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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덕진진-공조루-남장포대-덕진돈대, 광성보-안해루-손돌돈대-용두돈대, 염하강
초지진(草芝鎭)
강화도는 수시로 들락거리는 곳이지만 덕진진 가본지가 제법 돼서 비교적 조용한 덕진진을 걷자고 가는 길에 초지진을 잠간 들러본다. 강화도는 가슴이 먹먹한 곳들이 지천이지만 그 중에서도 이 초지진과 광성보 그리고 덕진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는데 함포와 소총으로 무장한 프랑스군과 미군 그리고 일본군을 상대로 창검과 죽창 수준의 무기로 대항한 조선군이었으니 전투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살육을 당했던 것 같은데 대략 400여명이 조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한다.
총포로 무장한 프랑스, 미국, 일본에 비하면 조선군의 무기는 무기라 할 수도 없었지만 기개만큼은 얼마나 높았던지 1871년의 신미양요(辛未洋擾)에 참전했던 미군 슐레이 소령은 그의 회고록에서 “조선군은 결사적으로 싸웠다. 대부분 맨주먹으로 싸웠으며 노후한 전근대적인 무기로 싸웠다. 그러나 미군은 앞으로 이보다 더 장렬하게 싸우는 국민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라고 술회했다고 하니 가슴이 먹먹하지 않을 수 없다.
초지진돈대(草芝鎭墩臺)
1875년 운요호 사건의 격전지이기도 한 초지진에는 그렇게 처참했던 전투를 지켜보았던 소나무 두 그루(수령 약 400년)가 의연하게 서있는데, 염하강 건너편에는 김포의 대명포구와 덕포진을 마주하고 있다.
덕진진 공조루
강화도를 기준으로 보면 조선시대의 부대단위는 진(陣), 보(堡), 돈대(墩臺)가 있는데, 지금의 부대단위와 견주어보자면 진(陣)은 대대내지는 중대, 보(堡)는 중대내지는 소대 그리고 돈대(墩臺)는 소대내지는 분대 정도에 해당되는 것 같고 덕진진은 큰 부대가 있는 지휘소에 해당하는 것 같다.
덕진진은 강화도의 동쪽 해안도로 옆에 있지만 도로에서는 그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찾는 사람도 비교적 많지 않아 1866년의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의 신미양요(辛未洋擾) 그리고 1875년의 운요호 사건 등을 생각하며 걷기 좋은 곳이며 광성보의 용두돈대와 덕포진 곶부리의 손돌 묘가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곳이다.
덕진진 남장포대
남장포대를 걷는 중에 젊은 커플을 만났다.
청년에게 군대 다녀왔냐고 물으니 다녀왔다고 해서
이 포대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웃기는 얘기죠.”라고 하더라.
포탄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는 얘기렸다.
세계 각처의 명소들에는 대포가 진열되어 있는 곳들이 많은데 나도 이런 포진지는 본 기억이 없다.
덕진진 덕진돈대
격전지였던 이런 사적지를 복원할 때 설계를 한 사람들은 군 생활을 못해본 사람들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고비 : 척화비(斥和碑)
이 경고비(척화비)가 배에서 보일리만무고 설사 보였다고 한들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경고를 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대원군의 의지를 국민들에게 천명하는 용도 아니었을까.....
이 비는 덕진진의 오른쪽 성벽을 따라가서 염하강 벼랑 쪽에 있어서 놓쳐버리기 쉬운 위치에 있는데, 원본은 강화전쟁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다.
광성보 안해루
광성보 안해루에서 용두돈대(龍頭墩臺)로 가는 길은 쓰라린 역사적 아픔이 서린 곳이지만 그 풍경은 아름답고 운치 있는 길이다. 소나무가 도열하고 있는 오솔길과 용두돈대와 염하강을 바라보며 용두돈대로 가는 길이 그렇다.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산화한 어재연(魚在淵, 1823∼1871) 장군과 그의 동생 어재순의 충절을 기린 쌍충비(雙忠碑)와 51명의 무명용사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시신을 7기의 분묘에 합장한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이야기는 내 블로그에 이미 올리기도 했거니와 너무나 가슴 아파서 건너뛴다.
손돌돈대(孫乭墩臺) & 우물
손돌돈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염하강(鹽河江)이라고 부르는 김포와 강화 사이의 해협(海峽)으로 이 지역이 여울처럼 물살이 거세서 손돌목(孫乭項)이라 하고 건너편 덕포진 곶부리에는 “손돌바람 또는 손돌추위”의 주인공인 뱃사공 손돌의 묘가 있는데, 손돌이 고려 고종 때의 인물 또는 조선 인조 때의 인물이라는 얘기가 있어서 실존인물이라는 설과 생몰이 불분명한 전설이라는 설도 있다는데, 보통은 몽골의 침입에 따른 고려의 강화천도와 관련된 얘기로 많이 알려진 것 같다.
염하강이라는 명칭은 프랑스인들이 강화해협을 소금강(salt river)이라 했던 것을 일본인들이 한자로 번역하면서 염하강(鹽河江)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염하강보다는 김포해협(또는 강화해협)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용두돈대(龍頭墩臺)
용두돈대에 갈 때마다 옛 모습은 어떠했을까 상상을 해보는데, 변함없는 것은 손돌 얘기가 얽힌 손돌목일 것 같다.
황산도(黃山島)와 똥섬
똥섬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 중의 하나다.
황산도도 원래 섬이었는데 개펄을 매립하여 강화도와 연결이 되었고 황산도의 해상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남동쪽 끝에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이런 풍경의 똥섬이 있다.
정월대보름 오늘 참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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