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에

홀로 떠나는 돌아오지 않는 여행

아미고 Amigo 2018. 10. 11. 21:27


어머니께서 다시는 돌아오시지 못할 먼 여행길을 홀로 떠나셨다.

이 세상에 오실 때 홀로 오셨듯이 그렇게 말이다...

 

이 세상에 오실 때는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오셨지만,

돌아가실 때는 외롭게 통한의 눈물과 땅이 가라앉는 것 같은 깊은 슬픔을 남기고 떠나셨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세상에 오는 것은, 보통은 삼신(三神)할머니의 점지로 온다고 하는데, 석삼자의 삼신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고 그저 태()를 보호하는 할머니로 옥황상제를 보좌하는 할머니 정도로 자리매김되어 있는데, 땅에 기대어 살던 시절에 만들어진 얘기이니 삼신할머니는 아마도 땅을 지칭했을 것으로 짐작되니, 생명은 땅()으로부터 왔다는 것으로 생각되고 현대과학의 생각과도 밀접한 관계 같다.

 

죽음은 "돌아가셨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돌아간다는 말은 왔던 곳, 즉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말이니,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일게다.

 

우리 문화의 바탕인 한자문화권의 천자문(千字文)의 시작은 하늘천따지로부터 시작하며 그 뜻은 하늘은 검으며 땅은 누렇다.”는 것이고, 죽음을 일컬어 또 다른 표현으로 황천(黃泉)으로 간다.”고 했으며 황천은 땅 아래 지하세계를 의미했으니 생명의 시종(始終)은 땅, 즉 흙이었던 것 같다.



누구라도 떠나는 여행길이지만 그래도 조금 더 우리 곁에 머물러 달라고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더 해줄 것이 없을 때 남는 것은 역시나 눈물과 회한밖에 없는 것 같다.

 

그 여행길이 삶의 여행처럼 설레고 기쁜 길인지 아니면 깊은 슬픔과 회한과 더불어 고통이 동행하는 길인지 또 아니면 기쁨과 슬픔이 함께 어우러진 담담한 길인지 세상에 그 누구도 지금껏 얘기해준 사람이 없었고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고, 행여 고통이 있을세라 그 고통이 작아지거나 없어지도록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함께 동고동락하며 오래 산다는 것.

무한한 축복임에 분명하다. 다만 더러는 축복이 아니라 고통인 경우도 있다.


삶을 잘 살피며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얘기다.

더불어 행복한 삶도 있고 아무런 의미 없이 아픔만을 나누는 삶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소통이든, 소통에 의한 공감이 없는 공존은 생존일 뿐 공생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존엄사, 그것도 적극적인 안락사를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내 생각이 짧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나 자신 그리고 내 삶의 거미줄에 얽힌 사람들의 의미 있고 행복한 삶에 유익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세상에는 안타까운 일들이 너무 많다.

내 아버지는 겨우 환갑을 넘기시고 장남인 내가 36살에 돌아가셨고, 장인.장모님은 장수는 하셨지만 치매와 더불어 돌아가셨고, 어머니 또한 치매가 깊어지면서 여러 합병으로 돌아가셨으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의 감상들을 소통해보지 못했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 생각도 들지만, 반면에 삶을 정리하는, 그래서 그 삶으로부터 또 새로운 삶의 배를 띄우는 미로의 열쇠를 공유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미루어 짐작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의 난리 통의 19살에, 23번이나 선을 본 내 아버지의 24번째 선에 의해 혼인하여 20살에 나를 낳아서 나는 끝 나이가 어머니와 동갑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얼굴도 못 뵌 할아버지 삼형제 중에 맏이셨던 할아버지 그리고 7남매의 맏이셨던 아버지그 아버지의 6남매의 맏이로 내가 장남으로 태어났으니 당연히 내 아버지 어머니는 무척 행복하셨을 것 같다. 당시의 풍속으로 말이다.

 

그렇게 축복 속에 태어나서 장남의 호사(?)를 누렸지만 동시에 샌드위치가 되어,내 나훈육되어진 대로 짐을 많이 짊어지고 살아왔지만, 이제 동생들이 모두 불혹을 넘기고 있으니, 보고 듣고 경험한 게 너무 많아서 유식이 넘쳐도 너무 넘치니, 내 얘기 따위는 그저 잔소리일 뿐이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이다.

우리 육남매의 시각도 이 속에 혼재되어 있고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하다.

 

첫째는, 삶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현실이 전부이고 죽음의 세계는 아무것도 없다는 과학적 생사관이고, 다른 생각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것으로, 영혼이 사는 천당과 지옥이 있다는 생각이지만 현실 세계로 다시 올 수는 없다는 세계관이며, 같은 사후관이지만 생전의 삶의 결과에 따른 인과응보로 현실 세계의 무한한 삶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영원회귀설로 내가 과거에 살았던 삶을 무한 반복하며 산다는 것인데, 내 여섯 형제자매들의 생각도 이 중의 어딘가에 담겨있다.


나는 니체의 영원회귀설을 좋아한다.

그의 논리에 혹해서가 아니라 현실의 삶과 현실 너머의 삶을 모두 아우르기 때문이다.

내 삶의 행적에 불구하고 신의 심판에 따른 사후 세계는 내게 너무 자존심 상하고 부도덕한 세계이고, 생과 사가 반복된다 할지라도 더 나은 다음의 생을 위한 현실의 삶이 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내 삶에 무슨 힘이 됐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나니 몸도 마음도 모두 소진(Burn out)돼버린 것처럼 녹초가 되었다.

꼼지락거리는 것 조차도 귀찮아서 몇 날 며칠을 누워서만 뒹굴었더니 허리에서 신호가 온다.

이제 그만 일어나서 꼼지락거리라고.....

 

에스파냐 쪽으로 세찬 바람 쫌 쐬고 ...

생각들을 정리해봐야겠다.

 

 

이렇게 삶의 한 단락을 마무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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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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