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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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정(樓亭)과 죽서루(竹西樓)
우리나라 누정(樓亭)은 누(樓), 대(臺), 각(閣) 그리고 정(亭)으로 대별되는 것 같으며, 정자(亭子)가 대부분 개인 소유의 사적인 공간인데 반하여 누각(樓閣)은 개인 소유와 관청에 부속되어 주변의 수려한 풍광과 함께 공공연한 시회(詩會)나 연회를 열어 풍류(風流)를 즐겼던 열린 공간이다.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진주 남강의 촉석루 그리고 밀양 밀양강의 영남루를 일컬어 3대 누각이라 하고, 남원 요천강(蓼川江)의 광한루를 더하여 4대 누각이라 한다는데, 오십천(五十川)을 바라보고 있는 죽서루 또한 이런 누각들 못지않은 위치와 풍모를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누각과 물은 마치 바늘과 실처럼 짝을 이루어 모든 누각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순리(順理)와 사리(事理)를 말할 때 “물 흐르듯이”라고 하며, 흐르는 물은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누각에 앉은 선비와 관료들에게 순리와 사리 그리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생각하라는 것을 누각에 담았을까?
문화관광해설사의 집과 주차장
해설사의 집에는 해설사가 있었지만, 달랑 우리 부부 둘이서 해설을 부탁하기에는 미안해서 죽서루 관련 자료만 챙겼다. 해설사의 집 좌우는 모두 주차장인데 죽서루로 들어가는 외삼문 앞에는 주차를 금지하고, 그 옆의 넓은 주차장은 그야말로 주인 없는 무료주차장 같아서 삼척 차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외삼문과 삼척도호부 전경
외삼문을 들어서니 이 계절에도 계절을 극복한 단풍이 우리를 반기고, 다시금 서쪽의 오십천을 바라보고 있는 죽서루를 살펴보고 오른편에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객사(진주관)을 살펴보면서 지금의 이 모습이 원래의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에 도호부의 일부가 훼손되었다고 들었으며, 이 유적 주변에 도로들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내문에서도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관아지(官衙址)라고 표기하고 있다.
관동팔경(關東八景)과 죽서루(竹西樓) -- 국보
죽서루는 전체적으로 반석 위에 세워진 누각으로 반석의 모양에 맞춰 기둥을 반석 위에 세우기도 했고 주춧돌을 놓기도 했으며, 측면의 칸수가 남쪽은 3칸인데 북쪽은 2칸인 등 다양한 건축기법이 구현된 누각이다. 또한 죽서루에는 숙종(肅宗, 조선 제19대 왕)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명사들의 많은 시문들이 걸려있으며, 죽서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팸플릿”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죽서루는 2023년 12월 28일 영남루와 함께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관동팔경의 제일루이자 관동팔경 중 유일한 국보라고 한다. 관동(關東)은 대관령의 동쪽을 지칭하는 것이며, 관동팔경은 통천(북한) 총석정, 고성(북한) 삼일포, 고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 월송정으로 2곳은 북한에, 4곳은 강원도에 그리고 2곳은 경북 울진에 있는데, 울진은 원래 강원도였는데 1963년에 경상북도로 편입되었다.
죽서루 안내 팸플릿(pamphlet) - 설명
죽서루에 비치된 안내 팸플릿에 죽서루의 내용이 비교적 소상하게 나와 있어서 팸플릿 내용 정도만 제대로 소화해도 죽서루의 대강은 알 것 같다. 그러나 자료에도 나와 있듯이 죽서루에 대한 자료 관리와 전승이 제대로 되지 않은 걸 보면, 변방이라고 중앙에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도호부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방에 두었던 군사.행정기구로 3품 이상의 부사(府使)를 두었던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삼척도호부에는 정청(政廳 : 객사客舍 : 진주관眞珠觀) 등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부가 훼손되어 지금은 복원작업을 하는 중이어서 내삼문 앞에서만 바라보고 나중에 다시 둘러보기로 했다. 객사가 진주관인 것은 삼척의 옛 지명이 진주(眞珠)였기 때문이라고 하며, 객사에 館을 쓰지 않고 觀을 쓴 게 특이하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 가사(歌辭)의 터
송강 정철의 가사문학(歌辭文學)을 기리기 위해 1991년에 2개를 세웠다는데, 하나는 이 죽서루에 세웠고 또 하나는 정자의 고장 담양의 식영정에 세웠다고 한다. 보는 사람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나 송강 정철에게는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느낌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담양은 유배를 갔던 곳이고, 삼척은 관찰사로 부임을 했으니 말이다.
암각화(巖刻畵)와 용문(龍門) 등
암각화가 있고 용문도 있는데, 용문만 담고 암각화는 바위 전체로 담아봤고 오십천을 비롯한 주변 풍경도 조금 담아봤다.
죽서루 그림들
그림은 강세황, 정선, 김홍도, 이방운 순이며, 이런 그림이 그려지던 때에는 오십천에 죽서교도 없었고 죽서루 앞에는 지금 같은 퇴적지(堆積地)가 아니라 나룻배가 다녔으니 화가들의 마음을 동하게 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네 분의 그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강세황과 김홍도의 그림에서 사실감이 느껴진다.
삼척을 수없이 지나다니면서도 자동차전용도로로 휑하니 지나쳐다니고 생선회나 먹었지 죽서루를 찾아보지 못해 이제야 관동팔경 제일루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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