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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계백장군 지묘
논산에 있는 관촉사 – 돈암서원 – 탑정호 –계백장군 유적전승지 순으로 돌아보았는데, 논산시에서 발행한 관광안내 책에서는 이곳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어서 나도 그에 따르며 이곳을 “백제 군사박물관”이라 한다.
계백장군(階伯將軍. ?∼660)은 나당연합군으로 백제 정벌에 나선 신라의 5만 군사를 상대로 황산벌에서 백제의 5천 군사로 항전하다 전사하였다는데, 창검으로 전투를 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전투에 나서는 계백 장군도 5천의 결사대로 5만의 대군을 감당하기에는 중과부적이라는 판단을 하였던 것 같고, 그러하기에 처자의 목을 치고 임전하였다는데, 이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한데 그 시대의 가치와 정서를 지금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근본적으로 왕정과 공화정의 차이도 있겠지만, 어쨌든 살아남는 것 보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백배 천배 명예롭던 시절 그리고 문화와 정서 그리고 또 가족, 가정의 달인 5월의 첫날에 생각이 많아진다.
계백장군 동상 및 오천결사대 상징조형물
옛날의 장군들은 한결같이 늠름하고 멋있어 보이는데 정말 그런 모습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표현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수많은 장수들이 역사 속에 명멸했지만 계백장군은 그래도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유적지를 남겼으니 이름값을 톡톡히 한 것 같다.
백제 군사박물관
박물관에는 3개의 전시실, 3D 영상관, 국궁, 승마 등 체험시설로 구성되어 있다는데 내부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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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관촉사의 사계
논산을 많이 다니면서 웅어회(熊漁膾)에 소주는 마시면서도 그 유명한 관촉사(灌燭寺)의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 일명 은진미륵(恩津彌勒)을 이제야 보러 간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남행길에 작심하고 둘러보았는데 관촉사의 사계(四季)는 이렇다.
보살(菩薩)은 깨달음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미래에는 석가모니의 뒤를 이을 미래의 부처(彌勒)이기에 불(佛) 자를 붙이지 않은 것이고, 은진미륵은 논산의 옛 지명이 은진이어서 은진에 있는 미륵이라는 뜻인가 한다.
관촉공원(관촉사 주차장) & 관촉사 전경
관촉공원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면서 반야산(般若山)과 관촉사 그리고 일주문까지 한눈에 살펴본다.
천왕문
천왕문 바로 앞에 매표소가 있고 사찰의 유지관리에도 당연히 비용이 발생할 텐데, 얼마 전에 어떤 정치인이 사찰의 입장료 문제를 “봉이 김선달” 운운했던 얘기가 오버랩 되어 웃었다.
대광명전 & 반야루
관촉사는 968년(고려 광종 19년)에 혜명(慧明)이 창건하였다니 천년이 훨씬 넘는 고찰이며 금당(金堂)의 이름이 “대광명전”으로 특이하다.
미륵전 & 석문 & 종각
관촉사의 중심인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이 있기에 미륵전이 있는데 미륵전에는 불상이 없고 바로 뒤에 서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 불상을 대신한다.
석문의 위치가 아주 애매한데 아마도 미륵보살입상으로 바로 가는 석문이 먼저 만들어졌고 나중에 금당으로 바로 갈수 있는 반야루를 만든 것으로 추측되며 종각은 한쪽 구석지에 있는데, 한정된 공간에 전각들을 배치하다보니 석문과 종각의 위치가 애매하게 되어버린 것 같다.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 - 국보 제323호
관촉사의 창건자 혜명(慧明)이 1006년(고려 목종 9년)에 이 미륵보살입상을 완성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의 불상 중에서 가장 큰 미륵보살입상으로 그에 따른 일화와 공법 그리고 전설 등은 인터넷 자료가 많이 있으므로 생략한다.
누구라도 처음 딱 보면 아름답다거나 균형미가 빼어났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당시의 미적 감각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때는 못난이 취급을 당했었는데 후일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하여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다시 국보가 되었지만, 내 눈에는 입상의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 그리고 얼굴과 손의 비례 등이 아름답고 조화롭게 보이지는 않았으며 특히 세 조각으로 깨진 머리 위의 보관(寶冠)을 쇠붙이로 집어놨는데 걱정스러웠다.
배례석 & 석등(보물 제232호)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고 있어서 설치된 연등이 배례석과 석등을 가리고 있어서 깔끔한 모습을 담지 못했다.
삼성각(위) & 명부전(아래)
이렇게 해서 마치 오래된 빚을 갚은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은진미륵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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