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Wedding Anniversary(결혼기념일)

아미고 Amigo 2024. 11. 23. 11:48

(2024.10.29)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신탄리역 백마고지역 백마고지전적지 철원노동당사 철원역사문화공원 소이산 도피안사 학저수지 고석정

 

생일날에는 나에게 이 세상구경을 시켜준 부모님께 감사드리는 날이고, 결혼기념일에는 내 삶의 반쪽을 채워준 배우자에게 감사드리는 날이다해서 결혼기념일에는 지리산종주도 했고 외국여행도 하는 등 특별한 날로 만들면서 살아왔는데, 이번 41주년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철원을 둘러보았다. 세월 참 잘도 간다.

 

신탄리역(新炭里駅)

 

고대산(高臺山, 832m)을 즐겨 다니던 시절에는 의정부에서 신탄리행 기차를 타고 다녔는데, 지금은 기차 운행을 중단하고 대체 운송버스를 운행한다는데 주민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고대산과 고대산 역고드름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불편할 것 같고, 기차 타고 다니던 낭만과 추억이 사라져버렸다.

 

 

 

 

 

백마고지역(白馬高地驛)

 

우리나라의 철도역 중에서 최북단에 있는 철도역으로 2012년에 준공하여 기차 운행을 하다가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역사 주변에 마을도 없이 썰렁한 걸 보면 처음부터 보여주기 쇼를 한 것 같다.

 

 

 

 

 

 

백마고지 전적지

 

철원 일대에는 백마고지를 필두로 아이스크림고지(삽슬봉), 피의 능선, 저격능선 등 치열한 전투와 포격과 폭격이 집중되었던 전장(戰場)이 많았던 지역이다. 나도 이 지역의 GP(Guard Post)에서 군 생활을 했는데, 교통호에서 탄피가 흔하게 발에 밟히는 정도였으니 짐작이 될 만 했다.

 

전쟁과 전투 또는 싸움, 이거 참 서글프고도 웃기는 거다.

생명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곳에서 지휘하고 명령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념과 목적 그리고 명분과 이유 등등이 있겠지만, 전장에서 피아(彼我)로 맞닥뜨리는 당사자들에게는 그런 건 알 바 아니고 내가 죽지 않으려고 상대방을 쏠 것이다. 어쨌든 수없이 많은 청춘들이 스러져갔으니 애달픈 일 아닌가!

 

 

 

 

 

 

 

철원 노동당사

 

내가 이 노동당사를 처음 봤던 것은 1970년대에 이곳으로 지휘실습을 와서 봤는데, 그때는 이곳이 민통선지역이었고 그 모습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관리를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노동당사를 해방 다음 해인 1946년에 지었다니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큰 건물을 지어 노동당과 사회주의의 위용을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사회주의, 그거 참 말로는 좋은 세상일 것 같은데, 인간의 이기심(利己心)이 존중되지 않고 작동되지 않는 세상은 게으름과 비능률이 지배하게 되는 것 같다.

 

 

 

 

 

철원 역사문화공원

 

철원노동당사 앞의 벌판에 영화촬영세트장 같은 역사문화공원을 만들어두었는데, 백마고지역과 함께 한 묶음으로 알쏭달쏭한 곳이다. 야심찬 계획이 있었겠지만 수도권의 관심과 시선을 끌지 못하면 계획은 계획으로 끝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한 게 소이산(所伊山, 362m) 모노레일로, 개통한지 2년 정도인데 흥행에 성공할지 모르겠다.

 

한편 노동당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노동당사와 역사문화공원 일대가 철원읍의 중심부였을 텐데, 전쟁과 분단으로 노동당사 하나를 제외하고는 삶의 흔적들이 사라져버려 안타깝고 황당한 일이다.

 

 

 

 

 

소이산(所伊山, 362m)

 

해발 362m의 소이산을 마치 한라산 오르듯이 올랐다.

여기까지 왔는데 전망 좋은 소이산을 오르지 않을 수야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철원군청과 이 공원에서는 모노레일 이용을 강요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쉬는 날이어서 모노레일도 운행하지 않는다. 공원에서 정상까지는 800m라는 약도가 공원에는 있는데, 둘레길에 들어서니 소이산 정상 전망대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눈에 보이질 않는다.

 

시간이 널널하면 둘레길까지 걸으면 좋겠지만 둘레길을 조금 걸어봐도 정상으로 가는 길안내가 없어서 낙엽이 수북하고 경사가 심한 산을 마구잡이로 지그재그 방식으로 오르느라 땀범벅이 되는 쌩고생을 하며 정상에 오르고 나니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41주년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혹독한 산악훈련을 시킨 셈이 되었으니 미안한 건 나중이고 체력이 모두 소진되어버렸다.

 

그렇게 쌩고생을 해서 올라간 정상의 데크 광장에서는 한 무리의 종교단체가 늴리리판을 신명나게 벌여 난리굿인데 귀가 아프고 머리가 산란스러워 풍경사진 좀 담고는 서둘러 내려왔다.

 

 

 

 

 

소이산 모노레일(Mono rail)

 

소이산에서 바라보니 철원 일대에 드넓은 철원평야가 펼쳐져 있어 이를 서로 차지하려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전장이었던 것 같다. 낙엽이 수북한 언덕길을 어렵사리 오르기는 했는데 내려갈 일이 걱정이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오늘 운행을 하지 않는 모노레일 길이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이어서 그 길을 선택했다.

 

 

 

철원 도피안사(到彼岸寺)

 

피안(彼岸)과 도피안(到彼岸), 참 멋진 말이다.

열반(涅槃)의 세계와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을 말한다고 하는데, 도피안이면 피안에 도달한 거 아닌가싶고, 열반은 수행을 통해 지혜를 깨달아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를 의미하니 이게 바로 극락(極樂)이려니 생각되는데, 극락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아무튼 도피안사를 몇 번 다녀왔는데, 아내는 전혀 기억에 없다고 하더니 도피안사에 도착하여 왼쪽의 연못을 보더니 생각이 난다고 한다. 다행이다. 사라져가던 기억 하나를 다시 새롭게 각인하게 되었으니 피안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도피안사에는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유명한데 늦은 시각에 법당을 기웃거리는 게 마음에 걸려 생략하고 자료사진으로 대신했다. 철조비로자나불좌상에 얽힌 일화가 도피안의 이야기 같으며 이로 인해 도피안사라는 절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화개산 도피안사

 

일주문에 화개산 도피안사라고 되어 있으니 조그마한 산이지만 화개산인 모양이고, 금당인 대적광전 앞의 석탑은 보물 제223호인 3층석탑이다. 신흥사의 말사인 작은 절이지만 국보와 보물을 보유하고 있으니 자부심이 크겠고, 철원이 좋았던 시절에는 영화를 누렸을 것이다.

 

 

 

 

 

 

 

학저수지

 

한창 낚시에 빠져있던 시절에 몇 번 갔던 곳이어서 이 계절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정자가 있는 곳으로 가봤는데, 원래 수심이 낮은 곳인데 물까지 빠져버리니 차라리 아름다운 옛 기억으로 남겨둘걸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고석정(孤石亭)

 

고석정에도 꽃 축제가 벌어졌는데 문은 이미 닫혔고 저녁을 먹고 귀가를 해야 한다. 미리 검색해두었던 정육식당으로 가서 맛있는 모듬고기를 먹고 여기까지 잘 동행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는 더 이상 아프지 말고 이 정도에서 잘 버텨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왠지 등 뒤에서는 찬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상국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김현성이 부른 노래 국수가 먹고 싶다.”를 계속 리피트(repeat)하며 결혼 41주년을 마무리했다. 이제는 서로가 허전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런 말이 있더라.

너 살아봤냐?

나 살아봤다!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李相國, 46년 강원 양양출생)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치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는 것도 아니어서 긴 글은 싫어하는 편인데...

길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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