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

남프랑스 최대의 도시 마르세유

아미고 Amigo 2018. 11. 24. 22:50

 

2018.10.28  

 

칸에서 2시간을 달려 오늘의 피로를 달랠, 남프랑스 최대의 도시 마르세유에는 어둠이 짙게 깔린 밤에 도착했다. 이렇게 도둑고양이처럼 밤에 왔다가 꼭두새벽에 떠나는 마르세유, 꼭 도둑맞은 기분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리옹에서 합쳐진 론강이 아비뇽과 아를을 지나 지중해로 흘러드는 론강의 하구에 있는 우리의 부산 같은 프랑스 제1의 항구도시다.

 

 

마르세유(Marseille) 항구

 

인구 약 85만명으로 남프랑스의 지중해 연안에서는 가장 큰 도시인 마르세유가 내게는 나그네 도시다. 칸에서 줄기차게 2시간을 달려 기진맥진한 몸으로 저녁을 먹고 나니 그야말로 몸이 천근만근이다.

 

사진은 마르세유 항구와 마르세유 대성당의 모습이며...

마르세유에는 롱셩궁전과 미술관 그리고 자연사박물관,  이프성 등이 볼거리라는데, 항구와 먼 발치에서 대성당만 바라보았다.

 

 

 그런 비몽사몽간에 그래도 추억생산에 나섰다.

 

그나마 오늘 밤에는 호텔에서 따끈한 물로 샤워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허리 쫙 펴고 잘 수 있으니 이게 바로 천국이다. 이름도 멋진 골든 튤립 호텔이었다. 어쨌건 잠자리는 해피했다.

 

다음 잠자리는 프랑스와 접경을 이루는 피레네산맥 너머 스페인의 까칠하고 뻑센 지방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다.

 

 

 

 

 

 

중세의 고성임에는 분명한 것 같은데...

검색하면 되는 것인데.....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생각도 정리하지 못한 고성이 무슨 의미랴.....

 

유럽에 갈 때마다 부딫히는 불편함 중의 하나가 바로 욕실문화다.

집안에서 그리고 실내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의 하나인 욕실문화의 차이가 언제나 나를 귀찮게 한다.

 

우리처럼 욕실 전체를 방수처리하면 좋을텐데, 그들은 건물의 골조는 내구성을 추구하면서, 건물 내의 실내공간은 유연성을 추구하는 생각인가보다 하고 소화할 수 밖에 없지만 매번 불편하고 엄청 신경쓰인다.

 

 

 

 

 

박물관인데...

무슨 박물관인지 확인도 안해봤다.

바람은 태풍처럼 불지, 비는 오락가락 하지,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그렁저렁 12시경에 잠자리에 들면서, 알람을 7시에 맞춰두었지만, 간밤에 섬머타임이 해제되어 한 시간이 늘어나게 되니 8시간 정도를 잘 수 있겠지만, 알람이 울리기 전에 자동으로 잠이 깨리라고 생각하고 잤는데, 새벽 4시(한국은 낮 12시) 경에 온 친구의 전화로 잠이 깼다.

 

다시 잠을 자려 뒤척이다가 잠이 안와서 밖으로 나가보니 역시 비가 오락가락하고 습도가 높아서 기온은 쌀쌀하다.  하늘에 떠있는 달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고 오늘 일기도 무척 걱정스럽다.

 

그렇게 밤에 와서 잠만 자고 떠난 곳이 마르세유인데, 동이 틀 때쯤 창문을 열고 동녘을 살피니 그런대로 괜찮을 느낌이었다.

 

 

 

 

 

 

 

 

 

 

이프 성

이프 성도 유명한 곳인데 잠만 자고 떠나는 곳이어서 구경도 못하고 자료로 대신한다.

 

이프 성은 소설 "몽테 크리스토 백작"(알렉상드르 뒤마 著, 1802∼1870)의 무대가 되었던 섬으로, 16세기에 프랑수아 왕이 만들었던 성을 주로 감옥으로 사용하였다고...

 

 

 외국여행을 다닐 때마다, 보내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는 현직시절에 별 능력도 없으면서 운 좋게도

R&D(조사연구)업무와 해외관련 직무를 맡았었고

능력은 일천했지만 내 모두를 불사르는 열정을 바쳤었다.

 

그런 와중에, 태국의 유사조직과 진행 중이었던 Study Tour도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건 상호교환연수로, 태국에서 한국으로 연수를 오는 사람들은

대개 영국 또는 프랑스에서 학위를 딴 상류사회(세계적으로도) 사람들이었고

우리는 하위직 직원들을 태국으로 보냈었다.

 

이런 직무를 수행하면서 나는 세상과 세계를 그리고 또 인간을 많이 탐구했었다.

 

태국에 연수 간 우리 직원들이 현지의 그들 신분에 걸맞는 칙사 대접을 받았다니...

나는 한국에 온 그들을 주인으로, 나는 그저 하인으로 정성을 다 해 모셨었다.

나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조직의 이름으로.....

 

그러면서 많은 아름다운 정분과 더불어, 이별의 아픔은 내 뒷모습만 보였었다.

가진 게 많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가슴이 크고 따뜻한 분들이 많았었다.

 

태국을 몇 번 갔었지만, 지금껏 그 분들께 전화드리지 않았다.

 

지금도 갈등한다.

내가 잘 한 짓인지, 아니면 잘 못 한 짓인지...

그래도 나는 내 아이들에게 강변한다.

조직과 개인은 분별하라고.....

 

 

이 꼭지는 이렇게 쉬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