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강화도 소창체험관(평화직물)

아미고 Amigo 2019. 4. 3. 23:50

 

 

베틀

 

농촌 출신이고, 나이가 50대 후반 이상이라면 눈에 익숙한 풍경이리라 생각된다.

지역에 따라 베틀의 형태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명주.무명.모시 그리고 삼베 등을 짜던 베틀인데, 이 베틀에서 밤을 지새다시피 하면서 늙어가신 할머니 어머니들이 눈에 선하다.

 

모든 실들이 베틀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실로 만들어지는 일정한 공정과정을 거치는데, 그중에서도 명주(明紬)는 누에고치를 뜨뜻한 물에 담가두고 실꼬리를 뽑아 물레에 연결하여 물레를 돌리면서 명주실을 뽑아내면 나중엔 실옷을 다 벗은 번데기가 나오는데, 한참을 기다려 번데기 하나 얻어먹으면 어찌 그리도 고소했던지.....

 

 

 

 

 

 

소창체험관(평화직물)

 

평소에 강화도를 1년이면 적어도 12번 이상씩은 다녔고, 30년이 넘었으니 최소한 300번 이상은 다니며 이곳저곳 살펴보았기에 강화도는 웬만큼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강화도가 우리나라 직물산업의 메카(mecca)였다는 얘기가 봇물처럼 터져나와 당혹스럽기도 하고 무척 흥미롭기도 하다.

 

 

 

 

평화직물은 마진수라는 사람이 1956년에 만든 직물공장으로, 마진수는 일본에서 공업학교를 나와 일본의 직물공장에서 약 7년간 기술을 습득하고 한국에 돌아와 평양의 직물공업시험소 기사 생활을 거쳐 강화도에 있었던 조양방직에서 공장장까지 지낸 경륜과 자본을 바탕으로 평화직물공장을 세웠다고 한다.

 

 

 

 

 

 

 

 

 

전경 & 입구

 

강화도에도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베틀에 의한 전통적인 직조를 해왔는데, 1910년대에 김동식(金東植.1877~1938)”씨가 방직기를 개량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계식 직기가 사용되었다고 하며...


강화도에 방직기 가동을 위한 전기가 들어왔고, 통신을 위한 전화가 설치되었으며, 1916년에 직물조합이 결성되는 등 강화도는 직물산업의 메카(mecca)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방직기와 전기 외에도 오랜 세월 동안 화문석(花紋席)을 짰던 강화도 여인들의 섬세한 손재주가 강화도의 직물산업을 키워나갔고...

 

이 소창체험관(평화직물)은 사유재산이던 것을 강화군에서 매입하여 강화도의 역사유적박물관으로 개방 운영하고 있으며, 문화관광해설사까지 배치하여 상세한 설명까지 해주신다.

 

 

 

 

 

 

 

 

 

 

 

 

 

 

 

 

소창전시관

 

소창은 아마도 소창의(小氅衣)”에서 유래된 말로 보이는데, 선염사(先染絲)로 만든 면직물인데, 고급 옷감은 아니고 기저귀, 행주, 솜이불 싸개 그리고 사대부들의 속옷감 등으로 쓰였던 천이라 한다.

 

강화도에 연륙교가 없던 시절에는 현재의 강화대교에서 노 젓는 배로, 그다음엔 동력선이 다니다가, 1965년에 강화대교를 착공하여 1969년에 완공되었으며...

 

강화대교가 완공된 이후, 1970년대에는 강화도에 직물공장이 무려 130여 개나 성업하여 4,000여 명이 직물산업에 종사했다니, 직물산업이 강화도를 먹여 살렸을 뿐만 아니라 강화경제의 호황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강화도가 직물산업의 메카가 되면서, 그 그림자로 노사분규와 가톨릭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별도로 얘기할 생각이다.)

 

 

 

 

 

 

 

 

 

 

 

 

 

 

 

 

 

 

 

 

 

 

 

 

소창방직기

 

이 소창방직기는 지금도 관람객이 오면 직조 과정을 시연해준다. 

그러나 강화도의 직물산업은 1970년대를 정점으로, 이후에 만들어지는 합성섬유 중심의 현대식 대형직물공장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들고...

 

지금은 가내공업 형태의 직물공장이 몇 개 있는 정도지만, 최근에 강화 소창이 수요가 많아져 제2의 전성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나는 오늘 각시와 달랑 둘이서 한화춘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이 소창체험관은 물론, 강화도 전반에 걸쳐 많은 질문과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한화춘 해설사님, 감사했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셔서 저희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열정적인 해설 기대하겠습니다.

 

 

 

 

 

 

목화(木花)

 

한화춘 해설사님께 목화 다래를 아세요?” 했더니, 아신단다.

먹어보셨어요?” 했더니, 역시 먹어보았단다.

 

목화 다래의 달큼한 추억을 지금도 기억하고 계실 거다.

달큼해서도 먹었고, 배고파서도 먹었던 목화 다래.....

 

 

 

목화(木花)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느 임금이 좋은 일이 있어서 연회를 베푸는데, 시중드느라 애쓰는 궁녀들을 위무차 상을 주려고 궁녀들을 모아놓고 문제를 하나 냈단다.

 

너희들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여기저기서 답이 터져 나왔다.

장미, 난초, 봉선화 등등.......

 

맨 끝에 서서 한 번도 대답하지 않은 궁녀에게 임금이 물었다.

너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소녀는 목화라 생각하옵니다.”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다른 꽃은 모두 피었다 지면 그만이지만, 목화는 꽃도 꽃일뿐더러, 그 꽃으로 실도 만들고, 옷도 만들고, 이불도 만들어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으니 제일 좋은 꽃이라 생각하옵니다.”

 

기특하고 기특하도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하여 총애를 받으며 행복하였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이야기에 머리를 끄덕였던 시절과 세대는 사라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