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조선의 명기 매창 이향금과 남자들

아미고 Amigo 2023. 11. 27. 13:53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이매창

언젠가 지인 자녀의 혼례가 있어서 남행하는 길에 알아보고 싶었던 매창(梅窓, 본명 이향금 李香今)의 테마관을 둘러보는 김에 변산반도의 남단에 있는 내소사(來蘇寺)와 격포항(格浦港)의 채석강(彩石江)을 둘러보았는데,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생각이 나서 올린다.

 

매창(梅窓,15731610)은 전북 부안에서 아전 이탕종(李湯從)과 관비(추정)의 딸로 출생하여 기적(妓籍)에 올라 천향(天香), 향금(香今), 계생(癸生), 계랑(癸娘) 등의 이름으로 재능을 발휘했으며 매창이라는 호는 스스로 지은 자호(自號)라고 한다.(생몰에 대해 이설도 있다.)

 

기생으로서는 개성의 황진이(黃眞伊, 생몰미상)와 더불어 조선 명기의 쌍벽을 이루었다 하고, 여류시인으로서는 허난설헌(許蘭雪軒, 본명 許楚姬)과 쌍벽을 이루었다는데 38살의 창창한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연이 뭔지 기록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허망님의 이매창 평전에 의하면 허균(許筠, 15691618)을 비롯한 여러 문사(文士)들과의 교류 과정에서 화를 자초한 것이 사인이 된듯하다.

 

매창이 인물은 빼어나지 못했지만 시와 가무 그리고 거문고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다재다능한 예술인으로 매창의 시 중에서도 이화우(梨花雨)가 가장 주목을 받는 것 같은데, 나는 "임 생각(閨怨 규원)"을 먼저 올린다.

 

 

 

 

 

 

매창 테마관 겸 부안문화원

이 건물에는 매창 테마관과 부안문화원이라는 현판보다 더 높은 곳에 더 큰 글씨로 매창화우상억재(梅窓花雨相憶齋)”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부안에서의 매창의 위상을 가늠케 하는 상징 같다.

 

주옥같은 매창의 시가 세월과 함께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부안의 아전들이 매창집이라는 시집을 내었듯이 허균(許筠)과 유희경(劉希慶) 그리고 이귀(李貴)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사들과 교류하며 부안의 진가를 높여주었던 매창을 부안 사람들은 여류시인으로 그리고 예술인으로 대접하는 것 같은데, 당대의 많은 선비들이 매창과 교류하고 싶어 했다니 그런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매창공원

매창은 허균(許筠), 유희경(劉希慶), 이귀(李貴) 등과 교분이 깊었다고 하는데 명성이 높았던 허균과의 교류가 매창을 명성 있는 여류시인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데 작용을 했던 것 같고 그 외에도 수많은 선비와 문사들의 사랑을 받았으니 역사에 기록될만한 인물 같다.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는 매창과 시를 주고받은 이야기가 전한다는데, 매창의 죽음을 전해들은 허균이 그를 애도하는 시와 함께 매창의 사람됨에 대한 기록도 있다고 한다.

 

 

 

 

 

 

이매창 묘

이 묘역을 중심으로 매창공원이 예쁘게 만들어졌는데 약 7,400평에 이른다고 하며, 매창집(梅窓集)에 있는 58수의 시 중 추사(秋思)와 춘원(春怨)을 올리는데, 황진이와는 결이 좀 다른 것 같다.

 

추사(秋思)

昨夜淸霜雁叫秋(작야청상안규추) - 어젯밤 찬 서리에 기러기 울어 예는 가을

擣衣征婦隱登樓(도의정부은등루) - 님의 옷 다듬던 아낙네 슬며시 누각에 오르네

天涯尺素無緣見(천애척소무연견) - 먼 곳에 가신 님은 편지 한 장 없으니

獨倚危欄暗結愁(독의위란암결수) - 위태로운 난간에 기대어 남모를 시름에 잠긴다.

 

춘원(春怨)

竹院春深鳥語多 (죽원춘심조어다) - 대숲에 봄 깊으니 새소리 요란하고

殘粧含淚捲窓紗 (잔장함루권창사) - 눈물에 화장 얼룩진 채 발을 걷었네

瑤琴彈罷相思曲 (요금탄파상사곡) - 옥 거문고로 상사곡 타기를 그치니

花落東風燕子斜 (화락동풍연자사) - 봄바람에 꽃 지고 제비는 비껴나네.

 

 

 

 

 

 

시비(詩碑)

가곡원류(歌曲源流)‘에 실려 있는 매창의 이화우(梨花雨)”는 매창이 유희경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라고 하며, 허균과 유희경을 비롯하여 많은 문사들과 시문을 교류하였다고 한다.

 

매창이 지방 관아의 기생으로 이렇듯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매창 자신이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교류한 명성 있는 수많은 남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고, 시 좀 쓴다는 선비들이 음주가무를 즐기며 매창 같은 명기로부터 시 잘 쓴다는 칭찬 듣기를 좋아했다니 칭찬은 모두를 춤추게 하는가보다.

 

매창이 글을 배운 건 아전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배운 게 전부라던데, 서당과 향교와 서원 또는 성균관에서 제대로 공부를 한 선비들과 오언절구(五言絶句)와 칠언절구(七言絶句)의 한시(漢詩)를 주고받았다니 총명하기도 했을 뿐더러 남몰래 글공부를 많이 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당할 수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매창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대부분 베껴 쓴 글에다 내용도 산만한 것 같다. 그러나 아래의 이매창 평전은 매창에 대한 설명 중 좋은 글이라 생각된다.

 

이매창 평전 : https://blog.naver.com/vagahong/223150536143

 

 

 

 

'전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격포 채석강  (95) 2023.12.16
변산반도 내소사  (58) 2023.12.11
진도 & 해남 우수영  (247) 2023.06.07
정읍 내장사 & 미르샘다리와 정읍사(井邑詞)  (2) 2022.05.22
장성 백암산 고불총림 백양사  (2) 2022.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