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5)
인왕산 호랑이
“인왕산 호랑이”라는 말이 있었다.
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지금도 인왕산에는 호랑이가 제법 많이 살고 있다.
다만 세상이 각박해지고 영악스럽고 잘아져서 잔챙이들이 설치는 세상이니 호랑이도 그런 세상에 걸맞게 진화와 변신을 해가며 살 뿐이고 지금도 이렇게 건재하다.
시시때때로 오르는 인왕산이고 시인의 언덕이고 수성계곡이지만, 지금껏 인왕산을 블로그에 올리지 않은 것은 인왕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올리려니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각시와 함께 찬찬히 산책을 했다.
출발 –사직공원 – 단군성전
사직공원 남쪽 담장을 끼고 출발하여 단군성전의 단군을 알현하며 자세히 살펴보니 용안이 내가 생각하는 한민족의 얼굴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느껴지는데, 우리 조상들의 모습은 이랬는지도 모르겠다.
한양도성과 무악재 하늘다리 & 바위들의 향연
한양도성에 도착하여 조금 아래로 내려가 무악어린이공원을 거쳐 안산(모악산)과 인왕산을 연결해주는 무악재 하늘다리로 간다.
무악재 하늘다리를 둘러보고 갔던 길을 조금 되돌아오다가 인왕정 방향으로 올라가며 얼굴바위 – 인왕정 – 데크길 – 해골바위 – 모자바위 등의 바위들의 향연을 감상한다.
국사당(國師堂) & 인왕사(仁王寺)와 선바위
국사당과 인왕사는 모두 조선 초기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사당은 원래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에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하고, 인왕사는 조계종이 아니라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본원종이라 하며, 선바위는 장삼을 걸친 중의 모습 같다 하여 참선의 선(禪)을 붙여 선바위라 했다지만, 내 눈에는 귀신같아 보이는데 제 눈에 안경 같은 얘기다.
인왕산에는 화장실이 없지만 “인왕사 대웅전”에는 화장실이 있는데, 매너가 필요할 것 같고, 인왕산의 국사당에서는 북소리 장구 소리 날라리와 피리 소리에 맞춰 마치 흥겨운 노래 같은 가락이 흐르니 지나가는 나도 흥취가 돋아 한바탕 어울리고 싶어진다. 천상병 시인의 소풍 얘기처럼 삶이 딱 한 번의 소풍인데 말이다.
한양도성 길
이제까지 한양도성의 성곽을 중심으로 서쪽(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건너편)을 돌아보고, 이제는 성곽길을 따라 인왕산 정상으로 향한다.
인구 천만 명의 세계적인 대도시 서울의 도심에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준엄해서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를 남긴 산이 있고, 시민들은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으니 축복이다.
인왕산( 仁王山) 정상 & 치마바위
해발 338m의 인왕산은 궁궐의 서쪽이어서 서산(西山)이라 부르다가 세종 때부터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신(金剛神)을 인왕이라 부르는 것에 착안하여 조선왕조를 잘 보살펴달라는 뜻에서 인왕산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치마바위는 말 그대로 치마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지만, 자료에는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원비인 단경왕후 신씨가 중종반정을 성공한 왕후의 아버지 신수근을 살해한 것이 부담이 되어 왕후를 폐위했기에 인왕산 아래로 쫒겨난 신씨가 자신이 살아있음을 중종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 치마바위에 자신의 치마를 널어두었다고 하는 가슴 아픈 사연이 서린 곳이다.
기차바위
정상에서 북쪽으로 치마바위를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창의문(자하문)이고 왼쪽으로 가면 기차바위가 나온다. 기차바위 가는 길에도 해골바위가 있고,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와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는 창의문으로 갈 것이다.
인왕산에서 바라본 북악산 그리고 부부송(夫婦松)
한양의 진산 북악산이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아서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여생이 편치 않았던 곳이며, 자연의 신비 부부송이다. 부부송 아래에는 청계천의 발원지인 수성계곡이고, 북촌과 대비되는 서촌이었으며, 지금은 통인시장과 박노수 미술관 등이 있다.
목인박물관(木人博物館) 목석원(木石苑)
윤동주 문학관과 시인의 언덕이 가까워지는 무렵에 한양도성 밖 왼쪽에 펼쳐진 풍경이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 & 문학관
창의문(자하문)과 북악산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인왕산 북서쪽 끝자락에 시인의 언덕이 있고, 그 언덕에는 산수유가 가을을 웅변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 옛날 상수도 관련 시설을 수선한 윤동주 문학관이 있는데, 윤동주의 삶을 이 문학관에 그대로 담고 싶은 컨셉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머리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아이디어가 좋은 것인지, 문학관의 벽체 색깔과 문학관 간판이 거의 같은 색깔인 게 눈 운동 좀 하라는 얘기렸다.
역사와 계급의 무게
“1.21 사태”라고 하는 1968년 1월 21일에 있었던 북한 특수요원들의 청와대 습격이 바로 이 자하문(창의문) 고개에서 좌절되었는데,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북한의 특수요원들을 검문하던 종로경찰서의 “정종수 경사와 최규식 경무관”이 순직하였는데, 계급의 무게만큼이나 동상의 크기가 비례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모습이지만, 그분들의 그릇의 크기는 아닐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창의문 – 자하문(紫霞門)
한양 사소문(四小門)의 하나로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문이라는데, 고유 명칭을 두고도 옛날에는 자하문이라 불렀고, 부암동과 세검정으로 가는 이 나지막한 고개를 지금도 자하문고개라 부른다.
자하문을 통과하여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추상화가인 김환기(1913∼1974)의 “환기미술관” 가는 길에 있는 맛있는 치킨집에서 치킨에 호프를 한 잔 하려고 했는데 대기리스트에 올리고 기다리란다.
이래본 적이 없었는데, 이 집 치킨이 조금 비싸긴해도 맛있기는 한데 옆에 있는 돈가스집은 널널해서 돈가스로 대신하고 귀가했는데, 내가 페이스 조절을 한다고 했지만 각시가 많이 힘든 하루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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