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아그라 성(Agra Fort) - 인도 아그라

아미고 Amigo 2019. 6. 17. 09:41

 

2019.4.11  

 

아그라 성(Agra Fort)

 

무굴제국의 권력을 상징하기도 했던 아그라 성은 제3대 황제 악바르(15421605) 대제가 도읍을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기면서 궁성의 기본을 갖추었고, 대를 이어 제4대 자항기르와 제5대 샤 자한(15921666)에 이르기까지 증개축을 계속하여 완성된 것으로 보이며, 무굴제국의 150년 전성기였다는 제3대 악바르부터 제6대 아우랑제브까지 이 아그라 성에서 무굴제국을 건설하고 통치했다고 한다.

 

 

 

 

아마르 싱 게이트 & 아그라 성

 

아그라 성은 붉은 사암(砂巖)으로 건축되어 석양의 노을을 받으면 붉게 물드는 궁성이어서 붉은 요새(Red Fort)”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성곽을 둘러싼 해자가 있고 성벽의 높이가 약 20m나 되는 전형적인 방어용 궁성이자 요새로 보인다.

 

이렇게 견고한 방어용 성을 건축한 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는데, 그건 바로 권력을 유지하고 독점하려는 욕망으로부터 출발한 것일텐데, 권력투쟁이 심했던 것을 반증하는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나 권력은 궁성이나 군대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민심의 향배가 권력을 좌우했고, 그 형태는 권력 내부의 반란 또는 민란이 역사의 증명이었던 것 같다.

 

 

 

 

 

 

 

 

 

 

 

 

 

 

 

 

 

 

아마르 싱 게이트(Amar Singh Gate)

 

관광객들은 이 문을 통해서 출입을 하는데, 보안검색을 비록해서 출입절차가 제법 번거롭다.

 

텅 빈 궁성을 문화재로서 잘 관리하면 충분할텐데도 보안검색까지 하며 출입을 통제하는 것은 이 궁성과 인도의 권위를 세우려는 것으로 이해할 밖에.....

 

 

 

 

 

 

 

 

 

 

 

 

 

 

 

 

출입문을 통과해서 뒤돌아본 모습과 궁정으로 가는 길인데, 궁정으로 가는 길이 약간 오르막길로 되어 있다.

 

말인즉슨, 아마르 싱 문을 통한 침입이 있을 시, 이 경사면의 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니 믿거나 말거나의 얘기 같다.

 

 

 

 

 

 

 

 

 

자항기르 궁

 

제4대 황제 자항기르의 이름이 붙은 궁이니 자항기르가 건축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무굴제국 황제의 대부분이 그러하였듯이 절대권력인 황제의 자리는 양위가 아닌 형제자매는 물론 부자간에 골육상쟁의 권력투쟁을 통해서 쟁취해왔다.

 

무굴제국 최고의 황제로 추앙받는 악바르 대제도 아들인 자항기르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권력무상 인생무상의 날들을 보내고 갔지 않은가.....

 

 

 

 

 

 

 

 

 

 

목욕통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돌로 만들어진 것인지 잊어버렸지만, 이걸 외부 행차용으로 가지고 다녔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랬을 수도 있겠고, 그저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탱크

물탱크라느니, 정화조라느니, 또 목욕탕이었다는 얘기까지 다양하지만, 아그라 지역이 물이 귀하고 건조한 기후라는 걸 감안하면 물탱크 설이 가장 유력해 보였다.

 

 

 

 

 

 

아그라 성에서 바라본 야무나 강 너머의 "타지마할"

 

제5대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한 이 아그라 성에서 연금된 생활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샤 자한은 자식을 14명이나 낳아준 극진히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여 "타지마할"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어주었지만, 말년에는 이 아그라 성에서 야무나 강 너머의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삶을 정리했다니.....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샤 자한이 그의 아들인 제6대 황제 아우랑제부에 의해 8년 동안 연금생활을 하다가 운명했던 곳인데,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은 바로 인간의 속성과 한계를 말하는 것 같다.

 

"뭄타즈 마할"과  "타지마할"에 매몰된 샤 자한의 무리수가 본인은 물론 왕가 전체의 신망까지도 위협받게되자, 아우랑제브가 교통정리를 한 것 아니겠느가.

 

우리도 많은 대통령들이 은퇴 후 또는 중간에 물러나서 존경은 커녕 지탄의 대상이 되어 감옥으로 갔으니, 권력이란 그 뿌리가 어디인지 그리고 왜 내게 권력이 쥐어졌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무척 위험한 것 같기도 하다.

 

 

 

 

 

 

 

 

 

 

 

 

 

 

 

 

 

 

 

 여자(후궁)들이 기거했던 곳으로 기억된다.

한 남자의 사랑을 나누어 가지기도 그리고 더러는 독점하기도 한 공간이다.

 

여자들만 그런 게 아니다.

한 여자를 여러 형제가 공동의 아내로 살기도 했었다.

 

한 사람을 배우자로 하여 살아온 역사는 제법 길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하여 살아가는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디완 이 암(Diwan I Am)

 

요즈음으로 말하자면 정부중앙청사 그런 곳으로 기억한다.

황제가 외국의 사신들을 이곳에서 접견하는 공간으로 회랑을 비롯하여 모두가 화려하게 흰색 대리석을 사용했다.

 

 

 

 

 

 

 

 

 

 

 

 

John Russell Colvin 무덤

 

인도 북서부 지방을 관리했던 영국의 부총독으로, 인도의 제1차 독립전쟁인  "세포이 항쟁(1857∼1858)" 때 전사했다고 한다.

인도에는 "동인도회사"와  "세포이"가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원

 

누구보다도 궁 밖 출입이 제한되었던 여자들에게는 이런 정원이 삶의 중요한 공간이었을 것이고, 창을 통해서 바라보이는 세상의 제약 속에서 제각각 행복을 꿈꾸며 살았을 것이다.

 

 

 

 

 

 

 

 

나가는 길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나가며 아그라 성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