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 섬진강

광의초등학교- 광의국민학교

아미고 Amigo 2019. 8. 21. 12:06


이별을 하기 위한 길을 나섰습니다.

저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그 양반께는 허전함과의 이별이고...

우리 부부에게는 여름과의 이별 길이었습니다.

 

고광섭 교장 공적비

 

이 분이 제겐 장인이시고, 제가 막내 사위입니다.

무슨 대단한 공적이 있어서 이런 공적비까지 세워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나들이의 주제가 이거여서 첫 꼭지로 올립니다.

 

 

 

 

 

정문과 후문

세상은 피눈물나게 진솔하기도 하고...웃기조차 역겨운 코미디가 펼쳐지는 마당 같습니다.
살다보면 별의별 일들과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교 건물

 


광의학교는 참 큰 학교였습니다.  게다가 건물이 2층이었거든요.
우리 나라 최초의 국민학교인 교동국민학교가 1894년에 개교되었고, 시골 학교인 광의국민학교가 1920년에 개교되어, 내년이면 개교 100주년이라니 놀랍습니다.


토끼하고 입맞추고 다니던 중동학교 학생인 제게는 놀랍고 부러운 것이었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촌놈이 기가 죽어서 보는 것도 제대로 못보고, 안 보는 척 하면서 힐끔힐끔 보았었지요.


제 기억으로는 중앙교, 광의교, 청천교 그리고 용방교(?) 정도가 2층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제 기억일 뿐이니, 사실을 바로 잡는 것도 중요하려니와 추억과 향수를 공감하는 말씀들을 고대하겠습니다.

그 시절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학교(특히 초등학교)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왜 계셔야 했는지, 그런 현상을 구현한 생각의 단초가 자유로운 발상(또는 창의력)을 키워주려는 생각 보다는, 그들을 정당화하고 또 그들의 가치기준을 주입하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기념식수 소나무

옛날엔 운동장이었던 곳이 "자연 생태 학습장"으로 변해버렸고...2007년 4월 1일에, 광의국민학교 29회 동창회에서 기념식수를 하신 소나무인데...저는 이렇게 희귀한 소나무를 광의학교에서 처음 보았는데, 금송인가 셍각됩니다.

 

대강 제 띠동갑 선배님들 안목과 식견과 열정이 부럽습니다.

 

 

 

 

 

 

 

 

 

 

 

 

 

 

 

 

 

 

 

 

 

 

 

 

 

 

체육시설

아시다시피, 운동장이라는게 일제 군국주의의 연병장에서 비롯된 식민문화의 잔재라는 말도 있지만, 어쨌거나 제 세대는 운동회를 열었던 운동장의 추억이 빠질 수 없습니다.

운동회는 학생들만의 축제가 아니라 , 지역공동체 모두의 축제였으니까요.

 

 

 

 

 

멋진 농구장인데, 바닥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소재를 깔았더군요.

체육과 보건과 관리행정의 조화를 몰랐을까요, 아쉬움이 조금 남네요.....

 

 

 

 

 

 

 

옛모습

공북에서 양쪽으로 있는 대나무밭을 올라와 동남방향으로 펼쳐지는 울타리인데...

옛날엔 이 곳부터 엄청나게 큰 플라타나스(?) 나무들이 아름답기도 하고 위압적이기도 한 모습으로 울타리를 치고 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다만 추억과 회상만 있을 뿐이고, 울타리 밑바탕의 돌담은 옛모습 같습니다.

 

 

 

 

 

학교 후문에서 공북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모습이 많이 변했습니다.

학교 관사에서 살았던 제 그 양반은 친구들을 교정에 붙잡거나 아니면 공북과 연파리로 가야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었다는데.....

 

노는 거야 누구라도 즐겁지만, 어둑한 시각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 언덕길을 지나가야 하는 게 어찌나 무서웠던지 가히 지옥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교장 관사

제 장인 (고) 고광섭 교장이 새파란 나이에 광의학교 교장으로 부임해서, 말도 안되게 15년을 재직하셨으니 제 장모님 또한 새파란 나이에 "사모님"이라는 호칭이 무척이나 당혹스럽고 부담스러웠다고 회상하셨습니다.

 

그 분의 막내딸인 제 아내는 이 관사에서 태어나, 학교에 입학해서 45회로 졸업을 했으니, 당시 사회상으로도 웃음이 절로 터지는 해프닝들이 많았던 곳이고, 밤이면 뒷켠에 있는 대밭 댓잎들의 사삭거리는 속삭임이 무서워 화장실 갈 때는 누군가를 꼭 대동했다고  했고 .....

 

여기 오니까 그 양반 무척 신났네요.

여기엔 뭐를 심었고, 저기엔 뭐를 심어 가꿔고, 닭과 토끼는 어쩌고 저쩌고.....

 

그저 회상의 생각일 뿐인데...

왜 이런 추억의 회상이 삶의 추동력이 될까요.....

 

제 기억으로는 광의학교는 지리산 아래의 명문학교이고.....

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학교로 기억하고 또 기억될 것으로 믿습니다.

 

 

 

 

 

 

 

 

 

당신은 5남매를 두셨고, 제가 막내사위지만, 가슴을 연 대화는 저하고 제일 많이 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때도 이동근무기준이 있었을텐데 왜 그리 광의학교에 15년씩이나 계셨어요? 했더니, 그건 내 선택이 아니라 학부모들이 교육청에 탄원을 하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지 내 맘대로 한 건 아니여.....

 

재임 중에 학생들 학업성적도 많이 올렸지만, 이런 저런 돈 쓰는 일들도 많이 하셨던데, 두렵지는 않았어요?

사심이 없었기에 추호도 두럽지 않았고, 돈 쓰는 건 지역 대표들께 맏겼고 그래서 주민들의 호응을 얻었던 것 같다.

 

당시의 사회 상황으로, 행정관청에서도 건드리기 어려운  상수도 문제를 학교만 해결하면 되지, 왜 지역까지 확대를 하셨어요? - (요즘말로) 인프라는 갖추어지는데 그걸 모른 척 외면하는 건 소위 식자의 양심이 아니었다.

 

더 해보고픈 소망이 있으세요?

집 하나 예쁘게 지어보고싶다.

 

저도 그런 집을 지어가며 삽니다.

 

저는 아웃-사이더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려고 애썼지만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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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의초등학교는 1920년에 개교하여 지난 2020년이 개교 100주년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기념행사를 미루다가 2022년 10월 9일 한글날에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었다고 합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