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청송 주왕산 대전사

아미고 Amigo 2020. 10. 26. 12:18

 

(2020.10.16) 

 

 

주왕산(周王山) 대전사(大典寺) & 기암(旗岩)

 

주왕산(周王山)과 대전사(大典寺)를 이해하려면 우선 나당연합군에 의해 660년에 백제가 멸망하고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하여 삼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해 한반도에 진출하였던 당나라 군대를 676년에 신라가 한수이북(漢水以北)으로 몰아내고 한반도의 남부를 통일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다.

 

이걸 모르면 웬 생뚱맞은 당(唐)나라의 주왕과 그의 아들 대전도군이며 주왕산과 대전사에 대한 유래와 이해가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며, 대전사는 672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밖엘 나오니 청송은 아직 밤이었고 풍경은 이랬다.

나는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고, 그 양반은 커피보다는 두유를 좋아해서 마트를 찾으니 모두 다 아직 한밤중이다.

 

주왕산 입구 일대를 다 뒤져도 문을 연 마트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청송읍으로 한참을 달려가서 사 왔지만, 아내에게는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나왔지만, 시간의 마술사 안개의 짓궂은 장난은 여전하고, 자동차 야영장을 둘러보는 것을 시작으로 좌판과 가게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대전사로 올라간다.

 

아직 단풍철이 많이 이르고 주중인데도 야영장에는 야영하는 사람들이 가득 찬 것을 보면 코로나로 인해 외국 여행이 어렵고, 밀폐되고 밀집되고 그래서 밀접접촉을 피하기 어려운 도시를 피해 이런 식으로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나도 옛날 같았으면 당연히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을텐데, 어느 때부터인가 아내가 허리 때문에 야영은 싫다고 해서 야영을 접었는데, 비용의 문제를 떠나 약간 번거롭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야영은 야영 나름의 포근함과 아늑함 그리고 낭만이 있다.

 

 

 

 

 

 

 

 

아침에는 이렇게 자욱하던 안개를 대전사와 용추폭포를 둘러보고 내려오니 모두 벗어던지고 속살을 드러낸다. 언제부터인가 사찰과 장사가 공존하고 있고, 심지어는 사찰 내에서도 장사를 한다.

 

돈이 진리의 최고봉이 된 세상이다.

 

 

 

 

 

 

 

 

꽤 유명했던 선사의 비석인가 본데, 나는 잘 모르겠다.

 

 

 

 

 

 

 

 

보광전

 

주왕산 대전사의 큰 법당으로, 거의 모든 사찰의 큰 법당인 대웅전은 가장 웅장한 게 일반적인데 대전사의 보광전은 담백하며 아름다운 탱화가 눈길을 끌고 보광전 앞 좌우측에 대칭으로 서있는 4층 석탑은 수리 중이며 대전사와 보광전에 대한 내용은 사찰의 설명으로 갈음한다.

 

 

 

 

 

 

 

범종루

 

 

 

 

산령각

보통의 산신각에 해당하는 것인데,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전래의 토착신앙(산신)과 융합되면서 토착화된 것이기에 나는 절에 가면 꼭 산신각을 둘러본다.

 

 

 

 

관음전 &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이외에도 많은 전각들과 부도 그리고 굴러다니는 돌들로 쌓은 돌탑등도 있지만 생략한다.

 

 

 

 

 

 

 

기암(旗岩)

신라의 마 장군이 당의 주왕을 죽이고, 대전사의 왼쪽 뒷편에 있는 이 기암에 깃발을 꽂았다 하여 기암이라는데, 사료에는 676년에 신라가 당의 군대를 한수이북으로 몰아냈다고 되어있지만, 당은 고구려와 백제의 점령군은 물론 신라까지 정복하고 싶은 야욕이 있었고, 그래서 신라와의 갈등도 많았으며 종국에는 한판 전쟁으로 번진 것 아닌가.

 

 

 

 

 

 

 

 

 

 

주왕암 가학루 - 출입문

 

 

 

 

대전사 주왕암 & 나한전

처음에 얘기했던 당나라의 주왕과 그의 아들 주도에 대한 시답지 않은 얘기들이 있는데,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생략한다.

 

 

 

 

 

 

 

 

주왕굴 & 주왕폭포

지금(위)의 모습을 옛모습(아래)과 비교해 보면, 내 생각으로는 괜히 자연을 훼손한 것 같다.

 

 

 

 

 

 

 

대전사 백련암(자료사진)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연합군에 의한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으로 반쪽의 삼국통일, 그와 관련된 주왕산과 대전사 등을 종합해보면 이렇게 정리되는 것 같다.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이 주왕을 대신해 군대를 이끌고 서해를 건너와 신라와 협공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린 후, 신라는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672년에 “대전사(대전도군에서 유래)”를 건립하였지만, 당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경주까지 함락하려는 야욕으로 경주에서 멀지 않은 주왕산에 주둔하였으리라 생각되며...

 

우여곡절을 거쳐 대전사 건축 4년 뒤인 676년에 신라군이 당나라 군대를 기벌포(금강 하구) 전투에서 이겨 한수이북(당초 약속은 대동강 이북)으로 몰아내 이른바 삼국통일을 이루었고, 주왕굴에 은신해있던 대전도군(주왕이라 호칭)을 신라군 병사가 활로 저격했다는 이야기는 무척 엉성하다.

 

갈등이 있었더라도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다는 것이 엉성하고, 군대를 이끌고 온 대전도군이 혼자 있었다는 것도 우습고, 후일 당나라가 이에 대한 보복이나 응징도 없었다는 것도 난해한 일이니 이야기가 많이 편집된 것 같다.

 

 

 

 

청송의 주왕산과 대전사 그리고 주산지를 비롯하여 아름다운 명승지에 대하여는 청송에서 활동하시는 블로거 Catalina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catalina6422"를 참고하시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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