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에

인생 제5막

아미고 Amigo 2019. 7. 25. 21:19





연극에는 장()과 막(幕)이 있어서, 시간을 스킵하거나 등장인물을 교체하기 위하여 조명을 어둡게 하는 장()이 펼쳐지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공간을 이동하기 위해서는 커튼(막:幕)을 내려서 무대장치를 바꾼 후 계속 진행된다.


흔히 삶을 긴 여행과 마라톤에에 비유하기도 하고 연극에 비유하기도 해서, 우리의 삶에도 장막(場幕)이 있는 것 같다.





근래에는  내 인생의 제5막이라는 주제를 붙들고 실랑이를 하고 있다.

그래서 블로그도 외면하고 있었다.




제1막은

병역의무를 마치고 사회의 신병이 되어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했던 때였고...


제2막은

공직자이셨던 아버지께서 서울로 이사를 하시는 바람에, 장남인 나는 당연히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도 서울로 와야 했기에, 서울에서 2번째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양반과 나 사이의 사랑을 잘 가꾸어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며 허니문을 즐겼고, 아이들을 키워 사회에 진출시켰던 시절이었고...


제3막은

직장의 산하 법인격인 작은 법인에 존폐문제가 결부된 문제가 있음에도 책임자(실질적인 CEO)가 공석이어서 내가 그 자리를 맡아 모든 문제를 정리하고 나서, 이제부터는 편안한 날들이려니 했는데, 갑자기 아내가 또 다시 암수술을 해야 해서 명예퇴직을 하기까지였고...


제4막은

아내의 수술과 치료가 웬만큼 정리되어, 내가 사업체를 하나 꾸려 평생 월급을 받기만 하다가 거꾸로 월급을 주는 사장을 몇 년간 하던 중, 정권이 바뀌고 경제금융정책이 바뀌면서 내 사업과 충돌이 예상되어 사업을 정리하고, 매일이 일요일인 백수로 지내면서 두 아이의 혼사를 치르고 살림을 차려준 것까지 같다.




제5막은

이제부터 살아갈 삶이다.





사실 변화는 불확실한 것이고 더러는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삶을 하나하나 정리해가며 살아가야 하는 나이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제5막이라는 새로운 삶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첫째는 아이들과 손주들과의 물리적 거리의 문제다.

나는 내 아이들이 결혼 후에도 내 생활주변에 살게 하고 싶었고 또 그렇게 살아왔는데, 딸아이의 아이가 유치원에 갈 때가 되자 남편의 출퇴근까지 고려하여 분당으로 이사를 했고, 얼마 전에 아이를 얻은 아들녀석 또한 육아문제 때문에  며칠 전에 군포로 이사를 했다.


나도 그렇지만 아내의 가슴이 갑자기 휑해지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 양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하고 통화를 하거나 카톡으로 곰살스런 얘기들을 고주알미주알 해가며 살아왔는데, 거리가 멀다고 통신이 안될까만은, 거리라는 공간이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영국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모양이다.



둘째는 내 집 자체의 문제이다.

결혼 전에 둘이서 부모님 집 옆에 꼬막껍데기 같은 단독주택을 장만하여 신혼살림을 시작한 후 지금의 집으로 딱 한번 이사해서 31년을 살아왔는데, 살면서 집을 새로 지었지만, 세월이 흐르니 지금은 구옥이 되어 유지관리비가 많이 들어간다.


살면서 나이 들어가니, 간섭하는 것도 싫고 간섭받는 것도 싫은 단순한 삶을 지향하게 된다. 또한 유동성이 극도로 높은 서울살이의 40년을 딱 한번 이사하고 살았다는 게 보통 사람들에게는 거짓말이지만, 나는 내일의 행복보다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았고 또 그렇게 살고 싶다.





인생 제5막의 결론은 내 아이들과 손주들 가까이로 내가 다가서기로 한 것이다.



우리 집 팔고 이사하자는 말에 그 양반은 당혹감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그럴 것이, 이 집 설계부터 건축과 관리까지 내 영혼이 담긴 집이기에 내가 여기에서 삶을 마감하리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얘기이고 또 그 양반은 사실 일종의 상실감에 아이들 가까이로 다가서고 싶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우리 이사하면 어떻겠어요?" 하는 말에, 첫 대답이 "어디로요?"였다.

이사는 동의하지만 가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는 얘기렸다.


"아이들은 세상을 헤쳐가야 하지만 우리는 정리해가야 하는 처지니, 아이들 가까이로 우리가 다가가야 하지 않겠어요?" 했더니 생각 모드다.

그러나 인간은 영악해서 언제나 계산을 하게되고, 덧셈의 계산과 뺄셈의 계산을 한다.




세상사 정말 다이내믹하다.

내 맘대로 안되기도 하지만 더러는 행운의 천사가 창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오늘은 내 건강검진을 했고...


내일은 요즘 마음이 허기진 그 양반의 아버지가 세월을 초월하여 담담히 서 계시는, 그 양반이 천진난만했고 행복했고 자신만만했던 그 양반의 아버지 모습을 살펴보며 그 양반이 삶의 활력을 새롭게 찾기를 바라는 여정에 오른다.




또한 화엄사 사사자석탑에 새겨진 이은상 시인의 시를 새롭게 음미해볼 요량이고, 손으로 은어를 잡았던 섬진강도 살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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