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고려왕릉 길의 이규보 묘와 향교 그리고 길정지와 국화지

아미고 Amigo 2021. 12. 13. 21:21

2021.11.17 & 27 

 

보리밭

강화도 고려왕릉 길에는 보리밭이 있고, 언제부터인가 청보리라는 말이 유행이다. 나 어렸을 때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그냥 보리라고 했고, 보리는 밀과 벼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푸르고 여린 싹으로 시작하여 여물어가면서 누렇게 변해가는 곡식이기 때문이었을 거다. 추가접종 또는 3차 접종보다 부스터 샷이 더 멋있어 보이는 거 같은 효과일까?

 

보리죽도 제대로 못 먹었던 시절도 있었다지만, 보리농사는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이렇게 박물관 같은 보리밭이 있고, 어떤 지방에서는 봄에 보릿국을 끓여먹으며 맛있다고 하는데, 내 입에는 별로였던 걸 보면 음식을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라 추억도 함께 먹는 것 같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년) 묘

강화도의 고려왕릉 중 가릉, 석릉, 곤릉 가까이에 이규보 묘가 있어서, 떡 본 김에 제사지내는 격으로 둘러보는데, 사당인 유영각(遺影閣)이 있고 별장(別莊) 또는 별서(別墅) 격인 사가재(四可齋)까지 있으니 동시대를 살았던 왕과 왕릉보다 더 화려하다.

 

무신정권(1170∼1270년) 시절의 한복판을 살았던 선생은 최충헌에 의해 등용되어 두 갈래의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관념론 보다는 유물론의 실용주의를 추구했던 것으로 보이며 관직에 들락거리며 귀양살이도 하는 등 관료보다는 문인(文人)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길정저수지

길정저수지는 고려 왕릉과 이규보 묘 주변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에 틈만 나면 다녔던 내 단골낚시터의 하나로 많은 추억들이 서린 곳이어서 아주 오랜만에 둘러보았더니 저수지야 그대로이지만, 이곳도 세월 따라 주변이 많이 변했다.

 

저수지 바로 옆에 사시던 유씨께서 내 아이들을 살갑게 챙겨주셨던 게 생각나서 수소문했더니 지금도 살고 계신다기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빈손인 게 못내 아쉬웠다.

 

언젠가는 태풍이 부는 밤에 나 혼자 밤낚시를 하고 비를 맞으며 나오는 나를 보시고선, 추울 테니 따끈한 국물에 밥 한술 하라고 하시던 따뜻한 말씀은 영영 잊어지지 않는다. 태풍이 휘몰아치는데, 그것도 밤낚시라니, 그래서 낚시꾼을 일러 낚시 병 환자라고 하지 않는가!

 

 

 

 

 

 

 

 

 

 

강화향교

강화도를 내 집 드나들 듯 다녔으면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강화향교(강화읍 관청리 938-2)는 초행길이었는데, 생경한 모습에 이리 돌고 저리 돌며 한참을 살펴보았다.

 

고려왕릉 홍릉 가는 길에 둘러보는데, 문이 잠겨있어서 내부에 들어갈 수도 없고, 향교의 중심인 명륜당과 대성전 중 명륜당이 없으며, 외삼문과 명륜당과 동재 서재가 있는 공간 사이에 담장과 또 하나의 문이 있어 특이하고, 향교 앞에 있는 “강화향교유림회관”은 난생 처음 보는 풍경이어서 강화의 유림과 전교(典校)가 대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교들이 문화재랍시고 국비든 지방비든 정부의 예산 지원도 받을 텐데, 향민들과 방문객들에게는 무얼 하며 삭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화저수지

고려 홍릉 가는 길의 강화읍 국화리(菊花里)에 있어서 국화저수지인데, 고려산과 혈구산이 만나는 고갯길을 넘어 내가지(고려지)를 수없이 넘나들면서 국화리를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국화(菊花)를 본 기억이 없는데 왜 국화리인지는 모르겠다.

 

낚시갈 곳이 마땅치 않거나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때 국화지를 갔던 적이 있지만, 낚시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콧바람 쐬러 갔던 곳이어서 언감생심 손맛은 생각하지도 않은 곳이었고, 발길만 비추는 산책로의 가로등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