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강화도의 고려 왕릉

아미고 Amigo 2021. 12. 8. 11:40

2021.11.17 & 27 

희종(熙宗)의 석릉(碩陵)

고려 제21대 왕 희종(1181∼1237년, 재위1204∼1211년)은 무신정권의 실세인 최충헌(崔忠獻, 1149∼1219년)이 마음대로 왕을 폐립하던 시기에 최충헌에 의해 폐위되어 강화 교동도로 유배되어 용유도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하며, 능은 강화도 양도면 길정리 산182번지에 있다.

 

 

 

 

 

어두고인돌

희종의 석릉 가는 길 초입의 왼쪽에는 이런 어설픈 고인돌이 있다.

 

 

 

 

 

 

 

 

원덕왕후(元德王后)의 곤릉(坤陵)

원덕왕후 유씨(元德王后 柳氏, ? ~ 1239년)는 고려 제22대 왕 강종(康宗, 1152∼1213년, 재위1211∼1213년)의 왕비로, 능은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75번지에 있는데 능 입구와 주변이 사유지인지 안내표지가 없다.

 

 

 

 

 

 

 

 

고종(高宗)의 홍릉(洪陵)

고려 제23대 왕 고종(1192∼1259년, 재위1213∼1259년)은 무신정권하에서 몽골의 침입에 시달려 1232년에 강화도로 천도를 하여 1270년에 환도하기까지 40년가까이 강화궁이 고려 왕궁이 되었으며, 부처의 힘을 빌려 외적을 물리쳐보려고 대장경(재조 팔만대장경:합천 해인사)을 조판한 왕으로, 능은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180번지에 있다.

 

그런 전쟁 중에 불타버린 대장경을 다시 조판했다니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황당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팔만대장경이 남아있는 것 아니겠는가!

 

홍릉은 진달래꽃 군락지로 유명한 고려산 동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재실에서 약 400m를 더 올라가야 하며, 능 오른쪽에는 훼손된 석물이 있는데, 석수(石獸)를 설치했던 구조물일 것이라는 추정을 한다고 한다.

 

 

 

 

 

홍릉(洪陵) 재실(齋室)

홍릉은 강화도에 있는 고려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재실이 있는데 능역보다 재실을 더 정성들여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의욕적으로 만들었을 것 같은 주변의 학생야영장 시설이 흉물이 되어있으며, 여기에서 약 400m를 더 올라가야 홍릉이 나온다.

 

“사모곡”의 부식된 부분은 “호미도 낫이기는 하지만”일까.....

 

 

 

 

 

 

 

 

순경태후(順敬太后)의 가릉(嘉陵)

순경태후(1222∼1237년)는 고려 제24대 왕 원종(元宗, 1219∼1274년, 재위1259∼1274년)의 왕비로 16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며, 능은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 16-1에 있다.

 

 

 

 

 

능내리 석실분(陵內里 石室墳)

출토된 유물로 보아 고려 제21대 왕 희종(熙宗)의 왕비 성평왕후 임씨(成平王后 任氏, ?∼1247년)의 소릉(紹陵)으로 추정하기도 하며, 가릉에서 몇 발자국 더 올라가면 된다.

 

 

 

 

 

 

 

 

능내리 마을

남한에 있는 고려 왕릉은 모두 6기로 공양왕릉(고양시 원당동)을 제외한 5기가 강화도에 있으며 희종의 석릉, 원덕왕후의 곤릉, 고종의 홍릉, 순경태후의 가릉 및 성평왕후의 소릉이라고 하는데, 소릉은 그 위치가 불분명하여 외포리 고분군과 가릉 옆에 있는 능내리 석실분을 소릉으로 추정하기도 하여 실제로 답사할 수 있는 왕릉은 4기인 셈이다.

 

 

 

 

가릉, 석릉, 곤릉

위에 열거된 고려 왕릉의 주인공들은 고려의 무신정권(1170년:제18대 의종∼1270년:제24대 원종까지 7대 약 100년 동안), 몽골의 침입(1216∼1270년)과 내정간섭, 강화도로의 천도(1232∼1270) 그리고 삼별초의 난(1270~ 273년) 등 내우외환의 시기와 대부분 겹치고 있으며, 제34대 공양왕(恭讓王, 1345∼1394년, 재위 1389∼1392년)에 이르러 약 500년의 고려왕조는 막을 내렸다.

 

사실 고려(918∼1392년까지 475년)는 세계사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의 1000년 암흑기라는 중세(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서부터 14세기에 시작된 르네상스까지)를 관통해왔지만, 당시에 동서는 별로 교류가 없었기에 중화문화권에서 고려의 민족과 문화가 그대로 조선으로 이어져 생뚱맞은 대한민국과 북조선이 되어있다.
그러나 민족국가와 국민국가는 위정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일 뿐, 사람들은 부단히 진화하는 것 같다.

 

 

 

 

홍릉

강화도 고려 왕릉에 나오는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 강화도生) 선생의 시는 강화도에 대한 선생의 시 256수를 담은 한시 기행시집 “심도기행(沁都紀行)”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