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인천 주변 40

용유도 마시안해변 & 하늘전망대

(2023.12.25.)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인천국제공항 공항철도에서 내려 용유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인천공항 출국장을 거쳐 가는데, 중앙에 있는 대형 전광판에는 파리의 에펠탑과 상하이의 동방명주 그리고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가 성탄절 분위기를 띄웠다. 오늘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다. 이날이 즐거웠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때는 사탕과 과자를 얻어먹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용유 3.1독립만세운동기념비 을왕리에서부터 시작한 용유도 트레킹이 선녀바위 주변까지는 둘러보았고 남은 건 용유해변과 마시안해변 정도인데, 용유동에 “용유 3.1독립만세운동기념비”가 있다니 이것을 건너뛸 수야 없는 거 아닌가. 이런 외딴 섬에서도 3.1독립만세를 외쳤다니 찾아보는 게 도리일 거 같다. 용유해변 용유해변이 본..

폭설속의 용왕산 – Break Time

(2023.12.30.)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결빙된 한탄강을 아내와 함께 걸으며 한탄강의 속살을 리얼하게 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 겨울에 그걸 기대하기는 난망일 것 같아서 한탄강 물윗길을 걸으려고 어제 자동차 시운전까지 마치고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폭설이 쏟아진다. 한탄강은 일기 청명한 날로 연기하고 글루미(gloomy)한 하루를 보내다가 석양 무렵에 용왕산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용왕산 팔각정 용왕산(龍王山), 이름 자체가 격조가 있다. 내가 즐겨 다니는 봉제산(鳳啼山)도 마찬가지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옛날에는 엄지산・역산・왕령산・왕재산이라고 했다는데 용왕산이라 바뀐 연유는 그야말로 전설 같은 전설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강서.양천구(옛날 김포) 토박이(3대)인 지인의..

인천 용유도 왕산해수욕장

(2023.12.19.)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왕산해수욕장 추운 겨울에 해수욕장 얘기라니 뜬금없는 얘기인데다 풍경의 느낌도 별로지만 빛과 그림자의 모습처럼 인파로 콩나물시루가 되었던 여름과 북서풍이 휘몰아치는 겨울의 한적한 모습에서 다른 계절을 오버랩 시켜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을왕리에는 을왕산(118m), 오성산(171m) 그리고 왕산(81m)이 있었는데, 이 산들은 인천국제공항을 건설하면서 모두 깎였다고 한다. 비행기의 이착륙 문제와 매립토(埋立土)로 쓰기 위해서... 을왕리(乙旺里) 이야기 을왕리 얘기를 한다더니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여튼 고려 21대 왕 희종은 무신정권 권력자인 최충헌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으나 거사(擧事)는 실패하여 최충헌은 희종을 강화도로 유배했다고 한다..

인천 용유도 선녀바위 & 해수욕장

(2023.12.19.)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간밤에 눈이 내렸네요. 을왕리 해수욕장 전망대 이번에는 너무 추워서 각시가 힘들까봐 차를 가지고 가서 을왕리 해수욕장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었다.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선녀바위로 가는 길목에는 이런 전망대가 있고, 여기서부터 선녀바위까지는 1.5km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실제로 걸어보면 그보다는 훨씬 더 되는 것 같다. 해변길 & 산길 전망대에서부터 약 500m 정도의 해변 길을 걸으면 여름 성수기에만 운영하는 것 같은 카페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산길로 접어드는데, 바다를 끼고 걷는 산길이어서 운치가 있다. 선녀바위 출렁다리 꼭 필요한 다리는 전혀 아니지만 선녀바위로 가는 길에 멋과 재미를 더하기 위해 만들어 둔 것 같고, 무의도와 무의대교가 빤히 보..

인천 용유도 을왕리

(2023.12.7)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썰렁했던 을왕리(乙旺里) 지금은 을왕리 해수욕장이 있는 용유도와 영종도가 하나의 섬이 되었지만, 두 섬이 떨어져있고 영종대교가 없던 시절에는 을왕리 해변은 존재했지만 아는 사람도 없고 찾는 사람도 없어서 듣보잡 비슷했는데, 인천공항이 건설되면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것 같다. 그랬던 을왕리를 아이들 데리고 다녔으니 영종대교가 개통된 2000년 이후였는데, 영종대교 개통 이후에도 한동안은 썰렁했었는데, 인기가 올라간 것은 무엇보다 서울과 인천에서 접근성이 좋아 각광을 받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불법주정차는 말할 필요도 없고 음주운전도 꽤 많다는데 신고하면 단속하는 정도의 실정이라고 한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풍경 을왕리는 원래 왕산(王山)이라 부르다가 ..

드림파크 야생화공원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야생화공원 & 야생화단지 야생화공원이나 야생화단지이거나 야생화가 주제여서 공원과 단지는 중요할 건 없지만 공원이라고 하고 또 단지라고도 한다. 드림파크 스포츠센터 수영장 등이 갖추어진 스포츠센터인데 대중교통은 불편한 것 같고 주차장도 언제나 여유롭다. 습지관찰원 이런 연못이 몇 개 있고 오리 종류와 물새 종류들이 노니는데 물고기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징검다리 길 어쨌든 여름철엔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길인데, 옛날 개천의 징검다리를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재미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천의 징검다리를 건너다녔던 세대들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계수나무 이 공원 가까이에 있는 계양산이 원래 계수나무가 많아서 계양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암석원 시절(時節)의 풍경은 지난번과 비슷해 보..

드림파크 야생화단지 – Break Time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자연과 자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사람도, 콘크리트 건물도 그리고 쇳덩어리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순환한다. “드림파크 야생화단지”가 있는 인천시 서구 백석동 일대에는 “매립지”라고 부르는 곳이 넓게 자리 잡고 있는데, 사람들이 혐오감을 느끼는 “쓰레기”라는 단어를 생략한 것 같다. 이 공원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이 공원은 개펄이었던 곳에 연탄재를 매립하여 조성된 공원이라고 한다. “드림파크 문화재단”의 홈피에는 이 공원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드림파크는 매립지의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사용이 종료된 매립장의 자연을 복원하여 환경테마공원으로 조성하는 친환경 프로젝트입니다. 지역주민들과 수도권 시민들의 휴식 공간 및 세계적..

소무의도 & 실미도의 가을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무의도 광명항에서 바라본 소무의도와 소무의인도교 무의도의 광명항(光明港)에서 바라보는 소무의도와 소무의인도교는 이런 모습인데, 소무의인도교는 총연장 414m에 폭은 3.8m의 인도교로 차량은 못 다닌다. 무의도(舞衣島)는 옛날에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고 하여 무의도라 했다는데, 소무의도(小舞衣島)에 대한 유래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으며, 무의도 동쪽에 있는 섬으로 면적이 약 1.22㎢의 작은 섬이지만 다른 특별한 이야기도 있다. 서쪽마을과 떼무리선착장 너무 작은 섬이고 지형이 험하여 전답이 없으니 주민들의 생업은 농사는 불가능하고 어업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상업으로 살아가는데, 무의대교가 건설되고 소무의인도교가 설치되면서부터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 같다. 또한 ..

김포성당 & 매괴성당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김포성당 김포성당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다. 등하불명이고 격강천리라고 걸어가도 갈만한 거리에 있는 김포성당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을 몰라서 미루고 미루다 어제야 가봤다. 예쁘기도 하려니와 건축학과 건축사의 가치도 높아서 “국가등록문화재 제542호”로 등재되어 있는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고 서있는 이 석판은 김포성당의 약사(略史)를 새겨두었는데, 관점에 따라 기념비적인 석판이기도 하고, 또 다른 시각에서는 성당으로 가는 길이 석판의 양쪽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이 석판이 없이 언덕의 경사를 자연스럽게 유지하여 성당을 똑바로 바라보며 올라가던 옛 정취가 더 좋았다고도 하더라. 김포성당의 이모저모 성당의 설계, 건축기법, 미적 표현 등이 ..

백령도 & 심청과 인당수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심청각(沈淸閣) - - 심청(沈淸)과 인당수(印塘水) 심청은 심학규의 딸로 황해도 황주(黃州) 도화촌 출신으로 심청전의 이야기대로 “인당수”에서 뛰어내렸다는데, 그 사연은 송나라와 조선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뱃길에 물살이 사나운 인당수에 용왕을 달래기 위해 심청을 인신공양(人身供養)했다는 것이다. 발단은 땡초의 “공양미 300석”에서 비롯된 것인데 혹세무민이 당시로서는 상식이었던 셈이겠고, 충효(忠孝)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가 지배하던 세상에 합리(合理)란 설 공간이 없었던 것 같고, 사실 인간의 이성(理性)도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아닌 것 같더라. 그러나 송나라(960∼1126년)와 조선(1392∼1910년)은 시제(時制)가 맞지 않아 실제 상거래는 명나라(136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