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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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안병욱 철학의 집(양구 인문학박물관 2관)
안병욱(安秉煜, 1920 ~ 2013, 평남 용강生) 교수는 93세에 별세하여 양구 인문학박물관에 부인과 함께 영면하고 있으며, 김형석(金亨錫, 1920∼, 평남 대동生) 교수는 향년 104세로 지금도 여전히 열정적인 강의를 하신다. 두 분은 같은 철학자의 길을 걸어온 동갑내기 친구 사이로 양구에 함께 잠들자고 하여 안병욱 교수 부부가 먼저 유택(幽宅)으로 가셨고 그 옆에 김형석 교수 부부의 유택도 준비되어 있다.
두 분 모두 세상 사람들에게 사표(師表)가 되는 삶을 살아오신 것 같다.
철학(哲學)이라는 게 인문학의 초석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인데 근래에는 일부 철학자들이 “진리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나는 이 주장에 공감한다. 시공을 초월한 불변의 진리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더불어 인류와 함께 해온 철학이 별로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에서 철학하는 마음은 필요한 거 아닐까 생각된다. 매순간 우리는 비록 그것이 진리는 아닐지라도 최선의 선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구 인문학박물관
양구 인문학박물관은 2동의 건물이 있는데 제1관인 이 건물이 본관인 셈으로 문학, 미술, 서예 그리고 사진과 조각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양구 출신으로 양구를 빛낸 인물들도 있는데 내가 아는 인물들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전시실
개별 작품은 눈으로만 보았고 사진은 벽면으로 촬영했다.
休息(휴식이 있는 공간) – 시와 철학이 숨 쉬는 공간
양구 인문학박물관 제1관 옥상이다.
옥상에서 바라보면 동쪽에서 북쪽으로 양구의 서천(西川)이 파로호(破虜湖)로 흘러들고 있으며 파로호 한반도 섬과 파로호 꽃섬이 눈앞에 펼쳐진다. 건물의 뒤쪽인 서쪽은 산으로 막혀있고 동쪽에 양구읍이 있다.
파로호는 1944년에 댐을 건설한 것으로 대붕호(大鵬湖), 또는 화천호(華川湖)라 불렀다가 6.25 한국전쟁 때 이 파로호 인근에서 중공군을 크게 격파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破虜湖라는 친필 휘호를 내려서 파로호로 개명되었다는데, 虜 자가 “오랑캐 로”라고 한다.
파로호에는 내게도 추억이 제법 있는 곳인데, 현역시절 낚시삼매경에 빠져있을 때 종종 낚시를 갔던 곳으로, 한번은 동호회 낚시를 갔는데 새끼 뱀장어만한 미꾸라지와 자라를 낚아 올려서 길조라고 폭소가 터졌던 추억도 있다.
김형석. 안병욱 철학의 집
인문학박물관이기는 하지만 김형석 교수와 안병욱 교수 중심의 박물관이다.
안병욱 교수
선생님의 책상,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다섯 사람과의 만남, 선생님의 생애활동, 젊은이는 다섯 가지의 자본을 갖는다. 등이 전시되어 있다.
김형석 교수
김형석 선생님은 지금 104세로 건강하게 학자로서의 활동을 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논리와 합리를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학문 분야가 분화되기 이전에는 종교도 철학의 한 분야로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불변의 진리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라는 것을 상기해보면 자명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부부 합장묘소
두 분 부부의 합장묘소가 준비되어있는데, 묘표(墓表)를 둔 평장(平葬)으로 안병욱 교수 부부는 유택에 영면하신다. 두 분의 묘소 사이에 있는 “여기 나라와 겨레를 위해 정성을 바쳐온 두 친구 잠들다.”라는 글이 감동이다. 사후 세상까지도 함께 가는 우정과 우국충정의 마음에 역시 철학자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두 분 선생님은 책도 많이 내셨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하셨지만, 안병욱 교수의 묘표에 새겨진 “淸淨心 聽無聲(청정심 청무성)”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그 뜻을 헤아려보았다. 맑고 깨끗한 마음 그리고 소리(聞=所聞, sound)만 듣지 말고 소리 없는 소리(meaning)를 찾아서 들으라(聽=傾聽)는 뜻으로 이해했다.
묘비(墓碑)
묘비가 이렇게 아름답게 서있다. 두 분이 살아오신 모습이 담긴 것 같다.
나는 김형석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도 “행복은 언제나 현재에 있는 것”이라는 말씀에 공감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나는 없었고 내가 죽은 다음에도 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며, 내가 존재하는 것은 숨 쉬며 살아있는 동안의 시간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를 떠올려보는데, 왜곡된 케세라세라(Qué será, será: 스페인어로 “뭐가 되든지 될 것이다.”: 영어로는 Whatever will be, will be)처럼 달콤한 쾌락을 즐기며 살라는 것이 아니라, 한번 밖에 못사는 인생이니 최선을 다해서 진솔하게 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대한민국 무진장 재미있고 또 행복하기도 한 나라다.
한강의 물가에 앉아서 또는 북한산 자락에 앉아서도 핸드폰과 카드만 있으면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나라가 지구상에는 대한민국 밖에 없으니 가히 천국에 견줄만하다.
그런가하면 산업화시대와 정보화시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계급이 공고하게 구축되었는데,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사라져버려서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계급의 상승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이 되어버렸다. 사실 그 뿌리는 대부분 왕조시대와 일제강점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한국은 엄청나게 재미있는 지옥이고 북유럽은 재미가 하나도 없는 천국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또한 최근 미국의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의 50%는 언제 어느 국가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며, 어떤 부모로부터 태어나느냐가 30%를 차지한다고 하니,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이 80%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나도 같은 생각과 주장을 했었지만 퍼센티지(percentage)까지는 구할 방법이 없었는데, 학자들은 이런 백분율에 대한 근거를 가지고 얘기한 것이라 한다.
나머지 20%의 선택권을 가지고 아귀다툼을 하며 살아가는데, 20% 중에서도 10% 정도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 아니겠나 생각된다.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페스탈로치는 교육을 주창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육이 신분사회와 세습을 고착화시키고 있고, 교육도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또 개인의 역량이 그걸 소화해낼 수 있어야 한다.
엇비슷한 이야기로,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이라는 수메르(Sumer)의 왕 길가메시(Gilgameš)의 우화를 떠올린다.
최고의 권좌에 오른 길가메시에게 남은 욕망은 딱 하나 불로장생이어서 불로초를 찾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석양에 어떤 주막에 이르렀다.
주막에 들어서는 길가메시를 위아래로 쭈욱 스캔(scan)한 주모 왈
“뭣 땜시 그렇게 쏘댕기는 것이여?”
길가메시 “거시기 불로초 좀 구해볼라고...”
주모가 말을 가로채며 “씰데없는 짓거리 허고 자빠졌네. 인간이라는 짐승은 결국은 죽는 것이여. 그러니 살아있을 때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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