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에

상견례(相見禮)

아미고 Amigo 2015. 4. 20. 00:25

 

 

상견례(相見禮)라는 게, "사람이 처음 만날 때 갖추는 예"라는 것이 통속적인 의미겠지만, 역사적으로는 새로 임명된 사부(師傅)나 빈객(賓客)이 처음으로 동궁(東宮)을 뵙던 의례(儀禮)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니, 가벼운 만남의 자리는 아닌 것 같다.

 

상견례에 대해서는 선배들로부터 귀동냥도 했었고 또한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서 대강을 파악했지만 그런 것들이 내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성격상 거짓말이나 허세 그리고 고리타분한 격식같은 것은 싫어해서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스타일일 뿐만 아니라 무슨 사업(Business)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사랑하는 청춘남녀의 부모로서 일종의 들러리인 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실 어제 밤 잠을 설쳤다.....

 

딸아이가 조만간에 혼례식을 올리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고...
얼마 전에 사위 될 사람을 보아야 하는데, 내 멘토가 디스크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아 부득이 식당을 예약해서 점심을 먹었었다.

 

그리고 주말에 사돈(査頓)이 될 당사자와 결혼 당사자, 이렇게 6명이 상견례 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상견례 못지 않게 "사돈(査頓)"이라는 어휘가 맹랑하고 오묘하다.
 "캐물을 사" 자에 "조아릴 돈" 자니.....
문리해석(文理解釋)을 하자면, 상대방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캐묻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관계라는 뜻일까?

 

장소는 강남의 한정식 식당이고, 약속시간이 오후 1시여서 11시 40분에 집을 나섰는데.....
아뿔싸 계절이 계절인지라 도로에 차들이 콩나물시루다. 내 차에 날개나 프로펠러가 없으니 날아갈 수도 없고,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서 겨우 just on time 정도는 맞췄지만, 방에 들어가 보니 세분은 이미 오셔서 기다리고 있어서 다소 미안하기도 했지만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거 내 스타일 아니다.
나는 중요한 식사나 술자리 약속이 있을 때는 내가 평소 잘 아는 곳이라면 몰라도 조금이라도 낮설은 곳이면 인터넷 지도와 자료 검색을 통해 대강의 정보(때로는 자료를 출력)를 숙지한 다음 적어도 30분 전에 현장에 도착하여 주변을 답사하고 동선(動線)과 진행일정의 로드맵(Road map)을 생각해 두고 기다리는 방식인데, 여자(내 멘토와 딸아이)가 끼어 들면 이런 내 스타일이 구겨진다.

 

천만다행으로 사돈되실 두 분께서 소박하고 담백하고 너그럽고 소탈하셔서, 2시간 동안 식사를 하면서 마치 오랜 친구처럼 가식없이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서빙하던 종업원 왈, 대체로 상견례는 분위기가 어색하고 서먹해서 피차 식사도 제대로 못 드시고 분위기도 서먹한데, 분위기가 너무 좋으시네요 하면서 맵시있게 분위기 양념을 쳤다.
눈치코치가 있으면 절간에서도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고, 불러서 팁을 쥐어 줬다.
내가 돈이 좀 많았더라면 오천만원쯤 주었으면 좋을텐데, 형편이 그러지 못해서 천만원만 주겠다고 하고 천만원(5해에서 3해를 빼고 2해하시리라 믿는다.)을 주었다.

 

사돈되실 두 분께는 부족함 투성이인 철부지 딸아이를 보내 드리는 것이 일면 송구하고 또 다른 일면 감사하지만, 어쨌든 어여삐 거두어 주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먼저 떠나가시는 두 분께 정중하게 허리 굽혀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다.

 

사실 지난 1주일 동안 상견례에서 나눌 얘기들에 대한 것들을 생각하며 정리해서 핸드폰 케이스 안쪽에 메모지를 붙여서 가지고 갔었는데, 사부인 되실 어른께서 말씀을 편하게 하셔서 자연스럽게 응대와 부연설명으로 이어지다 보니 준비해갔던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살아 보니, 삶에는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들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 보다 삶에 더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의 대표적인 것들이, 어디서(나라와 지역) 어떤 인종(황인,흑인,백인)으로 그리고 누구(부모)로부터 태어나느냐 하는 것이고, 선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은 배우자와 직업이 아닐까 생각된다.

 

내 아이들이 장성해서 내 곁을 떠나가면, 그 때 주려고,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내 삶의 넋두리(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자서전이라고도 하는 것 같다.)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지난 번 터키 여행을 다녀와서 자료 정리를 하는데, 컴퓨터가 갑자기 버벅거려서 백신으로 정리를 하다가 많은 자료들을 날려 버렸다. 자료의 기준시점을 엎-데이트 하지 않고 정리해버린 탓이다.

그래서 그 동안 정리해왔던 넋두리도 모두 날아가 버려, 어쩔 수 없이 블로그 자료들로 그것을 대신 할 
생각이다. 살다 보면 추억이 될 수도 있을테고, 또 더러는 삶의 지혜를 찾아가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이(블로그 자료의 모음) 내가 내 아이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묶음은 3개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1권씩 그리고 우리 부부의 추억으로 간직할 생각인데, 딸아이에게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줄 생각이고, 아들 녀석과 우리 부부에게는 아직 시간이 더 남아 있으니 계속 보완할 생각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블로그에 가족 모두의 얘기를 더 많이 담았을텐데, 사생활(privacy) 노출을 걱정하여, 처음에는 내 얘기만 그리고 다음에는 주로 우리 부부 중심의 얘기들만 담은 것이 무척 아쉽다.

 

어차피 태어난 세상이니, 이 세상에 태어난 값을 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리허설 없는 단 한 번의 삶이니.....
나 또한 그렇게 살아 보려 무진 애를 썼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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