소문하여 마침내 찾아냈다고 한다. 이 여인은 다시 한 번 중국인들을 울렸다고 한다. 사진 속 갓난아이는 세상에 없었는데, 신화통신 기자는 "하늘과 땅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다"고 표현했단다. 무게라는 게..

일상속에 2021.02.11

역고드름 - 연천 고대산

(2019.1.29.)   역고드름이 생성되는 과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닥이 암반이거나 콘크리트면 물이 결빙되면서 압력이 발생하여 위로 솟아오르며 만들어지는 것이고, 고대산 역고드름처럼 바닥이 흙인 곳은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결빙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라 한다. 형성과정이 어떠하든 간에 그 모습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역고드름에 가는 길은 신탄리역에서 사박사박 걸어가도 되는 거리인데, 가다 보면 반공이 지상과제였던 구시대의 유물들도 볼 수 있다. 미사일과 공중폭격으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현대전에서는 이런 것들이 아무 소용이 없는 유물이기도 하고 흉물이기도 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들의 전쟁 소꿉놀이 같은 것 아닌가! 내가 죽지만 않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스릴있는 게임이 바로 전쟁이..

경기도 2021.02.09

양평 물안개공원

(2021.2.6.)   양근성지와 청개구리의 설화 유래지라는 "떠드렁산"과 함께 있는 양평 물안개공원의 중심에는 가슴 큰 여자의 가슴만 한 동산 정상에 고산정(孤山亭)이 있는데 정작 산 이름은 없고 그냥 "물안개공원"이며, 절개된 산 밑바탕엔 가수 김종환의 노래비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황명걸 시인의 시비가 있다. 고산정(孤山亭) 고산정의 유래에 대한 얘기는 없고 근래에 건립된 것이라니 양평 일대의 남한강을 가장 가까이에서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정자를 세운 것으로 보이며, 시계(視界) 확보도 잘되어 있어서 눈과 가슴이 시원해지는 곳이다. 여기에서도 부래도(浮來島) 얘기가 나오는데, 섬이나 산이 떠내려오는 것 또는 산이 움직이는 것은 옛날에는 흔했던 얘기여서 옛날은 참 유연하고 좋은 세상이었을 ..

경기도 2021.02.07

연천 “조선왕가” 한옥 호텔

(2015.7.27)   요즈음 구례군 마산면에 있는 고즈넉한 한옥에서 진행하는“윤-스테이”가 뜨고 있어서 잠시 쉬어갈 겸 처박아 두었던 연천의 한옥 호텔 “조선왕가”를 끄집어냈다. “윤-스테이”를 각시와 함께 즐겨 보면서 연천에 있는 한옥 호텔 “조선왕가”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더불어 재인폭포와 한탄강의 추억들을 얘기한다. 그런가 하면 구례는 내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고향(?)이기에 지리산, 섬진강,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피아골 삼홍소(三紅沼) 등의 얘기가 나오면 둘 다 반갑게 반응한다.        “조선왕가”라는 이름은 설명문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명륜동에 있었던 "염근당"을 해체하여 이곳으로 이건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호텔 이용요금이 20∼70만원대이니 만만치 않은 금액일 뿐만 아니라..

경기도 2021.02.04

연천 숭의전 – 고려 유적

(2019.1.29) 왕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숭의전(崇義殿)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 있는 지금의 숭의전이 위치한 곳에는 원래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願刹)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었는데, 왕건은 송악(개성)과 평강(철원)을 오가며 앙암사를 자주 들렀다고 한다. 어수정(御水井) 이 샘물은 왕건이 개성과 철원을 오갈 때 앙암사에 들르면서 마셨다 하여 어수정이란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어수정 바로 옆에 홍살문(紅箭門)과 하마비(下馬碑)가 있으며, 이 길을 따라 임진강 쪽으로 돌아가면 숭의전이 나오는데, 몇 걸음 안 된다. 숭의전 전경 숭의전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묘전(廟殿)으로 1971년에 사적 제223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며, 이곳에 1397년(태조 6년)에 고려 태조 왕건의 위패를 모시는 사..

강화도 삼랑성 - 정족산성

(2021.1.20) 삼랑성 남문 & 북문 남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삼랑성(三郞城) 남문인 종해루(宗海樓)로 들어가서 전등사를 돌아본 후 사고지 뒤에서 이어지는 북문으로 가서 산성길을 걸었다. 삼랑성이라는 이름은 단군의 세 아들 부소(扶蘇), 부우(扶虞), 부여(扶餘)가 성을 쌓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는 이름은 정족산성의 모양이 발이 세 개인 솥을 엎어놓은 것 같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라는데, 그런 형상은 얼른 내 눈에 띄지 않았다. 북문에서 오른쪽 동문 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서 북문, 서문, 남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문에서 산성 걷기를 마무리했다. 북문에서 동문 방향으로 가는 동안의 성벽은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옛날 ..

강화도 2021.01.27

강화도 삼랑성 전등사

(2021.1.20) 뻔질나게 다녔던 전등사를 블로그에 올리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나부상(裸婦像)과 하누만 이야기 전등사(傳燈寺) 대웅전의 처마에서 지붕을 받치고 있는 목각인데, 이를 두고 신의 없고 탐욕스러운 여자의 이야기와 인도에서 유래한 하누만(원숭이)의 이야기가 있는데, 여자의 이야기도 의미가 있고 하누만의 이야기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대문 사진으로 올린다. 여자 이야기는 대웅전 건축을 총괄하던 도편수가 인근 주막의 주모와 사랑에 빠져 그 주모에게 자신의 모든 재물을 맡기고 살았는데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에 주모가 돈을 챙겨 야반도주하여 그렇게 부도덕하고 탐욕스러운 여자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전등사 대웅전의 지붕을 머리에 이고 살라고 지붕의 네 귀퉁이에 벌거벗은 각기 다른 자세로 앉혀두었다고 하여..

강화도 2021.01.23

연천 경순왕릉 & 고랑포

(2019.1.29)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이야기는 참 흥미진진하다. 경순왕릉(敬順王陵)은 우리가 봐서 알고 있는 왕릉에 비해서는 무척 소박하며 그 위치도 개경 주변이거나 서라벌 주변이 아니라 상당히 엉뚱한 연천 고랑포(高浪浦)라는 게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스토리를 더듬어 가다 보면 궁금한 것들이 대부분 풀리리라 생각하지만, 그는 왜 이렇게 외진 곳에 잠들어야 했을까? 경순왕(敬順王. ?∼978)이 허울뿐인 왕위에 등극하던 시기에는 왕건(王建. 877∼943)의 고려와 견훤(甄萱. 867∼936)의 후백제 그리고 기울어가던 통일신라가 각축하던 때였다. 각축의 과정에서 왕건과 경애왕(景哀王. ?∼927. 신라 제55대 왕)은 견훤을 견제하기 위한 짬짜미를 하였고, 영악한 견훤이 이를 알아차려 신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