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게르의 귀향(Le Retour de Martin Guerre)” 은 참 재미있고도 절절한 이야기여서 종종 생각들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방송대에서 “문화교양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교과서에서 요약된 줄거리만 읽고선 별의별 상상의 날개를 다 펼쳐보았다.
기기묘묘하고, 도덕.윤리.관습.문화 그리고 실정법과 인간의 정체성 등 수많은 상상을 자극하는 이 이야기는 프랑스의 어떤 농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사건)라고 하며...
이 사건을 다루었던 법원 판사의 일종의 회고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다양한 관점으로 연구되고 논쟁이 되었지만, 이 사건을 종결지은 판사에 대하여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것 같아서(내가 못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판사의 가슴을 엿보고자 한다.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 著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주인공이자 남편인 “마르탱 게르”, 마르탱의 부인 “베르트랑드(Bertrande)”, 마르탱을 대신해서 남편 역할을 했던 “아르노 뒤 틸(Arnaud du Tilh)”, 그리고 재판을 하였던 “장 드 코라스”라는 인물 등이다.
1540년대, 프랑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 살던 마르탱은 한 마을에서 비교적 부유하게 사는 집의 딸 베르트랑드를 아내로 맞이하여, 얼마 후 첫딸을 안게 되는 등 평범하게 살았다.
그랬던 마르탱이 어느 날, 아버지의 곡식을 훔쳤다고 아버지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고선 어느 날 홀연히 집을 나가버린 후 소식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자가 재혼을 할 수 없는 것이 당시 사회의 관습이었다고...
그렇게 8년여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마르탱이 돌아왔다.
부모님과 아내인 베르트랑드는 물론 일가친지와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마르탱을 반겼으며, 마을에는 생기와 웃음이 넘쳤다.
마르탱과 베르트랑드는 또 딸아이를 얻어 행복하게 살던 중, 마르탱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유산 상속문제로 숙부(삼촌)와 서로 갈등하다가 결국에는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자, 숙부는 마르탱이 진짜 마르탱이 아니라 가짜 마르탱이라고 주장하고, 마르탱 부부는 당연히 진짜 마르탱이라고 맞섰고...
법원에서는 마을 사람들 모두를 소환하여 심문한즉, 절대다수가 진짜 마르탱이 맞다고 진술하여 마르탱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장 클로드 카리에르 著
그런데 어느 날 바람에 실려 온 풍문에 의하면, 마르탱은 군인이 되어 전투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당하여 다리 하나를 절단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마을 사람들의 진술도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가짜라는 진술이 더 많아져 버렸다.
이렇게 법정에서 진짜 가짜의 진실 공방이 계속되고 있던 중에, 그동안 수도원 생활을 하고 있었던 진짜 마르탱 게르가 소문대로 의족을 한 채 나타났다.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가짜 마르탱이었던“아르노 뒤 틸”은 신성한 결혼의 질서를 모독한 죄로 사형에 처해지고...
베르트랑드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사면되었다.
“여자란 어리석고 속아 넘어가기 쉬운 존재이기에 그녀 역시 그 ‘사기꾼’에게 속아넘어간 것이며, 이러한 여인이 고의로 잘못을 범했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는 이유, 그리고 그동안 그녀의 행보에서 정절을 지키려는 노력이 엿보였다는 이유에서였다.”
베르트랑드
이 이야기는 당시 툴루즈 지역의 사법관이었던 “장 드 코라스”라는 인물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는 이 재판의 담당 판사로서 “툴루즈 고등법원의 잊을 수 없는 판결”이라는 책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방대한 주석과 함께 전했다고 한다.
몽테뉴도 그의 역저 “수상록” 제3권의 “절름발이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이 사건이 “당황스러웠다.”고 했으며, “법이 과연 그러한 진실을 판단할 권리와 능력이 있는가?”
라고 회의(懷疑)했다고 한다
.
이 이야기는 수백년 동안, 소설.영화.희곡.오페라.뮤지컬 등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변주되어 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소설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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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한 인간의 정체성을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 죽음을 각오한 진정한 사랑이 있을까.....
. 진짜 마르탱과 가짜 마르탱은 얼마나 많이 닮았을까.....
. 8년여 만에 돌아온 마르탱의 진위 여부를 베르트랑드는 알고 있었을까...
. 베르트랑드가 진정으로 인정하고픈 자신의 남편은 누구였을까.....
코라스 판사는 진정으로 베르트랑드가 남편의 손길마저도 구분해내지 못하는 “어리석은 여자”로 판단했을까, 아니면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리비도(Libido)는 인간이 만든 사회규범으로써의 법에 우선하는 천부적 권리라고 생각했을까.........
어쨌든 코라스 판사, 이 분 참 멋진 남자다.
또한 애당초 이런 사단(事端)을 만든 장본인인 마르탱 게르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결말은 세 사람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과를 낳았는데,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속에도 마르탱 게르는 심심치 않게 있다.그리고 여성들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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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문득 "처용가(處容歌)"가 떠오른다.
하나는 실화이고 하나는 신화 같은 얘기여서 다른 점들이 많이 있지만,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가 아니라 男女相悅之事)로써 같은 맥락도 있겠다 싶어서...
서울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도다.
둘은 나의 것이었고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디 내 것이지마는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유머&위트 그리고 와이담 https://amigohula.tistory.com/6747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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