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강화도 연미정 & 월곶진

아미고 Amigo 2020. 9. 11. 21:49

연미정(燕尾亭)

강화도 월곶리에서 김포와 강화도 사이를 흐르는 해협 염하강과 강화도및 교동도와 북쪽의 연백 사이를 흘러 서해로 흐르는 물길 그리고 한강과 임진강이 오두산 전망대 앞에서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삼각 꼭지점을 바라보는 자리에 이렇게 아름다우면서도 통한의 슬픔이 담긴 연미정이 있다.

 

정자는 대부분 팔각정이 많은데, 이 연미정은 세칸겹집 형태에 팔작지붕으로 우람하며, 정자의 양쪽에 느티나무가 심어져 있다.

 

연미정 앞의 물 흐르는 모양새가 제비 꼬리 같다 하여 연미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데, 내가 창의력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시력이 나쁜 건지 내 눈엔 제비 꼬리는 보이지 않고 강화 광성보의 용두돈대와 김포 대명리에 있는 손돌(孫乭. 1232년 사망 추정)의 묘가 서로 마주 보는 해협인 손돌목 보다 많이 부드러운 여울의 물흐름만 보았다.

 

1231년부터 30년간 고려를 침략한 몽골에 대항하여 1232년에 강화도로 천도를 하여 28년간 고려궁에 머물렀던 고종(고려 23대)이 자신을 강화도로 데려다주는 뱃사공 손돌을 참살한 것이고, 그 과정은 내 블로그에 있으므로 생략한다.

 

그런 손돌에 대하여 "충신" 운운하는 문헌도 있는데, 천민인 뱃사공이 하늘 같은 왕이 가라면 가는 거지, 충성심까지는 의문이지만, 하여간 손돌의 그런 참사로 인하여 "손돌추위 또는 손돌바람"이라는 말이 전래되고 있는데, 이는 인터넷을 참고하면 좋을듯 하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 세상 사람들이 "연미정"을 모르고 살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연미정이 떴다.

이유인즉, 탈북하였던 어떤 사람이 한국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다시 월북을 하였는데, 그 월북 루트가 연미정 - 유도 - 북한이었다고 하여 졸지에 연미정이 명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월북 루트가 연미정 - 유도 - 북한, 이게 맞기는 한 것일까?

이명박 (전)대통령의 어록을 빌자면 새빨간 거짓말은 아닐까?

 

 

 



 

 

 

 

 

 

월곶돈대 & 황형 택지

강화도에는 수많은 진, 보, 돈대들과 성벽이 있는데, 가장 멀리는 고려 때 몽골의 침략 때문에 쌓은 고려궁(강화읍)을 중심으로 한 내성과 강화도 전역을 방어하기 위한 외성으로 대별할 수 있으며, 진과 보 그리고 돈대들은 주로 염하강을 중심으로 많이 구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니 강화도 주민들의 고초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농사와 어업하랴, 성벽과 진지 구축하랴, 외지에서 온 지체 높은 사람들 봉양하랴, 그러면서 전쟁과 전투에 내몰려 죽어가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게 했으니, 나는 강화도의 사적지 뿐만 아니라 주민들께도 숙연한 마음이다. 월곶돈대 앞의 비석은 장무공 황형 장군의 택지비다.

 

 

 

 

 

 

 

연미정의 느티나무

외세의 침략에도 수백 년을 꿋꿋이 잘 버티던 느티나무가 2019년의 태풍 “링링”에 의해 부러져 버렸다. 큰 나무가 되면 바람을 많이 타게 마련인데, 근래에 큰 나무가 되겠다고 우뚝 섰다가 민심이라는 태풍에 꺽인 사람 그리고 또 꺽일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깜냥이 안되면 함부로 나서지 말 일이다.

 

 

 

 

 

 

조해루(朝海樓)

한강으로 수많은 세곡선들이 드나들고,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일본의 함선들이 한강으로 드나들던 길목인 월곶진의 월곶돈대와 연미정 그리고 조해루는 강화도에서도 가장 애절한 사적지 중의 하나다.

 

 

 

 

 

 

 

유도

유도에 대한 유래를 더듬어 보았지만 특별한 것을 찾지는 못했고, 남북협정에 따라 한강 하구에서부터 교동도에 이르는 수역을 남북 공동이용수역으로 정하여 상호 어로작업을 금지한 구역이라 하며, 유도는 철새인 저어새의 도래지로 유명했던 때가 있었고, 지금은 텅 빈 무인도라고 한다. 남북 사이에 걸쳐 있는 이런 무인도는 임진강의 "장산전망대"에서 바라볼 수 있는 "초평도"가 더 있다.

 

 

 

 

 

 

한강과 염하강 그리고 서해바다가 만나는 곶부리 연미정에서는 동쪽으로 문수산이 빤히 보이며, 옛날 크리스마스 때 성탄 대형트리를 세웠던 애기봉은 baby가 아니라 조선조 시대에 사랑했던 기생을 기렸던 풍류와 낭만이 깃든 곳이다.

 

부인께서는 속터졌을지 모르겠지만...

 

 

 

 

 

북쪽 하늘과 땅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건너편의 북녘땅은 연백평야와 개성이 펼쳐지는 것으로 알고 있고, 동행했던 미국 교포 친구는 처음으로 본 철책선과 북녘땅 그리고 연미정의 역사에 마음이 복잡하고 뭉클하다고 했다.

 

군생활을 GP에서 했던 내게는 가슴 아프지만 담담한 풍경일 뿐이었고.....

 

 

 

 

 

 

 

철신포 & 대장군포

이 시대의 포, 이거 참 웃긴다.

포탄이 터져 그 파편으로 인마살상이나 시설을 파괴하는 포와 포탄이 아니라 화약만 몽땅 채운 포탄이 뻥 뻥 하고 터지는 굉음으로 적의 기선과 사기를 제압하기 위한 수준의 포와 포탄이었다니 우습지 않은가.....

 

 

 

 

 

 

며칠간 TV 뉴스에서 보았던, 탈북자가 다시 월북을 했다는 통로인 조해루 옆의 수로다.

기가 찰 노릇이다. GP에서 군생활을 한 내 생각에는 그렇다.

 

그렇다고 사단장(?)을 직위해제인가 보직해임인가를 하는 건 개그나 코메디 수준도 못 되는 거 같다.

우는 거 보다야 낫겠지만 이거 웃기는 세상 아니가?

 

 

 

 

 

 

연미정은 인조(仁祖, 1623~1649)가 후금(後金)과 강화조약(1627년)을 체결한 현장이고, 강화도 연무당(鍊武堂)에서 강화도조약(1876년)을 체결하여 일제강점 35년의 단초가 되었고, 그로부터 친일에 노심초사하였던 인사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권력과 부를 양손에 움켜쥐고 떵떵거리며 산다.

 

도대체 역사란 뭐고 도덕과 정의란 뭘까?

역사에는 머리가 없고 그저 시간만이 있을 뿐이고, 시간은 그저 앞으로만 갈 뿐이다.

 

세상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는 것 같다.

다만 그 시대를 관통하며 공유되는 가치기준이 있을 뿐...

 

페스탈로치는 교육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해보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교육을 통해 불평등과 계급을 심화시키고 고착화하는 걸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래서 세상에 천사와 악마의 얼굴은 동전의 양면일까?

 

 

 

 

 

 

늘그막에 자연 속에서 흙과 함께 채소와 화초 그리고 과수를 가꾸며 살고 싶다고 문수산 자락에 둥지를 트신 큰 동서와 함께한 날도 있고, 큰 동서 덕분에 푸성귀 걱정은 안하고 산다.

 

별거 아니지만 참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