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강화 교동도 난정 해바라기정원 & 교동도

아미고 Amigo 2023. 9. 28. 15:37

(건강과 행복이 넘치는 한가위 맞으세요.)

 

난정저수지&해바라기 정원 - 송암 박두성 선생과 훈맹정음 - 월선포 - 교동향교 - 화개사 - 부근당 - 교동읍성 - 대룡시장 - 조선시대의 한증막

 

교동도 난정 해바라기정원

강화도의 북쪽 끝자락 교동도의 난정리에 있는 난정 해바라기정원을 찾았다. 내일 모레면 한가위여서 아이들이 올 테고 손주 녀석들도 올 텐데, 할매 할배가 예쁜 얼굴은 아니어도 해바라기에 물든 밝은 표정으로 맞고 싶어서 말이다. 예쁜 얼굴보다 생기 넘치는 밝은 얼굴이 더 반갑다.

 

그런데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 욕심에게 속았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난정리의 그림 같은 해바라기 정원을 보았고, 가는 날에도 검색을 해봤더니 글이 많이 올라와 있어서 내용은 아예 보지도 않고 멋지려니 생각하고 갔더니 모두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버렸다. 집에 돌아와 억울해서 다시 검색을 해보니 금년에는 형편없는 풍경이었고 한 때는 멋진 풍경이었던 때도 있었던가 보다.

 

그래도 본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건졌다.

우선 난정저수지의 고요한 수면으로부터 세상의 높낮이 등을 건졌고, 교동도 토박이로부터 난정저수지의 역사와 토박이들의 애환도 들을 수 있는 오순도순 인터뷰를 했으니 충분하지 않은가!

 

해바라기는 한 귀퉁이에 조금 남겨진 것들 중에서 예쁜 것을 골라 담았다.

해바라기를 보거나 생각하면, 2차 세계대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펼쳐진 소피아 로렌 주연의 이탈리아 영화 해바라기"가 떠오르는데 너무 강한 인상이 남았던 것 같다.

 

 

 

 

 

 

난정저수지(蘭井貯水池)

교동도(喬桐島)는 원래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삼국, 고려, 조선 시대에 간척(참고1)을 해서 하나의 섬이 되었으며, 난정리(蘭井里)는 우물 안에서 난초꽃이 피었다는 전설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난정리에 있는 수정산(水晶山)의 이름도 예쁘다. 이렇게 시원한 난정지가 중국의 내륙지방에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창해(滄海)라고 했을법하다.

 

해바라기는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렇게 난정(蘭井)과 수정(水晶) 버금가는 난정저수지가 있지 않은가! 이 저수지는 1990년대에 정부 주도의 농지개량사업(?)의 일환으로 저수지 왼쪽 산기슭에 살던 약 30여 호 100여명의 주민들이 이주하게 되었고, 대략 40만평(?) 정도의 문전옥토를 평당 3,400원 정도로 보상하고 2006년에 완공하여 고구저수지와 함께 교동도의 농업용수를 해결하고 있다니 잘한 일 아닌가 생각된다.

 

난정리에서 나하고 얘기를 나눈 분이 연세가 지긋하셔서 혹시 연백에서 오셨냐고 물었더니 교동도 토박이라고 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옛날에는 삼대(三代)가 정주를 해야 토박이라 했다는데 지금은 그것도 짧아졌다. 하여간 이곳 토박이들은 관광객이 많아지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는데 나도 공감이 된다.

 

 

(참고1) - 지도의 푸른색 지역이 대부분 간척지인 것으로 추정된다.

 

 

 

 

 

송암 박두성 선생 생가 훈맹정음(訓盲正音)

등하불명이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게 세상이다.

맹인들을 위한 한글점자는 알지만 훈맹정음과 송암 박두성 선생(松庵 朴斗星, 18881963)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교동도 가는 길은 언제나 면사무소가 있는 대룡리로 가는 게 정석인데, 오늘은 교동대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의 농로를 통해 월선포항으로 가는 길에 생각지도 못했던 송암 선생을 알게 되어 소중한 공부를 했는데, 선생의 기념관은 인천 학익동에 있고 생가는 향나무(?)만이 옛터를 꿋꿋하게 지켜오고 있었다. 생가는 월선포항 왼쪽에 있다.

 

송암 선생의 생가에 있는 청개구리도 똑똑하다.

어쩌다가 화장실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출구를 모르니 가장 손쉬운 방법이 비상벨을 누르는 것이다.

 

 

 

 

 

 

 

월선포항

교동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강화도 창후리에서 배를 타고 이 월선포항으로 건너다녔다. 배를 타는 자체로 번거롭고 시간이 지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접적지역이어서 첫배와 마지막 배도 통제를 받았으니 여러모로 불편했는데, 지금은 자동차로 씽씽 달려버리니 좋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교동향교

교동도에 왔으면 향교에는 당연히 문안을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안내판에 있듯이 향교는 고려 때부터 있었는데, 안향(安珦, 12431306)이 원나라에서 공자상 등을 가져온 것을 기준으로 하여 교동향교가 우리나라 향교 제1호라는 얘기도 성립되는 모양인데, 그때의 교동도는 지금의 교동도가 아니었다. 한양(마포나루?)에서 중국을 오가는 뱃길의 경유지(: 남산포)였던 곳이다.

 

향교 입구에는 선홍빛 코스모스가 반겨주고, 교동도의 비석들을 모아둔 비석군이 있으며 향교로 올라가는 길의 감나무와 화개산이 단풍철이 오고 있다고 시그널을 보낸다.

 

 

 

 

 

 

화개산 화개사(華蓋山 華蓋寺)

화개산(260m) 자락에 있는 조용한 절로 그에 걸맞게 찾는 사람들이 있는 곳인데, 연산군 유배지에서 화개산 정상 쪽으로 모노레일을 설치하면서 주변 경관과 이미지가 많이 변해버렸다. 화개산은 대개 이 화개사를 거쳐서 올라 다녔는데, 화개산 등로를 닫은 건 맞는데 그렇다고 걸어 잠그지는 않은 상태니 아마도 모노레일로 가서 돈 쓰라는 얘기 같은데, 이거 웃긴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면 모노레일에서 설치한 울타리가 막고 있어서 화개산에는 한 발자국도 딛지 못한다.

 

 

 

 

 

 

부근당(扶芹堂)

교동도로 유배되었던 연산군을 모신 사당이라는데, 교동읍성 뒤쪽의 언덕바지에 있으며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고 무당(巫堂)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교동도가 왕족들의 유배지였다. 연산군을 비롯하여 광해군, 임해군, 영창대군, 능창대군, 숭선군, 익평군, 화완옹주, 영선군 등 많은 왕족들이 유배생활을 한 곳이다.

 

 

 

 

 

 

교동읍성

지금도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을 비롯하여 대체로 조선시대에 축성되었던 여러 읍성 중 하나인 교동읍성은 모두 폐허가 되었으나 잔해 등을 모아 교동읍성의 남문인 유량루(庾亮樓)를 복원했다.

 

 

 

 

 

 

대룡시장

교동도에 왔으면 역시 대룡시장도 빠뜨릴 수 없다.

북한 연백에서 전쟁 통에 잠깐 피난을 왔다가 발이 묶여 생계지책으로 가게를 열기 시작한 게 대룡시장이 된 것인데, 1세대는 대부분 고인이 되셔서 사람의 세대교체와 더불어 물목(物目)과 시장이 서는 날에도 변화가 생겼다.

 

달력의 빨간 날에만 장이 서던 것이 교동대교가 열리고 방문객들이 많아지면서 점차 상설시장화 되어간다. 여기서 방앗잎이 들어가는 맛있는 추어탕을 먹을 요량이었는데, 아뿔싸 오늘이 휴일인 월요일이다. 어쩔 수 없이 젓국갈비를 먹었는데, 옛날에 한번 속은 걸 기억하지 못해서 웃었다. 이 집은 갈비가 아니라 갈빗대에다 목살(?)을 본드(?)로 붙여서 내는 것이어서 완전 맹탕이다.

 

 

 

 

 

 

조선시대의 한증막

난정저수지 옆 수정산 중턱에 있는데, 지금의 사우나에 해당할 테니 찬물도 당연히 필요해서 한증막 앞으로 수정산의 작은 도랑물이 흐르고 야생화가 예쁘고 메르메길은 둘레길인 것 같다.

 

 

 

 

해바라기 밭에서 해바라기에 물들어보자고 갔던 길에 늘 다녔던 곳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해서 또 한 번 둘러보았다.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오늘 나들이에서는 송암 박두성 선생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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