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익산토성 & 왕궁

아미고 Amigo 2020. 8. 15. 07:01

2019.8.19

장장 60일에 가까운 장마가 대미를 장식하겠다고 오늘 아침에도 용틀임을 한다.

 

익산토성과 왕궁 이야기, 꽤 난해하고 재미있는 얘기들이 펼쳐지는 곳이다.

 

조그만 마을이 하나 형성되는 데에도 배산임수(背山臨水)가 기본이었는데, 물은 그 자체로 생명이어서 마실 물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농사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화목이 연료였던 시절에 산 또한 필수요소였다.

 

우선 작은 성만 살펴보더라도, 현존하는 낙안읍성, 해미읍성, 고창읍성, 덕포진 등에 비하여 익산토성이 백제 도읍지의 토성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익산시 왕궁리에 있는 백제왕궁터인데, 익산(益山)이라는 지명부터 재미있다.

 

산도 없고 강도 없는 평야와 구릉지대를 도읍지로 하여 정궁을 세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자면, 아마도 행궁 정도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산과 강이 없었기에 익산(益山)이라는 지명을 붙인 것 같고, 도읍지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요건을 갖춘 공산과 금강이 있는 공주의 웅진성(熊津城) 또는 공산성(公山城)과 부소산과 금강(이명 백마강)이 있는 부여의 사비성(泗沘城)이 그런 것들을 상당부분 설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섬진강 가던 길에 잠시 쉬었다 가자며 주마간산했던 추억을 대강 더듬어 올리다 보니 내용이 엉성하다.

 

 

 

라떼는, 국민학교 때, 의자왕이 3,000 궁녀와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흥청망청(興靑亡靑, 이건 연산군의 지적소유권인데) 하다가 망했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시절에 무슨 고층 아파트를 지었던 것도 아니었을테니, 3,000궁녀의 숙소만 해결하기 위해서도 세계 최대의 궁전인 자금성보다 더 큰 궁전이 필요했을텐데, 김부식이가 엄청난 구라를 깐건데 그 이유야 뻔한 것 아닌가.....

 

또한 3,000 궁녀들 속에 무슨 달기가 있어서 주지육림 속에서 홍야홍야 했다니 같은 맥락 아닌가......

 

 

 

세상이 이 토성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포근하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은 언제나 강자들의 세상이고 그들은 도덕. 윤리는 알 바 아니고 법 위에 군림하지 않는가.....

도덕. 윤리는 장삼이사들의 덕목이고...

 

나는 도덕. 윤리에 어둡고 더욱이 법은 너무 어려워서 모르겠지만, 요즈음 조씨 윤씨 손씨 추씨 등등이 세간의 얘깃거리인 것 같다. 그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인데 측은한 생각도 든다.

 

이들이 즐겨 쓰는 말 "위법은 아니다."

합법이라 말하지 않고...........

 

 

 

 

나지막한 산 몬당에 올라가면 이런 전망대와 풍경이 펼쳐진다.

 

익산은 1995년 이리시(裡里市)와 익산군이 통합하여 익산시가 되었으며,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이 통과하는 철도교통의 중심지로서 호남지역 교통의 요충지로 성장했다고 하는데, 목포는 항구이듯이 익산은 여전히 익산인데, 이게 축복일지 저주일지는 시간이 답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