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주변 99

김포 장릉(金浦 章陵)

장릉 인조(조선 제 16대왕)의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氏)가 추존(追尊)된 능이니 예나 지금이나 부모찬스와 자식찬스는 공존하며,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부익부 빈익빈의 세상이고 그런 역사와 삶의 이끼가 낀 곳이다. 장릉도 세월따라 부침을 하였고, 모든 지역이 프리-존 이었다가 점진적 통제가 더해진 곳으로 문명화 개발 도시화와 맞물려 우리에게 숙제를 던지는 것 중의 하나이다. 문명화 도시화 개발은 과연 좋은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나라에는 모두 42기의 조선왕릉이 있는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를 200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여 다음 해인 2009년에 “조선왕릉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열정..

서울 & 주변 2020.10.11

서서울 호수공원

서서울 호수공원 강서구 신월동 능골산 자락에 아담한 인공호수를 만들어 호수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다. 1959년에 김포정수장으로 개장하였던 것을 시민공원으로 단장하여 개장한 것이라 한다. 소리분수 - 소음분수(?) 아담한 호수에 분수가 설치되어 있는데, 작동원리는 소리에 의한 것으로, 소리가 크게 나면 센서가 이를 감지하여 분수가 터져나오게 만든 것이다. 소리분수 = 소음분수로 악어의 눈물이 떠오른다. 이 지역은 아래 지도처럼 비행기들이 김포공항에 착륙을 하기 위해 저공비행을 하는 지역으로, 대략 3분 내지 5분 간격으로 착륙하려는 비행기들이 날아가며 굉음을 발산하고, 이때 분수가 터져 나온다. 30여년 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할 즈음에 이 동네에서도 집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굉음과 함께 창..

서울 & 주변 2020.10.09

황톳길

맨발 황톳길 안양천의 목동교 아래에는 약 500m 정도의 황톳길이 있는데,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는 산책로이다. 나도 종종 걸어봤던 길인데, 근래에는 코로나 때문에 운동이나 산책을 하면서도 가급적 밀접접촉을 피하기 위해 용왕산이나 봉제산을 포기하고 안양천에서 산책과 가벼운 조깅을 한다. 둔치에 있는 산책로는 너무 좁아서 밀접접촉을 피할 수가 없고, 둔치와 둑 사이의 중간에 있는 산책로와 둑길은 폭이 3m 이상은 돼서 좌.우측통행만 제대로 지키면 굳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세상엔 언제 어디서나 잘난 사람들이 있고, 그 잘난 사람들은 사회적 약속이나 규범 따위는 알 바 아니고, 발길 닿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시한폭탄이자 지뢰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런 폭탄과 지뢰의 위험을 피하..

서울 & 주변 2020.09.02

과천 향교(果川鄕校) 계곡

과천 향교 계곡의 마애명문(磨崖名文) - 단하시경(丹霞詩境) & 자하동문(紫霞洞門) 과천 향교 계곡 전경 근래에 코로나 문제로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광화문집회가 있었던 다음 날, 그러니까 2020년 8월 16일 풍경이다. 과천 향교(果川鄕校)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는 1127년(고려 인종 6년)에 강화 교동도에 세워진 "교동향교"로 알려져 있고, 과천향교는 1398년(태조 7년)에 창건된 향교라는데, 성균관은 지금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머물러있는지 향교들은 거의 모두가 조용히 삭아가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유치원도 들쭉날쭉 하는 손녀에게 잠시 물놀이 좀 시켜주고 콧바람도 쐴 겸, 모처럼 딸아이 가족과 점심을 함께 하자고 모였다. 그간 비가 많이 와서 계곡엔 물이 콸콸 넘치는 주말이다 보니 사람들이 콩나물..

서울 & 주변 2020.08.28

폭우 속의 한강과 안양천 풍경

이렇게 파아란 하늘이었는데..... 1년 강우량의 절반 정도를 며칠 사이에 쏟아부으니 난리가 났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까지 한중일 세 나라가 난리다. 코로나만으로도 버거운데, 웬 물폭탄이란 말인가..... 용왕산 벼랑 - 동피랑 용왕산 정상에 있는 팔각정인 "용왕정" 너머 전철 9호선 "신목동역"을 바라보는 동쪽이어서 통영의 동피랑을 붙여본 것이고, 내 생활 주변에서는 이곳이 가장 위험한 곳이라 생각되어 이곳을 지날 때는 언덕을 살피며 가급적 멀리 지나다닌다. 특히 비가 많이 왔을 때는 정말 걱정이 된다. 절개지 위에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도 난해하고 이 벼랑 밑을 편하게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대단하다. 하긴 내 발길 바로 앞에서 땅이 갑자기 푹 꺼지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기대..

서울 & 주변 2020.08.06

환구단(圜丘壇) - 원구단(圜丘壇)

환단(圜壇), 황단(皇壇), 원단(圜壇) 등으로부터 연유되었다는 환구단(圜丘壇) 또는 원구단(圜丘壇), 이거 관점에 따라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제법 재미있는 얘기다. 환구단(圜丘壇) 또는 원구단(圜丘壇)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고대 사회에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주 흔한 것이었지만 우리와 중국처럼 우주의 원리에 기초한 천제단(天祭壇)을 만들어서 제사를 올리고 또 그 유적이 남아있는 곳은 드물다. 제사를 올리는 대상이 왜 대지, 산 또는 강이 아니라 하늘이었을까? 기후, 지리 그리고 풍토 등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하늘이었다. 족장이든, 부족장이든 또 왕이든 대체로 절대권력을 손에 쥐었는데, 이런 권력이 왜 어떻게 내 손에 쥐어졌는지를 스스..

서울 & 주변 2020.06.27

절두산 순교성지

잠두봉(蠶頭峰)과 절두산(切頭山) 잠두봉은 사라지고 절두산만 남았는데 "순교성지"라는 수식어까지 붙어 있다. 표지판 & 김대건 신부 동상(아래) 양화대교 북면 동쪽에 있는 잠두봉의 "잠"은 "누에 잠"이어서 이 작은 봉우리의 모양이 누에의 머리 모양이어서 잠두봉이라는 이름을 얻었었는데, 흥선대원군이 외국인들을 오랑캐인 양이(攘夷)라 하여 배척하였는데도 프랑스 선교사들이 천주교를 포교하자 프랑스 선교사들과 천주교도들을 죽였는데, 이를 알게 된 프랑스 함대가 한강의 양화진(楊花津, 지금의 절두산 일대)까지 공격(1866년의 병인양요 丙寅洋擾)해오자, 이에 대한 앙갚음과 상징적인 의미로 천주교도들의 처형지로 양화진에 있는 잠두봉을 선택하여 처형함에 따라 절두산이라는 이명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

서울 & 주변 2020.05.24

봉제산의 사계(四季)

간밤엔 잠을 뒤척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역시 비가 내린다. 비내리는 용왕산의 아침은 아카시꽃, 이팝나무꽃, 찔레꽃 그리고 때죽나무꽃 향으로 가득하다. 봉제산도 마찬가지일 텐데, 봉제산은 내일 가볼 생각이다. 소나무숲 & 잣나무숲 봉제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들이다. 소나무숲에는 생태보전을 위한 나무데크길이 아름답게 만들어져 있고, 중간에 이 숲을 음미하며 쉴 수 있는 벤치가 2개 있어서 잠시 쉬어가기도 하는데, 노을이 지는 석양의 정취가 그윽한 곳이다. 아래의 잣나무숲은 원래 KC대학교 소유의 땅인데 고맙게도 시민들에게 개방을 해주고 있다. 잣나무숲은 일부러 잣나무를 조림하여 조성된 공간으로 잣나무가 밀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벤치도 많고 피톤치드 또한 많은 곳이어서 나를 비롯해 이 숲을 좋..

서울 & 주변 2020.05.15

종묘(宗廟)

2020.1.26 전하 "종묘사직(宗廟社稷)"을..... 하는 종묘다. 외대문 종묘(宗廟)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종묘사직으로 표현되는 왕조의 선왕들과 왕비들을 모시고 제례를 올리는 유교식 사당이다. 종묘사직(宗廟社稷)은 종묘와 사직이 합해진 말로, 종묘는 위와 같고 사직은 토지의 신과 오곡(五穀)의 신을 모신 곳으로, 단(壇)을 쌓았기 때문에 보통 사직단(社稷壇)이라 하며, 사직단은 동쪽에 사단을 두어 토지의 신을 모시고, 서쪽에 직단을 두어 오곡의 신을 모신다고 한다. 오곡 중 쌀, 보리, 조, 콩은 지금도 우리가 많이 먹고 있지만, 기장은 귀한 곡식이 되는 변화가 있었고,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경천동지할 변화가 있었으며, 그런 변화의 화룡점정은 아무래도 "디지털 혁명"이었던 것 같은데, 금년에 ..

서울 & 주변 2020.05.04

경교장(京橋莊) & 백범 김구(白凡 金九)

2019.12.8 경교장(京橋莊)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 황해도 해주生) 선생의 저택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로도 사용되었던 경교장을 이제야 와 봤다. 그 많은 세월동안 뭐하고, 심지어 삼성병원 문병을 다니면서도 경교장 둘러볼 생각을 못했다니 나 자신이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경교장은 최창학(崔昌學, 1891∼1959, 광산업자)이 1938년에 자신의 별장으로 완공하여 "죽첨장(竹添莊)"이라 했다는데, 이 건물을 최창학이 기부를 한 것인지, 김구 선생이나 임시정부에서 매입한 것인지 아니면 무상임대차를 한 것인지 기록을 찾아보지 못했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 선생이 경교장이라 개칭하였으며, 김구 선생이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32세..

서울 & 주변 2020.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