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릉(秦始皇陵 BC259∼BC210)
사진의 뒷편 도두룩한 산이 진시황제의 능이라는데,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중국에는 73명의 황제가 있었고, 그런 황제의 능 중 유일한 여제인 측전무후(則天武后 624 ~ 705)의 능을 제외한 72개의 황제릉이 있다는데, 측전무후의 능이 없는 것은 그녀의 남편 고종과 함께 건릉에 묻혔기 때문이란다.
진시황릉과 사후 세계에서 그를 호위할 병마용 간에는 약 1.5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황제는 당연히 문무대신들과 호위무사 그리고 병마를 거느리고 있어야 할텐데,
왜 그것들을 따로 떼어 두고 홀로 있단 말인가.....
또한 능의 모습이 아무리 보아도 능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야산의 모습으로 보이며
진시황릉이 사실임을 증명할 작업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덤 안에 다량의 수은이
내장되어 있어서라는데, 옛날에는 화장수로 얼굴에 바르기도 했던 수은이 무서워서 손을 못댄다는 말도 궁색하기만 하다.
하여간 여불위의 자식 운운하는 출생설에서부터 문자.화폐.도량형통일 등
그리고 만리장성,분서갱유,아방궁 건설 등 말도 많고 미스터리도 많은
진시황의 능과 병마용이 세계인들을 중국의 서안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진시황릉 입구
진나라는 아방궁을 짓고 몰락했고, 수나라도 건원전을 짓고 몰락했으며 당나라의 이세민도 건원전을 짓고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니, 절대권력은 필경 부패하고 몰락하는가 보다.
병마용(兵馬俑) 1호갱
1974년 자기 집에서 우물을 파던 농부(양신만)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하며,
최초 발견자 양신만은 고령으로 지금도 생존하고 있다고 한다.
내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 날이 그 날같은 것에 신물이 난 신들은 죽고싶어도 죽지도 못해서 불만이고
인간은 영생하지 못해서 안달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심장이 멎으면 죽음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잊혀지는 것이 진정한 죽음이란다.
그래서 진시황제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셈이다.
1호갱 앞
머리가 없는 이 병용(兵俑)들을 두고 목을 잘라갔다고 얘기하는데 황당한 이야기다. 머리는 몸에 끼워 넣는 조립식인데 말이다.....
(2호갱과 3호갱 그리고 박물관과 전시된 병마용 등)
한양릉의 토용
저마다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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