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 10월 1일
10월 2일이 샌드위치 데이인데, 그날을 임시공휴일로 정해버리니 한가위 연휴가 6일이나 되어 황금연휴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공항과 기차역 그리고 고속버스 터미널이 붐비고 모든 도로에서 트래픽 잼(Traffic Jam)이 발생할거라 생각돼서 어제 인천공항을 둘러보았더니 제1청사는 그럭저럭 여행자들이 있는데 제2청사는 썰렁한 게 경기(景氣)가 많이 위축된 모양이다.
어쨌든 그런 연휴 속에 10월 1일 건군 75주년의 국군의 날이 있는데 국군의 날 행사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현충일에는 복잡해서 피하고 오늘 같은 날에 참배 겸 산책을 하러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서달산(西達山)과 현충원은 아내와 함께 산책하느라 가끔씩 가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보거나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곳이다.
현충문 앞 잔디광장에는 축구하는 아이들, 연 날리는 아이들이 뛰놀고 나무그늘에는 깔판을 펴거나 의자를 펼쳐놓고 쉬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일반묘역
어느 목숨인들 안타깝지 않은 목숨이 있을까 만은 국가유공자 묘역이나 장군 묘역에 있는 분들보다는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으로 추모하고 있는 분들과 “일반묘역”에 있는 분들이 더욱 안타깝다. 청춘을 한번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조국을 위해서 산화했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가 말이다.(옛날 사진을 활용해서 태극기가 없다.)
무명용사탑에서 잠시 쉬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우리나라에서 4촌 이내의 친족 중에서 보훈가족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이 있었기에 모르기는 해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승만 대통령 묘소
이 묘소에는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어서 멀리서 봐도 알아볼 수 있으며 왼쪽으로 몇 걸음 올라가면 조선의 11대 왕 중종의 후궁이었던 창빈안씨의 묘소가 있다.
창빈안씨 묘소
창빈안씨(昌嬪 安氏, 1499∼1549), 이분 내가 참 좋아하는 분이다.
중종(中宗. 조선 11대 왕. 1488∼1544, 재위1506∼1544)의 후궁으로 3남 1녀를 두었다는데 손자인 선조(宣祖. 조선 제14대 왕. 1552∼1608)부터 마지막 순종(純宗, 1874∼1926, 재위1897∼1907)까지 14왕 340여년을 그분의 손자들의 왕국이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마무리는 모양이 많이 빠졌지만...
나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갈 때마다 이 창빈안씨 묘소는 빠뜨리지 않고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우선 창빈안씨가 이 현충원의 터줏대감이기 때문이며 묘소의 위치가 이승만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묘소 사이의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어서 찾는 사람도 거의 없고 행인들의 시선도 차단되기 때문이다.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으로 시작하는 신도비가 내 관심을 유발했는데, 봉분과 망주석 그리고 장명등과 문석인 등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김대중 대통령 묘소
용서와 사랑 그리고 상생과 승리 등에 대하여는 대강 짐작을 해보지만, 난해한 부분도 있다.
현충원의 터줏대감인 창빈안씨 묘소만 묘의 담장에 해당하는 곡장(曲牆)이 돌담과 기와로 되어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부드러운 흙으로 자연미의 조화를 이루는 거 같다.
장군묘역
군인의 길은 참으로 힘든 길이다.
가장 힘든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 잦은 보직이동과 그에 따른 자녀교육 등 가정생활의 어려움인데, 그것도 대체로 소령(사무관?)까지이고 대대장 보직을 받는 중령(서기관?)부터는 고위 공무원이다.
그렇게 어려운 길을 걸어서 이 묘역에 묻힌 분들이겠지만 더러는 순풍에 돛 달고 여기에 묻힌 분도 있을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묘소
미스터리한 것들이 많은 분이다.
공작지
박정희 대통령 묘소 바로 아래에 이런 연못이 있는데, 처음부터 있었던 것인지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만들면서 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배산임수(背山臨水) 기준에서도 한강과 중첩되지 않나 생각된다.
현충원에 올 때마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는 것인지 반대로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다가 실없이 웃는다.
김영삼 대통령 묘소
꽃들이 넘어져있는데 바람 때문이려니 생각은 되지만 혹시 다른 사정이 있는지 몰라서 그대로 두고 내려와서 관리요원에게 얘기를 해줬다.
상여(喪輿)
어느 사이에 상여가 완전히 사라졌다.
삶과 죽음의 가교 상여가 단장되고 만장(輓章)과 함께 상여가 나가면서 울려 퍼지는 상여소리가 온 마을과 이웃 마을들까지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강가로 불러내었던 상여도 소리도 사라졌다.
이런 상여를 딱 한번 메어봤다.
그 많은 사람들이 사람 하나 메고 가는 것인데, 왜 그리도 무겁던지...
살아보니, 그 상여에는 망자의 삶의 무게까지 실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
그게 영혼의 무게인지 모르겠다.....
국립서울현충원의 터줏대감 https://amigohula.tistory.com/6748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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