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 - 새로운 예술공간의 탄생”
리사 아피냐네시 지음, 강수정 옮김을 중심으로 카바레의 역사와 근대의 정치사와의 연관성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논의는 먼저 카바레(Cabaret)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정리하고 근대사회에서 카바레라는 공연무대가 운영되면서 사회와 정치에 있어서의 상호작용을 카바레의 본고장인 유럽과 우리 나라로 구분해서 살펴보고, 끝으로 근대 정치사와의 연관성을 정리하는 순서로 한다.
우선 카바레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위 책에서 저자는 유럽을 중심으로 카바레에서 공연 또는 시행되었던 것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사회와 소통하고 작용하게 되는 사회적 기능 등을 통해서 카바레를 설명하며, 사회의 지배자 또는 주류에게 반기를 들어 변화를 추구하는 시대정신의 산실로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카바레 문화가 일천한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생소할 뿐만 아니라 유럽의 카바레 문화 또한 접해보지 못해서 책을 읽어도 그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으로 짐작되는 댄스홀과 카바레는 유럽의 그것들과는 많이 다른 형태로 운영되어 개념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카바레와 유사하거나 이웃한 것들로는 댄스홀, 살롱, 카페, 바, 다방(茶房), 요정(料亭), 나이트클럽, 디스코텍, 콜라텍 등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며, 사전적 정의로 네이버백과에서는 카바레를 “무대, 무도장 따위의 설비를 갖춘 서양식의 고급 술집. 초기에는 가수나 코미디언 등 개인 예술가가 샹송이나 풍자적 삽화를 공연하던 클럽. 레스토랑의 작은 무대를 의미했다. 그 당시의 정치적 문화적 현상을 언급, 일반적으로 친밀한 오락을 위주로 했다.(후략)”라고 하여 우리나라의 카바레와 유럽의 카바레가 모두 설명된다.
카바레(cabaret)라는 말은 “포도주 창고” 또는 “선술집”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유럽의 카바레는 1881년에 파리에서 “검은 고양이”로부터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으며, 카바레라는 공연 공간을 통해 수많은 카바레아티스트(카바레티스트)들이 탄생하였고, 그들은 그림자극, 인형극, 레뷔(revue), 댄스 팬터마임(dance pantomime), 시크닉스(sickniks), 슬랩스틱(slapstick) 등을 통해 재기발랄하고, 코믹하고, 도전적이고, 풍자적인 아방가르드(avant garde)를 자처하였다.
짐플리치시무스의 그 유명한 “카바레 인생의 십계명”이 그러하며, 롤랑 도르젤레의 당나귀 예술학파 일화는 포복절도할 애기로 세상의 전문가라는 사람들 그리고 지식인들이 얼마나 황당한 도그마에 빠질 수 있는지를 체험으로 보여준 사례일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당시 널시 알려지지 못했던 문인 롤랑이 “롤로”라는 이름의 당나귀 꼬리에 물감을 묻혀 그림을 그리게 하고서는, 그 그림의 제목을 “그리고 태양은 아드리아 해에 지고”라고 하여 다른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전시를 하여 평론가들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게 되었고, 그 전말의 이야기를 “당나귀, 예술학파의 태두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실렸던 것이라 한다.
독일의 에리히 케스트너는 “또 다른 가능성”에서 독일이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을 경우를 가정하여 아래와 같이 파시즘을 통렬하게 조롱하고 권위주의, 민족주의, 군사패권주의를 경계하였다.
(전략)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더라면
자랑스럽고 행복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우리는 예전처럼
명령을 기다리는 군인이겠지.
여자들은 애를 더 많이 낳아야 할 것이다.
한 해에 한 명씩, 안 그러면 구속이야.
국가에선 아이들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가장 좋아하는 건 사람의 선혈이므로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더라면
천국도 독일의 영토가 될 것이다.
목사들은 장교요
신은 독일 장군이 되겠지.
(중략)
아이들은 구령에 맞춰 태어나고
인간은 조달하기 쉬우니까.
그리고 병졸 없이 대포만 가지고는
전쟁에서 이기기 어려우니까.
(후략)
또한 미국이 낳은 최초의 정치 카바레티스트인 모트 살은, 누군가 “매카시 재킷”이라는 새로운 아이젠하워 재킷을 발명한 모양인데, 그 옷의 첫째가는 특징은 지퍼가 입까지 채워지는 것이라는 재담으로 매카시즘을 비난하였다.
이렇듯 카바레는 사안에 따라 내용을 각색할 수 있는 즉흥성, 아마추어를 받아들이는 개방성, 도덕적 경향이나 물리적 환경을 극복하는 적응성을 생존 비결로 시대에 따른 부침은 있었으나 부단히 세상을 향해 자유와 평등 그리고 혁명적인 저항정신으로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였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카바레하면 바로 연상되는 것이 “누님 제비 한 마리 키우시지요” 라든가 “누님 예술 한 번 하실까요?” 식의 육감적이고 육욕적인 공간으로 다가선다. 우리나라의 카바레에 대한 자료를 나름대로 찾아보았으나 유입시기와 경로는 물론 이렇다 할 자료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카바레는 한국전쟁과 더불어 진주한 미군과 함께 유입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 상황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극심한 긴장을 완화시키고 최면하기 위해 술, 음악과 노래 그리고 남녀의 춤이 어우러진 댄스홀로부터 발전해온 것이 아닐까 짐작되며, 댄스홀과 카바레 사이에 뚜렷한 구분이 없이 발전하여 왔으며, 1955년에 한국판 카사노바 이야기라고 하는 해군 대위를 사칭하며 댄스홀과 카바레에서 수많은 여인을 농락한 김인수의 얘기와 더불어, 그로 인해 법정에 서게 된 김인수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이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혼인빙자간음죄목으로 고소된 피고 김인수에 대해 사법부는, “(전략)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판결하였던 것이다. 이런 판결의 배경에는 70여 명의 여자를 농락한 김인수가 그 중 처녀는 단 한 명뿐이었다는 진술이 상당한 작용을 했으리라는 생각들이 그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혼인빙자간음죄도 우여곡절 끝에 2009년 11월 26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역사 속으로 묻히게 되었다.
이렇게 유럽과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 카바레의 대강을 살펴보았듯이, 유럽의 카바레는 상당부분 일체의 가식(假飾), 위선(僞善), 형식주의, 권위주의, 패권주의, 파시즘 등을 타파하는 아방가르드(avant garde)와 다다이스트(dadaist)를 자처하여, 카바레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변화를 추구하는 공간으로 작용하여, 주류세력 또는 권력집단과 언제나 대립각을 세우며 인간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던 반면에, 우리나라의 카바레 문화는 퇴폐와 향락 일변도였으며, 근대 한국 사회에 있어서 사회적 담론을 형성했던 공간은 다방(茶房)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를 통해 공연예술의 공간이 인간의 감정, 격정, 희망, 절망, 유희, 향락, 철학 등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인간과 사회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 행위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변하여 오늘 날에는 TV, 인터넷에 기반한 블로그와 카페, 트위터 그리고 카카오톡 등이 사회적 담론 형성의 수단이 되고 있으니 진화의 방향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방송대에서 문화교양학을 공부하면서 썼던 리포트가 나중에 보니 웃기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서 편집을 했다.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산층 & 중산계급 (0) | 2014.07.25 |
---|---|
길섶의 창녀 ... 롯, 디나, 다말, 유다, 모세, 십보라, 입다, 암논 (0) | 2014.05.15 |
신자유주의가 시장경제에 미친 영향 (0) | 2014.01.04 |
북한의 사회와 경제 (0) | 2012.05.20 |
근대화와 동서양 (0) | 2010.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