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喪輿)를 처음으로, 동시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메어봤던 것이
군대를 갓 제대하고 돌아왔던 스물네살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형언하기 어려운, 그 묘한 느낌...
(인터넷 자료사진)
뒷집 젊은 아저씨가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했었는데
화엄사 아래 식당에서 저녁식사와 더불어 술을 마셨던가 보다.
그러고는 귀가길에 돌뿌리에 채였던지
계곡 냇물에 곤두박질쳤고, 뇌진탕으로 돌아가셨다.
아마도 헬멧도 안썼던 모양이고
당시에는 오토바이를 일러 "과부차"라고도 했었다.
그때 나도 부모님으로부터 시달림을 무척 많이 당했었다.
오토바이 타지 말라고...
(인터넷 자료사진)
상여 위에 올라선 상여 소리꾼(뭐라 호칭하는지 모르겠다)의 선창에 따라
상여를 멘 상여꾼들이 반복되는 후렴을 했다.
망인의 큰 아이가 대략 다섯살쯤 그리고 동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다섯살배기가 흥겨워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야단이었다.
집에 사람들이 북적대고 음식 냄새가 가득하니
제깐에는 잔치쯤으로 생각했었나 싶고, 그 바람에 사람들이 눈물 꽤나 떨구었었다.
(인터넷 자료사진)
그런데 그 상여가 왜 그리도 무거운지...
영화에 보면 사인교(四人轎)는 네 사람이 한 사람 태우고 뛰어가다시피 하는데
물경 십여명이 사람 하나 메고 가는데, 왜 그리도 무거운지...
무겁다고 하면 더 무거워진다는 속설 때문에 말도 못하고
게다가 논두렁을 타고 갈 때는 상여꾼들이 V자 형태로 서로 버티면서 가는데
어찌 그리도 힘들던지...
지금 생각해보니...
상여에는 한 사람의 물리적 몸무게만 실린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무게와 영혼의 무게까지 함께 실린 것이었으리니 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 자료사진)
상여가 사라지고
마을마다의 상여계도 사라지고
이런저런 품앗이도 사라져간다.
사라진 것들과 사라져가는 것들이 아쉽고 그립기도 하다.
문득 소리꾼 장사익씨의 장송곡 "아버지"가 떠오른다.
산 설고 물 설고 낮도 선 땅에
아버지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애야, 문 열어라."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제치니 찬바람 온몸을 때려
뜬 눈으로 날을 새는 "애야, 문열어라."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에 문을 열게 되었고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에 문을 열게 되었고
산 설고 물 설고 낮도 선 땅에
아버지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애야, 문열어라."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제치니 찬바람 온몸을 때려
뜬눈으로 날을 새는 "애야, 문열어라."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에 문을 열게 되었고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에 문을 열게 되었고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세상을 향한 눈에 문을 열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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