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주변

창경궁(昌慶宮) & 주목(朱木)

아미고 Amigo 2023. 5. 20. 21:50

(사진은 클릭하면 커집니다.)

함인정(涵仁亭) & 숭문당(崇文堂)

운현궁의 봄을 보러 갔다가 낙선재가 궁금하여 창덕궁을 거쳐 창경궁까지 갔다.

 

궁을 얘기하자면 궁문과 정전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겠지만 나는 창경궁에서는 함인정과 숭문당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대문사진으로 올린다. 함인정은 ()에 흠뻑 젖는다는 뜻으로 사방이 시원하게 트여있으며 다양한 용도의 잔치와 행사 등에 사용되었다고 하며, 숭문당은 왕의 경연장으로 많이 사용되었다는데, 인에 흠뻑 젖는다는 涵仁과 경연(經筵)이 오묘하다.

 

인에 흠뻑 젖을 정도로 인내하려면 한없이 많이 들어야 했을 텐데 최고 권력자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고 경연 또한 고명한 신하로부터 유학강의를 듣는 공부였으니 이것 또한 상당한 스트레스였을 것 같다.

 

 

 

 

 

 

창경궁 전경

홍화문을 거치지 않고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드나드는 함양문(咸陽門)을 통해 들어가서 바라본 춘당지 쪽을 제외한 창경궁 전경이다. 명정전을 기준으로 동쪽으로 지금의 서울대병원 지역에 봄을 가득 머금은 함춘원(含春園)이라는 동산이 있었다는데 흥화문의 위치를 보면 아리송해진다.

 

 

 

 

 

 

명정전(明政殿) - 국보 제226

창경궁은 경복궁과 창덕궁을 보조하는 궁으로 지었기 때문에 중요한 전각들이 전통격식으로부터 자유롭게 남향이 아닌 동향으로 지어졌으며 전각 등의 배치와 공간도 비교적 자유로운 느낌이어서 화순의 운주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군주제 나라에서 최고 권력자인 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무척 편하고 좋기도 했겠다고 생각하지만, 조석으로 왕실 어른들께 문안인사, 경연과 공부, 신하들 접견, 사초(史草)를 쓰는 사관(史官)들 눈치봐가며 권력을 두고 신하들과의 밀당, 상소문처결, 독살을 걱정해가며 12첩 반상의 식사에 간식까지 먹고 운동이나 낮잠 잘 시간도 없고, 밤에도 할 일이 있으니 조선왕조 왕들의 평균수명이 47세라는 게 이해가 된다. 황희 정승은 89세까지 살았는데 말이다. 왕이라는 직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아주 고달픈 직책이었던 것 같다.

 

 

 

 

 

 

관천대(觀天臺) - 보물 제851

명정전 오른쪽 남쪽에 관천대가 있으며 관천대 주변에 나무들이 제법 있어서 정원 같은 느낌인데 세월을 짊어진 예쁜 나무들도 있어서 이 숲을 잠시라도 앉아서 즐겨볼 수 있는 벤치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북쪽 정원

춘당지로 가는 길목에도 이런 숲이 있다.

 

 

 

 

 

 

경춘전(景春殿) & 환경전(歡慶殿)

 

 

 

 

 

 

통명전(通明殿) & 양화당(養和堂)

통명전은 보물 제818호이며, 기록에는 이 건물 뒤에는 후궁들의 거처였다는 집복헌(集福軒)과 왕의 침전 겸 서재였다는 영춘헌(迎春軒)이 있다고 하는데 영춘헌은 사라진 것 같다.

 

 

 

 

 

 

풍기대(風旗臺) - 보물 제846

풍기대 쇠꼬챙이의 끝에 천을 매어서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했다는 것인데 아래에 있는 스페인 세비야대성당의 풍향계(히랄디요 Giraldillo: 이슬람풍의 여인상)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성종태실 및 태실비(成宗胎室 胎室碑)

 

 

 

 

 

 

춘당지(春塘池)

벚꽃도 져버린 춘당지는 이런 모습이지만 가을에 단풍이 곱게 들면 뭇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주목(朱木)

명정전 뒤에 있는 주목은 이렇게 앙상한 모습으로 허리가 휘도록 모진세월과 창경원(昌慶苑, 19091986) 시절까지도 잘 견뎌내서 해설사들보다 더 알콩달콩한 이야기들을 더 많이 알고 있을 텐데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구화지문(口禍之門)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인당수(印塘水)에 심청(沈淸)이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