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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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고려궁지의 승평문
말 그대로 고려궁지(高麗宮址)다.
고려는 몽골의 침략으로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를 해서 39년간 머물렀지만, 다시 환도할 때에는 몽골의 요구에 따라 강화궁을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하니 참 씁쓸하다. 몽골은 고려의 퇴로를 없애버린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승평문(昇平門)과 외규장각 그리고 명위헌(明威軒) 등은 모두 조선시대의 유적들이다.
명위헌(明威軒) – 강화 유수부 동헌
몽골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고려왕조가 강화도로 천도를 했으니 강화도 주민들이 얼마나 고초가 많았겠는가! 넓은 땅 두고 작은 강화도로 천도를 한 것은 몽골군이 바다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그런 약점을 이용한 것이라 하지 않던가!
외규장각
로마 또는 이탈리아만 지붕 없는 박물관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섬 강화도도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강화도 전체에 걸쳐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있기 때문인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가슴 아픈 유적들이다.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정조(正宗 , 조선 제22대 왕, 1752∼1800)가 규장각을 정비하면서 자신을 지칭한 말이라는데, 하늘의 달은 하나지만 만 개의 냇물을 비추어 만 개의 달이 있다는 것으로, 하늘의 달은 바로 정조 자신이라는 말이라는데, 이 글은 창덕궁 후원 존덕정(尊德亭)에 있다(내 블로그 “창덕궁 후원” 참조). 규장각(奎章閣)을 내외로 구분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창덕궁 후원에 내규장각을 두었고 강화도에 이렇게 외규장각을 두었는데, 약소국의 슬픔도 있는 거 같다.
강화부종각 & 강화 동종
종에 금이 가는 일이 있고 그래서인지 종을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다.
벚꽃 길
강화 북산에 고려궁지 보자고 온 건 아니고, 서울의 벚꽃들이 모두 시들해지면 대략 1주일 정도 늦게 강화 북산의 고려궁지에서부터 강화내성의 북문에 이르는 곳까지 화려한 벚꽃이 피날레를 장식한다. 그런 벚꽃을 보러 온 것인데 조금 늦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보지 않으면 금년은 건너뛰는 게 아쉬워서 북산 산책삼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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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문 진송루(北門 鎭松樓)
북문 진송루는 북산 고갯마루에 있으며, 북문 너머에는 연미정(燕尾亭)이 있고 또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져 흐르는 “조강(祖江)”이라는 남북공동이용수역에는 유도(流島)가 있으며 북한이 훤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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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 오솔길
진송루에서 성벽길로 곧장 북장대터로 가버리면 너무 밋밋해서 북문 너머의 오솔길을 따라 약수터를 지나 북장대터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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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장대터와 성곽길
강화내성의 장대(將臺)는 유일하게 강화 남산의 정상에 복원되어 있으며 북산에는 이렇게 빈터로 남아있는데, 이곳에도 북장대가 복원되었더라면 북쪽을 시원하게 조망하는 전망대가 되었을 것 같은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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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과 남장대
강화내성에 복원된 유일한 남산(南山, 222.5m)의 장대( 將臺)다. 표고가 200여 미터에 불과하고 산 모양도 둥그런 것 같지만 출발점이 해발 제로 수준에서 오르니 쉽지만은 않다. 남문에서 올라 서문으로 내려오거나 그 반대로 갈 수도 있다.
다시 벚꽃 길
철지난 벚꽃이기는 해도 오늘 지금이 지나면 1년을 기다려야 하니 내려가면서 눈이 아프도록 실컷 봐둔다. 그래도 이렇게 보여주는 게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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