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그곳 - 진동계곡

아미고 Amigo 2020. 7. 15. 08:03

진동계곡

 

나 내일부터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그러고선 김용옥의 책과 말콤의 책을 사가지고 와서 배낭에 챙겨 담았다.

 

사실 말콤에게 내가 낚인 셈이다.

역사의 뿌리가 다르니 당연히 문화의 차이는 존재할 수 밖에 없고, "타인의 해석"이 달콤하고 매혹적인 마케팅으로 호기심 많은 나를 유혹했던 것 같다.

 

그래도 살다보니 어느 새 나이가 제법 계급장 또는 권위(?)가 되어버렸는데, 이거 내가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지만 긍정과 부정이 갈등하는 세상이고, 도덕 윤리 관습의 전통과 변화 사이에 낀 샌드위치라는 생각도 든다.

 

연애시절까지 합하면 4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을 함께 소통하며 살아온 아내가 문득 생경하고 낮설어지는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 말콤의 "타인의 해석"에 웬만큼 담겨있으리라 기대했다.

 

역시나 말짱 도로묵이고 우리 문화의 기본 중 하나인 겸양지덕(謙讓之德) 하나 복습했다.

세상엔 시공을 초월한 불변의 법칙 같은 진리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서울 - 양양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2시간 반 정도면 진동계곡에 다다른다.

그래왔듯이 큰 길이 뚫리면 큰 길의 주변이 잠겨버려서 진동계곡도 비교적 조용하다.

하지만 코로나의 여파가 이곳에도 미치는 것 같다.

 

 

두물머리

 

본류인 왼쪽의 방태천과 오른쪽의 아침가리계곡의 두 물이 만나는 두물머리(어떤 사람들은 두물머리는 양수리에만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이고, 이 두물머리는 두 계곡의 세찬 물이 내리꽃히면서 자연스럽게 깊은 소가 형성되었었는데, 보시는 것처럼 산천도 인걸도 의구(依舊)하지 못한 것 같다.

 

소견머리 좁은 내 생각에는 물만 둘이 만나는 게 아니라, 은하수의 흐름까지도 함께 하는 마음의 두물머리가 있는 것 같더라.

 

산천과 인걸의 이 대목에서, 백호 임제 선생의 황진이에 대한 "청초 우거진골에"와 평양의 명기 한우(寒雨)에 대한 연가 "복창이 맑다거늘" 에 대한 한우의 답가가 "어이 얼어 자리, 무스 일 얼어 자리"로 이어지는 호탕함이 언제부터 왜 그렇게 남녀 불문하고 좀삭하게 사그라들었는지 시간이라는 여우가 야속하다.

 

사람을 보는 관점이 평등과 계급의식 그리고 암수의 사랑이 상부상조인지 일방의 정복과 소유인지에 따라 인류애적 관점과 마초의 관점이 갈리는데, 그건 각자가 선택하는 것 같다.

 

나만 행복할 것인가 아니면 너만 행복할 것인가, 함께 행복할 것인가.

그런데 정작 행복이란 무엇일까.....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에 비옷을 입고 애견과 함께 산책을 하는 젊음은 역시 활기차고...

 

서울에서는 후덥지근하던 날씨가 이곳 진동계곡에 오니 선선하다 못해 바람이 불면 추워서 윈드-자켓을 입지 않으면 밖에 앉아있기가 곤란한 지경이니 물 속에 풍덩 들어간다는 건 생각도 못 할 형편이었다.

 

방동약수에서부터 걷기 시작하여 아침가리계곡을 걸어온 등산팀들이 수백명은 되어 보인다.

 

 

 

 

 

야영풍경

목요일(9일) 저녁에는 모두 철수해버리고 달랑 나 혼자 남아있으니 조용한 건 좋은데, 조금 허전하더라...

 

 

 

 

진동계곡 마을 풍경

 

진동계곡(鎭東溪谷)은 인제군 기린면(麒麟面)에 있는데, "기린"이라는 지명이 매우 독특하다.

키 큰 동물 기린(麒麟)과 같은 글자인데, 기후나 지형으로 보아 기린이 살았을리 만무고, 이 지역의 산들이 기린의 다리나 목처럼 우뚝 솟아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일까 생각해보았다.

 

산골의 밤은 길다.

평일 기준으로 벌써 6시면 인적이 끊어지기 시작하고 8시면 집안의 불도 꺼진다.

 

산골도 사회인데 왜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가 없겠는가?

하지만 그 색깔이 부드럽고 또한 가면을 쓰는 시간도 도시에 비해 담백한 것 같다.

 

행복한 삶이다.

남의 시선에 맞춘 사회적 삶보다 자신의 양심에 따른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조용한 곳들이 요즈음 관심의 대상인 것 같지만,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뭔가를 포기하거나 희생해야하는 사회구조와 타협과 갈등을 하며 살아가는게 인생인지 모르겠다.

 

 

 

 

 

안말(안골마을)

평지 보다는 제법 높은 산자락에 있는 이 마을은 여름이면 안개가 덮였다 벗어졌다를 반복하는 게 일상이고, 마을 안에는 펜션도 두어개 있는데, 찾는 사람이 있나 보다.

 

 

 

 

소나기가 쏟아질 때는 이 정자에서 비를 피할 수 있어서 좋다.

 

 

조선생님과 최선생님으로부터 맛있는 닭죽 안주에 술을 얻어먹었는데, 답례 제대로 됐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