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익산 미륵사지

아미고 Amigo 2020. 3. 22. 17:50

 

2019.8.19  

 

 익산 미륵사지(益山 彌勒寺址)

 

사적 제150호인 미륵사지는 마한(馬韓)의 옛 도읍지로 추정되기도 하는 금마면 용화산(龍華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다.

 

601(백제 무왕 2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武王, ? ~ 641)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인 서동요로도 유명한 사찰이다.

 

 

국보 제11호인 동양 최대 석탑인 미륵사지 서석탑(西石塔)과 보물 제236호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19748월 원광대학교에서 실시한 발굴조사 때 동탑지(東塔址)도 발견되었다. 건물지(建物址)는 백제와 고구려의 유구(遺構: 토건양식)가 복합되어 있다.

 

미륵사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삼탑삼금당(三塔三金堂)이 배치된 사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한다는데, 보통은 탑이 1개 내지 2개인데 3개인 것도 독특하고, 금당(본당)은 거의 모두 하나인데 셋씩이나 되었다니 특이히다.

 

 



 

 

 

 

 

 

동원 구층석탑(東院 九層石塔)


1974년 동원 탑지를 발굴하여 그 기단의 규모와 형태및 출토 유물을 조사한 결과, 서탑과 같은 백제시대의 석탑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동원 구층석탑은 동원 탑지에서 출토된 기단석, 옥개석, 노반석 등의 탑 부재와 현재 남아 있는 서탑 등을 통해 고증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1991년 복원을 시작하여 1992년 완료했다. 복원된 탑은 하층기단이 1변 12.5m, 상층기단이 10.5m인 2층 기단이다. 탑 높이는 지면에서 상륜부까지 총 27.8m이다. 탑에 달린 풍탁(風鐸: 종 모양의 장식)은 동원 탑지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금동풍탁을 복제한 것이다.


탑 복원에는 기존 탑 부재와 같은 재질인 익산 황등에서 캐낸 화강암 2,000여 개와 백제시대 석탑 기단석과 탑신석 32개를 포함, 2,700여 톤이 사용되었다. 석탑 복원 기록과 사리장엄은 5층 심주석(心柱石)에 봉안하였다.


이 동탑은 1991년 노태우 정권 당시 문화재관리국 주관 하에 새로 조성되었다. 이 탑은 7층 또는 9층으로 추정되었는데, 동탑의 복원 설계 중에 9층이었음을 알려주는 부자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서원 서석탑(西院 西石塔)과 주변

 

 

 

 

 

 

동원 승방지(東院 僧房址)

 

승방은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말한다. 미륵사지에는 동원과 서원의 북회랑지에 연결된 승방지 2개소와, 강당지 븍편에 승방지 1개소가 있다.

 

동원과 서원 승방지는 길이 65m, 폭 14m이고, 내부에는 한 변의 크기가 6m인 방 2개가 남북으로 한 조를 이루며 4조씩 있다. 승방은 사찰의 바깥쪽으로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고, 방을 중심으로 사찰 내측과 외측에 복도와 같은 공간이 있다.

 

발굴 당시 동원의 승방지에는 구들 시설과 아궁이의 흔적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대중12년(858년), 미륵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편과 불에 탄 곡식 및 중국 당나라에서 만든 백자완 등이 출토되었다.

 

북편 기단 외부에서는 백제시대 치미(鴟尾: 용마루 양끝의 장식 기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금당지(金堂址)

 

금당은 불상을 모신 건물로 탑과 더불어 사찰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건물(본당: 대웅전)이다. 삼국유사에는 미륵삼존이 나타나자 연못을 메우고 탑과 더불어 금당을 세 곳에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삼원의 가람 속에 각각 금당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각 금당지는 남쪽과 북쪽에 각각 계단을 둔 이중기단으로 만들어졌다. 기단 내부에는 초석을 받치는 초반석 위에 정방형 기둥 모양의 높은 초석을 놓아 지하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초석의 상면에는 마루를 깔기 위한 나무 보가 놓일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다. 각 금당에서는 문무왕이 죽은 후 동해의 용이 되고, 이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금당에 지하공간을 두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미륵사지는 삼국유사에 미륵사를 창건한 무왕의 아버지를 용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용 신앙과 관련된 공간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용에 관련된 이야기는 억지스럽고 매끄럽지도 못한 것 같다. 감은사지는 대종천이 있고, 이 대종천이 동해의 감포로 흘러들지만, 미륵사지는 사찰 내의 연못이라면 몰라도 물이 없지 않은가...

 

 

 

 

 

 

석등하대석(石燈下臺石)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고 하여 광명등이라고도 하며, 대개 사찰의 금당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사이에 배치된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 장식을 얹어 마무리 한다.

 

미륵사지 석등은 동원과 중원의 금당지 남쪽에 각각 1개씩 하대석만 남아 있으나  서원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 발굴조사 전 서원 지역에서 발견된 석등 하대석 위에 놓이는 기둥, 불을 밝히는 돌, 지붕돌 등이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동원과 중원의 석등 하대석에는 여덟 잎의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말기의 수막새와 같은 연꽃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석등 중 가장 오래된 백제시대 석등으로, 높이는 2.7m 내외로 추정된다.

 

 

 

 

 

 

목탑지(木塔址) 

 

사찰에서 탑은 부처님의 신골(身骨), 즉 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불교가 들어온 초기에는 주로 목탑을 세웠다. 미륵사지는 삼원의 가람배치로 중원에는 목탑을 두고, 동원과 서원에는 석탑을 각각 두었다.

 

목탑지 기단은 잘 다듬어진 돌로 만들어진 이중기단으로, 아래 기단은 면석(面石), 덮개석(甲石), 위의 기단은 지대석(地臺石), 면석, 덮개석을 갖추고 있다. 기단은 4면 중앙에 계단이 있으며, 한 변의 길이가 18.5m인 정사각형이다.

 

목탑지 하부의 기초는 목탑의 기단 면적만큼 메웠던 흙을 다시 깊이 350cm 정도까지 파낸 후, 아래서부터 사람 머리 크기의 돌들을 150cm 정도 채워 다졌다. 그 위에 마사토와 점질토를 섞어 3∼5cm 두께로 층층이 다져올리는 판축(板築)을 했다.

 

목탑지 기초부 바닥을 보면 습지의 개흙이 보이고 있어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못을 메우고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굴조사 당시 기단의 앞에서 출토된 불에 탄 기와들을 통해 목탑은 통일신라 후기 화재에 의해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미륵사지 서석탑(西石塔)

 

국보 제11호인 이 탑은

 

일제강점기1915년에 탑의 일시 붕괴를 막기 위해 시멘트로 보수한 부분이 미관상 좋지 않고 향후 추가 붕괴될 우려가 있어서 국가문화재위원회가 1999년 4월 해체 및 보수 정비를 결정하였다. 전라북도1998년부터 2000년까지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 정비 준비를 시작으로 석탑 해체를 위한 가설덧집 공사 등의 공정을 완료하였고, 2001년 10월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본격적인 해체·보수 정비를 시작하였다.

 

미륵사지 석탑 해체·보수 정비 사업은 당초 2007년에 완료할 계획이었으나, 국보임을 감안하여 신중하게 해체하고 창건 당시 건축 기술을 조사하기 위한 학술 연구를 병행하면서 작업 일정이 늦어져 완료일이 2014년까지로 연장되었다가, 2017년 말까지로 다시 미루어졌다. 

 

2017년 12월 원래 남아 있던 6층까지의 수리가 이루어졌고, 2018년 6월 수리를 완료해 7월 중순까지 임시 개방했다. 최종 개방은 주변 정비 후 2018년 2월에 이루어졌다.

 

 

 

 

 

 

 

 

 

 

 

 

 

 

 

 

 

 

 

미륵사지 출토 석조물

 

이 석조물들은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사용되던 것으로, 1980년부터 1994년까지 15년간 미륵사지 발굴조사에서 모아 정리한 것이다.

 

동원의 석탑에서 사용된 석탑 부재와 방형이나 원형 등 여러가지 형태의 건물 초석, 석등과 당간지주에 사용된 부재, 건물의 기초부에 사용된 기단석, 맷돌 등 22종류의 석조물 6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미륵사지 당간지주(幢竿支柱) - 보물 제236호

 

당간지주는 삼한시대의 솟대에서 유래된 것이라 하며, 깃발 등을 달아두는 당간과 당간을 지탱해주는 지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보수공사 중이었고,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연못

 

사찰에서는 극락세계의 상징으로 연못을 만든다고 하며, 미륵사지에는 동편과 서편에 2개의 연못이 있는데, 각각 동서의 길이가 약 50m 정도 그리고 남북의 폭이 약 40m 정도이다.

 

 

 

 

 

 

 

 

국립미륵사지 유물전시관

 

 

 

 

 

 

낙하훈련

 

주변에 공수부대가 있거나 아니면 낙하훈련 하기에 좋은 지형인지 낙하훈련을 하고 있었다.

 

 

 

미륵사지는 2개의 석탑과 당간지주를 제외하고는 그저 푸른 초원의 모습이지만 미륵사의 내력을 살펴보면 대단했던 사찰이 이렇게 상전벽해가 되어버린 것 같고, 백제의 무왕과 신라의 선화공주에 얽힌 서동요(薯童謠)라는 러브-스토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고...

 

지난 여름에 섬진강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갈 겸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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