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주변

운현궁(雲峴宮)

아미고 Amigo 2012. 1. 27. 21:01

 

삼한사온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고, 내일 모레면 벌써 입춘이 다가오니 그간 기승을 부리던 추위도 머잖아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날 것 같습니다.

 

운현궁에는 봄이 얼마나 왔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운현궁 약도

 

운현궁은 종로구 운니동 114-10 번지에 있으며, 면적은 9,413㎡인데, 당초의 모습은 현재의 덕성여대는 물론 삼환기업까지 모두 운현궁이었다니 그 규모가 제법 컸던 것 같습니다.

 

운현은 구름"운"에 고개"현"이니 우리말로 한다면 "구름재" 또는 "구름고개"일 것 같고, 대원군의 사가에 "궁" 자를 붙여준 것은 대원군의 둘째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기거하였던 집이라 하여 운현궁이라 했다는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모두 다 "궁"에서 태어났는데, 왕들의 "궁"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재미있는 것은, 이 운현궁을 대원군이 직접 지은 게 아니라 당시 왕가의 제일 위 어른인 조대비가 지어서 대원군에게 선물을 했다는군요.

 

사연인즉, 고종이 등극하고 이제 대원군이 칼자루를 쥐었는데 당시 세도가문이었던 안동 김씨 세력을 숙청하지 않고, 대신에 엄청난 돈을 조대비에게 정치자금으로 바치게 했고, 조대비는 이에 대한 답례로 대원군에게 운현궁을 선물했다지요.

 

이런 걸 "정치"라고 한다던가... 뭐라던가.....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현재 남아있는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모두 다 늙은이 "노"자가 들어가 있는 것인데, 아마도 대원군이 노후의 편안한 삶, 즉 왕가의 무탈을 이렇게 당호로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운현궁 외부 담장

 

 

 

운현궁 입구

 

 

 

 

노안당(老安堂)

 

대원군이 사랑채로 쓰던 건물로, 갖은 고생과 우여곡절을 헤치고 아들을 왕위에 올려놓았으니 이제 늘그막에 이 집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것이라 하여 노안당이라 했답니다.

 

 

 

노락당(老樂堂)

 

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이 기거하던 안채로 운현궁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라고 하며, 대원군과 부대부인이 늘그막에 안락하고 즐겁게 살 집이라 하여 당호를 노락당이라 하였답니다.

 

하지만 노락당은 한 때 고종이 머문 곳이라고 비워두고, 노락당 뒷편에 새로 이로당을 지어 부대부인은 주로 이 이로당에서 머물렀다 합니다.

 

 

 

 

이로당(二老堂)

 

대원군과 부대부인 두 늙은이가 지낼 집이라 하여 이로당이라 하였다 하며, 안방마님의 집인지라 ㅁ자 형태로 사방이 부대 건물로 막힌 구조입니다.

 

 

 

 

왼쪽의 명성황후가 그의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가운데 부대부인의 사랑을 받는 모습

 

 

 

왼쪽의 부대부인이 오른쪽의 조대비에게 수라상을 올리는 모습

 

 

 

노락당 외부 모습

 

 

 

이로당 내부 모습

 

 

 

이로당 외부 모습

 

 

 

운현궁 내부 모습

 

 

 

운현궁 내부 모습

 

 

 

내 멘토의 "제기차기"

 

 

Tip

 

대원군(大院君)이라는 호칭은 임금이 대를 이를 자손이 없을 때, 방계(傍系)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고, 그 왕위를 이어받은 왕의 아버지에게 붙여주는 호칭이라 합니다.

 

대원군은 자하문(창의문) 밖 지금의 부암동에 있던 안동 김씨(김흥근) 소유의 석파정(石坡亭)이 마음에 들어, 우여곡절을 거쳐 그걸 갖게 되었고, 훗날 그 석파정의 사랑채를 뜯어다가 세검정 앞에 다시 조립을 한 것이 지금의 석파랑(石坡廊)이라는 궁중요리 중심의 고급 한정식 집 별관이라고 하며, 원래의 석파랑은 현재는 서울미술관의 일부로 관리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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