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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 장군
윤관(尹瓘, ?∼1111, 파평 坡平) 장군은 장군이라는 호칭 때문에 무관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문종(文宗, 고려 11대 왕, 재위 1046∼1083)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른 문관으로 여진족 정벌에 대한 병권을 부여받아 여진족을 정벌한 공로 등으로 공신(功臣)이 된 고려 최고의 명장으로 묘역은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산 4-1에 있다.
윤관 장군의 묘
나는 이렇게 화려하고 웅장하고 위엄이 있는 묘는 처음 보았다.
우선 봉분 앞에 있는 석물(石物)들에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능원묘(陵院墓)에도 시대에 따라 기준이 있었을 테고 현존하는 동구릉, 서오릉, 서삼릉 등 왕릉에도 석물들은 대체로 석상(石床), 망주석(望柱石), 장명등(長明燈), 문석인(文石人), 무석인(武石人), 석양(石羊), 석호(石虎), 석마(石馬) 정도이고 곡장(曲牆)은 흙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강화도에 있는 고려 왕릉인 석릉(碩陵), 곤릉(坤陵), 홍릉(洪陵), 가릉(嘉陵) 그리고 고양에 있는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恭讓王)의 공양왕릉(恭讓王陵)과 바로 옆에 있는 최영(崔瑩) 장군의 묘와 비교를 해봐도 윤관 장군의 묘는 난해할 정도로 파격(破格)의 묘 같은 게 왕릉보다도 석인(石人)이 더 있는데 이런 석인 배치는 능원묘를 망라해도 처음 본다. 이건 아마도 당초에는 의문의 석인(동자석과 문석인?)을 세웠는데 나중에 묘역을 단장하면서 문.무석인을 추가하여 석인이 넷이나 되는 기이한 모습이 연출된 것 같은데 이 대목에서 과유불급이 떠오른다.
왜 이렇게 파격의 묘역이 조성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소견으로는 호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발현된 소산이라 생각된다. 고려시대에 이런 묘역을 조성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고, 조선조(朝鮮朝)에 와서 1764년(영조 40년)에 윤관의 유해가 확인되어 봉분과 묘역을 조성했다는데 조선왕조 선왕들의 능보다 더 화려한 이런 능을 조성했을리만무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이렇게 단장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안내문(또는 설명문)에서도 윤관 장군의 공적과 벼슬에 대한 이야기만 장황할 뿐 묘역 조성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것이 아쉬우며, 명장들의 묘역을 단장하면서 왕릉보다도 더 우대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봉분과 석물들
봉분은 왕릉에서 볼 수 있는 난간석은 없지만 병풍석은 있으며 석인 중에서 맨 앞의 동자석(?)은 처음 보는 것이고 그 다음의 석인은 문석인(文石人)으로 보이는데 나중에 문석인과 무석인을 추가한 것으로 보여 문석인이 중복되는 기이한 모습이며 의문의 석인이 2개나 더 있으며 석상(石床?)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무덤은 능, 원, 묘로 구분되는데, 능(陵)은 왕과 왕후(황제와 황후)의 무덤을, 원(園)은 왕의 부모 그리고 왕세자와 왕세자빈(황세자와 황세자빈)의 무덤을 일컬으며 나머지 무덤은 모두 묘(墓)다.
또한 생전의 업적 등을 새긴 신도비(神道碑)를 세웠는데, 도로사정이 열악하고 운반수단이 우마차에 불과했던 시절에 대형 석물(石物)을 만들어 세우는 일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큰 일로 돈도 많이 드는 등 폐단이 많아 왕(王)도 자제를 하며 정2품 이상의 관료로 제한을 했음에도 신도비는 수없이 많다고 한다.
전망
앞의 전망은 이렇게 시원하여 명당이라는 느낌이 절로 드는데, 사실 명당이라는 게 살아있는 자의 관점이어서 사리에 부합하는 면이 많은 것 같다. 농경시대에 만들어진 명당의 기준이 북풍한설을 막아주는 산이 뒤에 있고 농사지을 물이 앞(남쪽)에 있는 배산임수(背山臨水)가 당연했을 것이고, 여기서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左靑龍 右白虎 南朱雀 北玄武)로 나가면 영락없이 새의 둥지와 같은 형국이니 살기 좋은 곳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나머지들
공양왕릉 그리고 윤관 장군과 최영 장군 묘
죽음의 이야기이자 무덤 이야기다.
부자들이나 모를까 이제는 무덤도 사라져가는 세상에 무덤 이야기라니 떠오르는 두 개의 무덤이 있다.
진시황릉(秦始皇陵)과 타지마할(Taj Mahal)이 바로 그것인데, 중국 서안(西安)의 진시황릉에 영면하고 있는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와 인도 아그라의 타지마할에 영면하고 있는 황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제가 뭐라도 하나 배워가려고 한국에서 이 먼 곳까지 왔는데, 한 말씀 해주세요.” 했는데 아무 말씀이 없더라.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에 묻혀 지내는데 어느 날 카톡이 날아왔다.
“존재하고 있을 때 존재의 의미를 찾고 존재의 값을 하셈...”
존재의 방식은 누구나 시간 위에 존재하지만, 더러는 기억 속에 존재하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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