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강화도 점심 & 호핑 트레킹

아미고 Amigo 2024. 1. 25. 22:32

(2024.1.13.)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젓국갈비

 

빈둥지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라는 말이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자녀가 완전히 독립해서 떠나고 나면 남은 부부가 허전하고 외롭다는 것인데, 반론으로 제2의 청춘을 맞이한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자유롭고 홀가분한 것도 좋지만 아이들과 함께 행복을 느꼈던 추억이 더 큰 거 같고 또 매양 손주들이 보고 싶고 눈에 선하다.

 

빈 둥지에서 우리 부부가 제일 먼저 공감했던 것이 ! 이제 우리 둘만 남았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거울이며 기댈 곳이고 도피처이며 감사하며 위로하고 격려해줄 사람이다. 물론 가끔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줄 필요도 있는데 그런 것을 함께 나누면 행복의 시너지효과(synergy effect)는 더 커진다.

 

오늘이 그런 날 중의 하루여서, 점심을 뭘 먹겠냐고 했더니, 오랜만에 시원한 젓국갈비가 먹고 싶다고 해서 강화성당(성공회) 아래의 젓국갈비원조 명가에서 점심을 먹고 호핑 트레킹(hopping trekking)을 했는데, 젓국갈비는 강화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이다.

 

 

 

 

 

 

 

 

갑곶돈대

 

갑곶돈대는 강화도의 관문이었다.

지금의 강화대교는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버려서 갑곶돈대와 강화전쟁박물관을 바로 볼 수 없지만 옛날 강화대교는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곳을 지나다니게 되어 있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옛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들 그리고 어쩌다가 들르는 사람들 정도여서 주차장이 언제나 텅텅 비어있다.

 



 

 

 

 

 

 

 

용진진(龍津鎭)

 

유식해져보려고 empty nest syndrome, synergy effect, hopping trekking 등 영어 좀 쓰는데, 호핑-트레킹은 내가 만든 신조어일지도 모르겠고, 용진진은 평지의 찻길 바로 옆에 있어서 참경루(斬鯨樓)와 좌강돈대(左岡墩臺)가 바로 눈에 띈다.

 

이쯤에서 (), (), 돈대(墩臺)를 대강 정리하는 게 좋을 거 같다.

(), (), 돈대(墩臺)는 조선시대의 군사편제로 지금의 육군 부대와 비교를 하자면 진()은 중대 정도, ()는 소대 정도 그리고 돈대(墩臺)는 초소에 해당하는 곳으로 분대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해본다. 그런데 진()의 위치가 조금 난해하다. 산성을 보면 장수의 지휘소인 장대(將臺)는 통상 전망이 좋은 높은 곳에 위치하는 데 반해 강화도의 진()은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니 말이다.

 

 

 

 

 

 

 

 

용당돈대(龍堂墩臺)

 

용당돈대는 용진진과 화도돈대 사이의 고갯마루에 있는 산의 곶부리에 있어서 전망이 시원하지만 접근로가 다소 불편하여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편이며 염하강(鹽河江, 강화해협) 건너편에는 김포CC가 있다.

 

여기서 잠깐 강화도의 영화(榮華)를 얘기해보려 한다. 1930년대에 조양방직, 평화직물, 심도직물 등을 필두로 60여 개의 직물공장에서 4,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직물생산을 했다니 강화도가 섬유산업의 발상지이자 메카였던 곳인데, 당시에는 다리도 없어서 배로 다니던 시절이었고 () 강화대교는 1969년에 그리고 새 강화대교는 1997년에 개통되었다. 그 시절에는 강화도가 터질 만큼 북적댔다고 하더라.

 

1930년대의 4,000여 명을 지금으로 환산하면 4만일지 40만일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규모임에는 틀림이 없고, 노동자들이 그렇게 많으니 노사분규도 발생하여 노동운동도 시작되었으니 노동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고, 이에 성공회 강화성당 신부들이 개입하는 등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졌다는데, 그런 이야기들의 자료도 사라져버렸고 공부하기 귀찮아서 기억 속에 남아있는 대강을 끄적거린다.

 

 

 

 

 

 

 

 

화도돈대(花島墩臺)

 

강화도의 돈대는 대략 십리(4km) 간격으로 강화도 전체에 걸쳐 50여 개를 설치했다는데 조금 들쭉날쭉하지만, 역산을 하면 강화도의 둘레가 대략 200km 정도 된다는 셈이다. 화도돈대도 찻길 옆의 평지에 있지만 쉽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오두돈대(鼇頭墩臺)

 

오두돈대는 평지의 끝에 조그만 동산의 곶부리에 있는데 그 모습이 자라 머리 같아서 오두(鼇頭)라 하였다는데 전망이 괜찮은 편이며 바로 옆에는 벽돌로 쌓은 강화외성의 일부인 강화전성(江華塼城)”이 있는데, 눈에 잘 띠지도 않고 오래 전에 한번 둘러보았던 터라 잊고 지내다가 이번 나들이에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광성보(廣城堡) 이야기

 

강화도에는 5(), 7(), 53돈대(墩臺)가 있다고 한다.

5진은 월곶진, 제물진, 용진진, 덕진진 그리고 초지진이며,

7보는 선두보, 장곶보, 정포보, 인화보, 칠곶보, 승천보 그리고 광성보라고 하는데 광성보는 일부 자료에서는 광성진이라고도 하며, 진과 보는 대부분이 한강의 관문인 염하강(鹽河江)이라고도 부르는 강화해협에 포진되어 있다.

 

5753돈대가 의미하는 것은 강화도에 그만큼 환란이 많았다는 반증이다. 그런 땅을 지켜내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바친 장졸들은 물론 강화도 주민들께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광성보와 덕진진 그리고 초지진에서는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라는 전투가 있었는데, 말이 전투지 실상은 무기의 격차 때문에 조선의 장졸들과 백성들이 도륙을 당하는 참사가 벌어졌던 곳이며 고려시대에는 삼별초의 항쟁(1270)”도 있었다.

 

광성보 주변에는 안해루,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광성포대, 어제연(魚在淵, 18231871)장군과 동생 어재순(魚在淳, ?1871) 형제와 무명용사들의 쌍충비각 그리고 신미 순의총 등이 있는데, 조금 황당한 것이 있다. 돈대는 상급 부대인 보나 진에 소속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손돌목돈대와 용두돈대 그리고 광성포대는 광성보에 속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접한 덕진진에도 속하지 않는 걸 보면 사적지의 설명문이 엉터리라는 얘기 같다.

 

 

 

 

 

 

 

 

광성돈대

 

광성보의 안해루 바로 왼쪽에 있는 돈대로 승군(僧軍) 8,000명이 동원되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강화도 주민들의 고초가 많았으리라는 짐작이 된다.

 

 

 

 

 

 

 

 

쌍충비각으로 오르는 소나무길

 

안해루와 소나무길 그리고 손돌목돈대와 용두돈대가 함께 어우러져 강화도의 절경 중 하나인 곳인데, 낙조 시각 때에 가면 더욱 운치가 있는데 선조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숙연하고 미안한 생각이 들고 풍경은 아름다워 생각이 많아지는 곳이다. 또한 낮은 해변 쪽에는 감나무와 밤나무 그리고 우물이 있는 등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남아있다.

 

 

 

 

 

 

 

 

쌍충비각과 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 그리고 신미 순의총

 

신미양요(辛未洋擾, 1871) 때 조선군 장졸 60여명이 미군의 엄청난 화력과 병력에 의해 도륙당하여 산화한 곳이다. 조선군은 최후의 1인까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니 그 끈질긴 저항에 질려서 미국의 아시아 함대 사령관 J. 로저스 제독도 정복을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하는데, 그때 우리가 항복을 했더라면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상황이라고 특별할 건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강화도에서 가장 가슴 아픈 무덤은 무명용사 51명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서 7기의 분묘에 합장하였다는 신미 순의총 이라 생각된다.

 

 

 

 

 

 

 

 

손돌목돈대

 

손돌목돈대 밑에 있는 곶부리 용두돈대와 건너편 김포 덕포진(德浦鎭) 사이의 해협에는 암초들이 많아서 들물과 날물 때 물살이 무척 거친 곳인데,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가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遷都)를 할 때 손돌(孫乭)”이라는 사공이 고려의 왕을 강화도로 건네주려는데 괜한 의심을 받아 억울한 죽임을 당한 곳이어서 물살이 거센 이곳을 손돌목이라 하였다고 하며, 이 이야기는 손돌을 검색하면 자세히 나온다.

 

어떤 자료에서는 손돌목돈대가 덕진진 소속이라고 하고 있고 현장의 설명문에서는 소속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모두가 어색하다. 가까이에 있는 광성보가 아니라 멀리 있는 덕진진 소속이라는 것도 난해하고 소속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는 설명문도 우습다.

 

 

 

 

 

 

 

 

용두돈대(龍頭墩臺)

 

강화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용두돈대 아닐까 생각된다. 안해루에서부터 이 용두돈대까지 해질녘에 걸으면 풍경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 등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는 곳인데, 건너편에 있는 덕포진과 손돌의 묘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돌아보면 더 좋은데 그런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남쪽에서 올라온 세곡선들이 이 강화해협을 통과하여 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에 강서구 염창동에 있는 증미산(拯米山) 앞에서 좌초되는 세곡선들이 있었다는데, 한강에 비하면 이 손돌목은 정말 위험한 뱃길이어서 좌초되는 배들이 많았을 것 같다. 그래서 그 당시에도 지금의 경인운하(아라뱃길)를 검토했지만 계양산 줄기가 김포로 뻗어있는 능선(지금의 안개협곡)이 암반지역이어서 수로 건설을 포기했었다고 한다.

 

 

 

 

 

 

 

 

광성포대

 

광성보 주변에 있는 사적인 군사진지 중 이 광성포대와 손돌목돈대 그리고 용두돈대의 소속이 애매하며, 이런 포진지에서 무슨 포를 어떻게 쐈는지 참 궁금해진다. 3년 가까이 군생활을 하면서 볼만한 것들은 웬만큼 보았는데도 말이다.

 

 

 

 

너무 길어져서 덕진진부터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네요.

 

 

 

 

야경꾼 (유머인생 - 한국경제신문 연재 해외유머 걸작선)

 

Lady : “Bob, did you tell my father you couldn’t sleep at night because you’re in love with me?”

Bob : “Yes”

L : “What did he say?”

B : “He wants to make me night watchman in his factory.”

 

여자 : “, 너 우리 아빠한테 나에게 반해서 밤잠을 못 잤다고 말했어?”

: “그랬지

여자 : “그랬더니 뭐래?”

: “자기 공장에 야경꾼으로 써야겠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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