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 섬진강

지리산 화엄사

아미고 Amigo 2020. 2. 11. 00:51

 

2019.8.19  

 

 

각황전(覺皇殿) - 국보 제67호

 

 

 

 

 

일주문옛날에는 없었는데 나중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일주문 앞에서 오른쪽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지리산 화엄사면 충분하지 굳이 "대화엄사"의 "대"가 붙어야 할까?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면 몰라도 스스로 를 자처하는 건 겸손하지는 못한 것 같다.

 

 

 

 

 

방장교(方丈橋)
주차장에서 마산천(馬山川)을 건너 화엄사로 가는 길인데, 절 앞의 다리는 성속(聖俗)분리의 뜻이 있어서, 속세에서 성역(극락정토)으로 건너가는 의미란다.
방장교라는 명칭은 지리산의 이명인 두류산(頭流山)과 방장산(方丈山)에서 따온 것일 테고...

 

 

 

 

 

 

지리산 화엄사(智異山華嚴寺)
화엄사의 홈-페이지 "가람배치도"에는 불이문(不二門)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불이문"이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불이문은 보통 여러 문들을 지나 맨 마지막 문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하며, 그 의미는 부처와 중생, 선악(善惡), 흑백(黑白) 등 상대적이고 대칭적인 것들이 둘이 아니라 하나, 즉 진리는 하나라는 뜻이라고 한다는데, 그 하나를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삼불상(三不像)
내가 편의상 붙인 이름이다.세 불상이 차례로 불견(不見), 불문(不聞), 불언(不言)을 표현하고 있어서,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의 Three Monkeys를 얘기하는 것 같다.

성보박물관삼불상과 금강문 사이에 있는데, 이것도 옛날에는 없었던 것으로 근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강문금강문과 배롱나무가 아름답게 매칭된다.

 

 

 

 


천왕문사천왕이 있는 천왕문이 대웅전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대웅전
화엄사에 대한 기본 정보를 검색하려고 화엄사의 홈피에 들어가 보았더니 필요한 정보도 없고, 그나마 있는 내용들도 엉망진창이어서 그걸 고주알 미주알 얘기하다 보면 괜히 나만 세설(洗舌)해야할 것 같아서 이 정도로 정리한다.

 

 

 

 

 


동5층석탑

 

 

 

 

 

 


서5층석탑

 

 

 

 

 

 


당간지주

 

 

 

 

 

 


운고각

 

 

 

 

 


범종각

 

 

 

 

 


보제루

 

 

 

 

 

 


명부전

 

 

 

 

 


영전

 

 

 

 

 


원통전

 

 

 

 

 


원통전앞 사자탑

 

 

 

 

 

 


각황전(覺皇殿) - 국보 제67호
본래 이름은 장육전(丈六殿)이었다고 하며, 부처의 몸을 장육금신(丈六金身)이라 한 것으로부터 유래된 명칭이라고 한다.

 

장육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조선 숙종 25년(1699년)에 계파대사가 중건하였다고 하며, 법당의 외양은 중층의 웅대한 건물이지만 내부는 탁 트인 한 칸의 방으로 되어있다.


 

 

 

 

각황전 앞 석등

 

 

 

 

 


4사자석탑으로 오르는 계단

 

 

 

 

 


4사자3층석탑 - 국보 제35호(인터넷 자료)
이 탑은 자장율사가 연기조사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일종의 불사리 공양탑이라 하며, 4마리의 사자가 탑신을 받치고 있고, 한 가운데에 합장하고 서 있는 승상(僧像)이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한다.

 

이은상 시인은 이 탑을 보고 "효대(孝臺)"라는 제목으로 연기조사의 효심과 그의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노래하고 있으니 "출가(出家)"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탑이 기울어서 해체복원작업 중이었다.

 


화엄사의 가람배치도

화엄사의 홈피 자료를 편집하였다.

천년의 역사가 서리고 국보가 2개나 있는 아름다운 화엄사를 지금 우리가 볼 수 있기까지는 기구하고 애닲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6.25 한국전쟁(1950.6.25∼1953.7.27)을 전후하여 지리산에는 좌익 계열과 여수 주둔 제14연대의 일부 그리고 인민군 패잔병들에 의해 지리산에서 조직된 유격대인 "빨치산"이 남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게릴라전을 하고 있었고, 남한 정부에서는 군경을 동원하여 소탕작전을 전개하던 중, 전투경찰대장으로 빨치산 소탕작전을 지휘하던 "차일혁(1920~1958) 총경"에게 군 지휘부에서 명령이 하달됐다.


빨치산들이 화엄사를 은신처로 사용할 수 있으니 "화엄사를 불태워라."는 명령이었다.
차일혁 총경은 "절을 불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이 오늘에 이르는 데는 천년이 걸렸다."며 각황전의 문짝만 떼어서 불태우는 것으로 명령에 따르는 형식을 취하며 화엄사를 온전하게 지켜냈다는 것이다.(해인사도 비슷한 사연이 있다.)


참으로 낭중지추(囊中之錐)다.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 때문에 죽여야 사는 피비린내 속에서도 역사와 민족과 문화를 생각하는 지휘관이 있었다니 화엄사와 대한민국이 축복받은 것이다.
차일혁 총경은 38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셨지만 여러가지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에서 훈장을 추서하였고, 계급도 경무관으로 추서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화엄사에는 차일혁 총경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내가 못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반면에 성벽처럼 높고 견고한 담장이 있는 걸 보니 가진 것이 많아서 지켜야 될 것들이 많아 중생들이 드나드는 것도 쪽문 밖에 없으니, 담장 하나 허물거나 낮추지 못하면서 무슨 해탈씩이나 하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인지...

지난 여름 남행길에 지리산 주변을 돌면서 들렀던 것을 너무 오래 묵혔더니 느낌이 많이 증발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