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 섬진강

지리산 천은사

아미고 Amigo 2020. 2. 22. 23:02

 

2019.8.20

 

 

일주문 - 방장산 천은사(泉隱寺)

 

 지리산 3대사찰(화엄사, 천은사, 쌍계사)에 걸맞는 일주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 일주문은 원래는 없었던 것인데, 노고단과 남원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만들어진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되며, 들어갈 때 보는 모습이다.  지리산의 옛 이름은 방장산이었고 또 두류산이기도 했었다.

 

 

 

일주문 - 남방제일선찰 

나올 때 보는 모습인데, 남방제일선찰(南方第一禪刹)이란 명예로운 이름은 고려 충렬왕 때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일주문 ---지리산 천은사

 

이게 본래의 일주문이다.여기에 이야기와 역사가 서려 있으니 사설(說)을 조금 풀지 않을 수 없다. 천은사 극락보전 앞 뜰에는 염험한 샘이 있어서 감로수(甘露水)라 했고, 절 이름도 "감로사(甘露寺)"였는데, 이 샘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한 승려가 구렁이를 죽여버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샘물이 솟지 않아 "샘이 숨어버렸다."는 "천은사(泉隱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며, 감로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되는 등 화재가 많았다는데,


이는 감로사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구렁이를 죽어버렸기 때문으로, 이 수기를 보완하기 위해 "조선 4대 명필(참고 참조)의 한 사람인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수체(水體)로 물 흐르듯 "智異山泉隱寺"라는 글씨를 쓴 현판을 일주문에 붙이면서부터 재앙이 사라졌다는 그런 일주문이다.

 

※참고 : 조선의 4대명필은 보통 안평대군 이용(安平大君 李瑢, 14181453) 자암 김구(自庵 金絿, 14881534)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 15171584) 석봉 한호(石峯 韓濩, 15431605)를 꼽으며, 조선 전체를 통해서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추가되는 것 같다.

 

 

 

 

수홍루(垂虹樓)
이처럼 아름다운 다리를 겸한 누각이 세계적으로도 별로 없다.아비뇽의 다리,

누에보의 다리, 청계천 다리, 안양천 다리, 택도 없다.

 

 

본래의 일주문 왼쪽 아래에 지금은 천은지(泉隱池: 상수원?)라고 만들어진 천은천의 계곡길을 걸어 올라 일주문을 지나 바로 이 수홍루에 다다르던 순간 천은사와 지리산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감흥이 가슴을 때리던 곳인데,  주변의 풍경이 많이 변해버려서 그 양반과 나는 기억의 창고 속에서 옛 풍경을 끄집어내 30여년 전의 시공(時空)을 이 수홍루에서 한참을 나누면서 아쉬워했다.


본디 추억의 속성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이 천은천 계곡을 따라 성삼재와 노고단을 오르면서 목이 마르면 천은천을 마셨고, 더우면 천은천에 온몸을 담궜던 추억들로 추억을 추억했다.


이 수홍루 위로 다리가 하나 더 있는데, 세월이 요구하고 가져다준 선물이다.차가 다니는 길이란 얘기다. 화엄사의 방장교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수홍루는 속세와 깨달음의 세계인 극락정토를 가르는 다리이니 출가하여 산문(山門)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 다리를 건넜던 사람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그러나 정작 산문으로 들어가면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으로 나뉘니, 절간도 사람사는 세상인가 보다.

이 양반은 이 동네 부근의  광의학교 6년을 다녔는데, 우습게도 이 양반이 입학 할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이 양반의 아버지(故 고광섭 교장)가 그 학교의 교장이었다니, 그 시절의 초기에는 마냥 행복했다가, 차츰 세상이 보이면서부터는 언제나 어깨를 짓눌리는 압박감도 함께 안고 생기발랄한 시절을 보냈을 것이고, 그래서 그 양반의 아버지 공적비가 있는 광의학교를 종종 찾는 그런 곳이다.

 

 

 

 

천왕문

 

모든 종교의 중심 또는 인류사의 영험한 곳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외없이 올라가야 하고, 그런 오름은 원시사회 때부터 알 수 없었던 하늘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그곳에 세상을 아우르는 그 어떤 존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을 텐데.....

 

 

 

보제루(좌) & 운고루(우)

이 계단을 오르면 감로수와 극락보전에 이른다.

나는 불교(佛敎)라는 어휘보다 불학(佛學)이라는 어휘를 더 선호하는데,

근본적으로 불학의 경전은 구원 체계의 종교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문에 몸 담아 평생토록 수행과 참선을 한 인간들에게 무엇을 깨달았느냐?"고 묻는다면, "내 한계(인간의 한계)를 깨달았다."고 대답하면, 그가 사실은 깨달은 자일 거다.

 

너무 무겁고 깊게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그럴 주제도 못되면서.....

그래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생겼지 않았겠나...

 

 

 

 

 

범종각
소승불교 문화권에서 나는 이런 종과 북을 본 기억이 없다.

 

 

 

 

극락보전

절의 중심이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감로수가 넘치고 있다.

소승에서는 나만 열반하면 되는데 반해 우리의 대승불교에서는 함께 데리고 열반하려니, 널리 알리고 불러모아야 할 종과 북의 수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밷고 싶은 얘기가 있다.솔직하게 고백하고 얘기해보자.
어떤 분이 만월을 가르키며  "달 봐라." 했더니띨띨한 중생들이 "달은 못보고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만 바라본다고..."
그 어른은 무얼 보았을까?  인간이 볼 수 있는 한계는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데까지이고 그 범위 내에서 각자가 보고 싶은 것을 볼 뿐 아닐까?


어쩌면 제 눈에 안경일 뿐이다. 나는 내 진리를 본 것이고, 너는 네 진리를 본 것이다.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건 다만 관점이 다를 뿐이다. 
당연히 내 주장은 세상에 진리는 없다는 거다.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이 종교를 배척한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인간의 교만을 제어할 장치로라도 종교는 필요한 것일까.....

 

 

극락, 천국, 천당, 이승, 저승, 구천 등등 이승을 제외하고는 죽음 너머의 세상을 얘기하는 단어들이다.
이 모든 단어들의 개념은 이 어휘를 만들어낸 사람의 생각을 이런 어휘로 표현한 것일테고, 그 진정한 의미와 더불어 합리(合理)는 물론 실재(實在) 여부를 누구도 증명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실존적이고 실용적인 철학이 있는 것 같지만, 철학도 한계가 있고 그것이 인간의 한계라 생각된다.
나도 주장한다.생명은 그리고 인간은 먹이사슬구조에 꿰어져 있고 언젠가는 죽는 존재다.
수많은 이야기와 전설, 설화, 그림, 조각, 음악 등등은 그런 한계를 가진 인간의 염원을 담은 것들 아닐까........................

 

극락보전 아미타 후불탱화 --- 보물 924호

 


천은사는 역사와 향기가 깊은 절이기도 하려니와 탱화로도 유명한 사찰인데, 그 중에서도 "극락전 아미타후불탱화"는 "보물924호"로 유명하며, 방장산제일선찰의 이름처럼 선찰(禪刹)로 명성을 쌓은 사찰이다.
내가 탱화에 대한 공부를 좀 했더라면, 천은사의 탱화로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텐데, 내 무지가 아쉽다.

대웅전의 이 탱화 사진들은 스님께 허락을 구하고 찍었다.
그 양반도 나도 이 천은사를 40여년 수없이 다녀봤다. 다만 서울에 살면서부터 발걸음이 많이 더뎌졌을 뿐이지.....

 

명부전

 

 

 

첨성각

 

 

 

 

응진당

 

 

 

 

팔상전

 

 

 

 

 

 

관음전

 

 

 

 

 

 

삼성전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산신 등 토속신앙과 불교가 만나면서 융합된 산물의 대표적인 산물의 하나로 생각된다.

 

 

 

 

 

 

성적문 

고요 속에서 깨닫는 것이든 아니면 고요함을 깨닫는 것이든, 문(門) 보다는 성(惺)이 참 매력있는 곳이다.

 

운수교(雲水橋)

천은사로 들어서기 위해 수홍루를 한 번 건넜는데, 다시 운수교를 건너 템플-스테이로 들어간다.

템플-스테이-게이트(Temple stay gate)다. 템플-스테이, 사찰도 그리고 참여자에게도 빛과 그림자의 양면성이 있을 것 같다. 모든 생명은 이기적이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소리만 들리고, 행동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존재인데, 이 공간에서 그런 것들을 초월해서 삶의 진실한 목적과 진리를 찾아보자는 공간인데,
박수가 절로 나오고, 아름다운 얘기다.그런데 궁금한 것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원래는 천은사의 부속 법당이었던 곳을 일부 보강하여 템플-스테이로 운영하는데, 옛날부터 참 고요하고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방장선원(方丈禪院) --- 옛날부터 있었던 법당으로 기억되며, 템플-스테이의 중심으로, 내 기억으로는 이 법당의 좌우에 피었던 영산홍이 여린 내 눈을 유혹했던 추억에 마음이 흔들렸었는데, 아마도 내 추억이 맞을 것 같다.

 




 

서래당(위) & 방장선원과 서래당(아래)

 

 

 

 

태고당

 

 

 

굴뚝 그리고 배롱나무꽃

내가 처음으로 천은사에 갔을 때도 이런 식의 굴뚝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지금의 굴뚝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볼거리 같지만 배롱나무꽃과의 앙상블에, 참 마음이 불러진다.

 

반야당

최근에 축조된 템플-스테이 건물로 5개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야생차밭


나는 작설차(雀舌茶)라고 하는 야생녹차를 천은사와 화엄사 부근에 사는 친구들로부터 소개와 선물을 받았고,

그런 연유로 서울 생활 초기에 마음이 가는 지인들에게 이 작설차를 맛보여주었다. 역시 야생(野生)은 "나만"이 아니라 "더불어의 세상"이고 그것이 생명 본래의 질서이자 진리라는 생각이 깊어진다.

 

소나무

수령 300여년의 보호수라는데, 감나무에 감 열리고, 배나무에 배 열리듯, 소나무에 소 열리느냐는 말도 있지만, 언제 어디서 보아도 우리 전래의 소나무는 아름다움을 넘어 기품이 있다.
소나무 얼마나 아름답고 우렁찬가...소나무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기껏 솔방울이 열리는 데 비해 비슷한 모양의 잣나무는 맛있는 잣이 열리는 데, 잣나무는 억울하지 않을까.....
근래에 하루 교통사고 사망자가 대략 5명 정도라고 한다.안타까운 일이지만 ,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한 달 남짓 이슈가 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참고가 될까...................



2020년 1월 20일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했다.
나는 2020.2.6일에 "코로나 바이러스 & 감염병"이라는 타이틀로 블로깅을 했다. 그건 인류사에 있어서의 대강의 전염병과 그것을 보는 관점 그리고  블로거들과의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고자 했던 거였다.

누가 됐든 간에 매일 사람들은 희노애락이 점철된 현실의 삶을 떠나, 기억 너머의 세계로 떠나간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그런 여행의 길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건 그들의 애기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다.

인간은 신에 버금갈 만큼 영특하지만, 아주 우스운 동시에 동물의 한계에서 산다.
있지도 않은 신의 소리를 들었다. 있지도 않은 진리를 깨달았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있고, 웃어넘기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어쨌든 사람들은 죽음이 두렵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삶 너머의 세상이 우리의 삶보다 못하거나 알 수 없기 때문일까.........  그러함에도 죽음이 내게로 다가오는 것을 관찰자의 눈으로 그리고 담담한 가슴으로 응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자 해탈한 사람이고 하늘의 선택을 받은 사람 아닐까....................................................................


살면서 천은사(또는 거꾸로 은천사)는 한 번쯤 가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