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강화도 삼랑성 전등사

아미고 Amigo 2021. 1. 23. 00:15

 

(2021.1.20) 

 

뻔질나게 다녔던 전등사를 블로그에 올리는 건 처음인 것 같다.

 

나부상(裸婦像)과 하누만 이야기

전등사(傳燈寺) 대웅전의 처마에서 지붕을 받치고 있는 목각인데, 이를 두고 신의 없고 탐욕스러운 여자의 이야기와 인도에서 유래한 하누만(원숭이)의 이야기가 있는데, 여자의 이야기도 의미가 있고 하누만의 이야기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대문 사진으로 올린다.

 

여자 이야기는 대웅전 건축을 총괄하던 도편수가 인근 주막의 주모와 사랑에 빠져 그 주모에게 자신의 모든 재물을 맡기고 살았는데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에 주모가 돈을 챙겨 야반도주하여 그렇게 부도덕하고 탐욕스러운 여자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전등사 대웅전의 지붕을 머리에 이고 살라고 지붕의 네 귀퉁이에 벌거벗은 각기 다른 자세로 앉혀두었다고 하여 나부상(裸婦像)이라 한다.

 

하누만 이야기는 원숭이가 흔하고 심지어 우상시 하는 지역에서는 몰라도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사찰의 건물에 하누만이 등장하는 것은 거의 유례가 없는 독특한 건축이라는 것인데 내 생각을 얘기하는 것보다는 각자가 자유롭게 상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 도편수와 주모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도덕과 윤리는 사실상 그 속성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되어 남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유연해져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된다.

 

 

 

 

 

 

 

삼랑성(三郞城) 남문

상가가 있어서 번잡한 삼랑성 동문을 피해 남문으로 가면 주차장도 여유로울 뿐만 아니라 이렇게 아름다운 송림을 감상하며 매표를 하고 남문으로 향한다.

 

 

 

 

 

 

 

삼랑성(三郞城: 정족산성 鼎足山城) 남문 종해루

삼랑성의 동서남북 문 중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남문 종해루가 있으면서 가장 화려하게 복원되어있는 성문이다.

 

 

 

 

 

 

 

부도(浮屠)와 은행나무

남문을 통과하여 조금 오르면 왼쪽에 부도군이 있고, 조금 더 오르면 수령이 약 700년으로 보호수이며 동자승 전설이 있는 은행나무가 있다.

 

 

 

 

 

 

 

대조루 & 대웅전

전등사의 큰 법당인 대웅전으로 가는 길은 머리를 숙이고 이 대조루의 누각 아래를 통과해야 한다.

 

전등사는 381년(고구려 제17대 소수림왕 11년)에 창건한 절로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사찰이라고 하며, 전등사라는 이름은 불법을 전하는 등불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과 충렬왕(1236∼1308, 고려 25대 왕)의 정화 공주가 옥등(玉燈)을 시주한 것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있다.

 

전등사의 유래와 나부상 그리고 팔만대장경과 몽골침입 시의 임시궁궐 이야기 등등은 전등사의 홈피를 참조하는 게 좋을 듯한데 아전인수격의 이야기도 있는 것 같다.

 

 

 

 

 

 

 

종루

유명한 고은(髙銀, 1933生) 시인이 1950년대 초에 출가하여 일초(一超)라는 법명으로 약 10년 동안 승려생활을 하면서 이 전등사의 주지로도 있었으며 시작활동도 하여 문단에 등단했으니 불교가 배출한 시인인 셈인데, 근간에 얄궂은 얘기도 들린다.

 

 

 

 

 

 

 

명부전과 약사전은 모두 닫혀있어서 안에 있는 알맹이는 못 보고 겉모습만 보았다.

 

 

 

 

 

 

 

중국에서 만든 철종이 이곳에 있다는 게 특이하다.

 

 

 

 

 

 

 

극락전 & 약사전

극락전도 약사전도 닫혀있어서 내부의 탱화는 보지 못했다.

 

 

 

 

 

 

 

삼성각

불교에는 없는 삼성각(산신각)은 토착 토속신앙을 포용하여 융합된 모습이다.

 

 

 

 

 

 

 

정족산 사고지(鼎足山 史庫址)

정족산 사고지인데, 위 건물은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장사각(藏史閣)이고, 아래 건물은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璿源譜閣)으로, 이것도 전등사 홈피를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삼랑성의 북문으로 올라가면서 바라보는 전등사의 전경이다.

겨울이어서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없어서 그나마 이만한 풍경을 볼 수 있었고 이제 삼랑성(산성)으로 오른다.

 

대략 40년 전쯤에 내 띠동갑 안팎의 형님들과 전등사 나들이를 했는데, 회장을 맡고 있던 제약회사 사장 형님 왈 “내가 신혼여행을 여기로 왔어요. 서울에서 택시 타고 와서 저기 저 **여관에서 초야를 보냈어요.” 하며 추억을 상기하는 자랑을 하셨다.

 

지금은 강아지도 무시로 왔다 갔다 하는 전등사가 그때는 그랬다.

그때는 신혼여행을 가는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었는데, 강화도로의 신혼여행이 보통 신혼여행인가?

해외 신혼여행 아닌가.....

 

 

 

 

 

통치이념과 지배 이데올로기로는 불교사상이 딱이다.

인과응보이고 자업자득이니 더 이상 무슨 수식어가 필요하겠는가.

 

 

 

 

 

 

동문 밖에 있는 템플 스테이.

왜 표현이 템플 스테이어야 할까?

다른 표현도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