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문화

영화 도쿄타워(그리고 어머니...)

아미고 Amigo 2017. 7. 16. 05:22

새벽에 굵은 빗줄기가 한바탕 쏟아졌고...

비 때문인지, 아니면 어제 사나사계곡에서 너무 과로했던 것인지...

하여간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과일 주스만 한잔씩 마시고 길을 재촉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해 세뇌되어진 선입견과 제한된 정보에 의한 인식의 편향성 때문인지...

"도쿄타워"에 대한 시놉시스를 각시 들으시라고 낭독으로 읽고서도 특별한 감정 없이 집을 나섰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원작은 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라고 한다.

 

 

"나의 첫사랑, 그리고 마지막 사랑, 어머니"

 

일본의 산업화가 속도를 내던 시절에, 주인공 마사야(오다기리 죠 분)는 탄광촌의 방탕한 아버지와 지극히 평범한 어머니를 부모로 두고, 매일이 그 날이 그 날 같은 불우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다.

 

난생 처음으로 집을 떠나 중학교에 진학하고, 가정에 무책임한 아버지를 대신 해, 많은 뒷바라를 어머니가 해주었고, 마사야는 그렇고 그런 중학생활과 고등학교 그리고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한다.

 

별볼일 없는 대학을 별볼일 없이 졸업하는 데에도 어머니의 도움으로 졸업을 했고, 어머니는 아들의 대학 졸업에 대해 평생 자부심을 갖고 살지만, 정작 본인은 취업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취업과 실업을 오락가락하며, 아버지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인지 방탕한 생활로 점철된다.

 

그러는 중에 어머니는 암으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는 중에 아들 마사야는 정신을 차리고 고군분투하지만,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살고있는 아버지는 가끔씩 서로가 부부이자 가족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줄 뿐 서로에게 짐도 도움도 안된다.

 

병이 깊어진 어머니를 도쿄로 모셔오고, 창 너머에 도쿄타워가 보이는 병실에서 도쿄타워를 어머니와 함께 바라보면서, 언젠가 함께 가자고 하면서 둘이 환하게 웃는다.

 

이 도쿄타워에는 시간이 겹친다.

마사야가 꼬맹이였던 시절에 본 아빠의 사진,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찍은 아빠의 사진을 보면서 마사야는 도쿄타워를 동경하게 되었는데, 정작 본인은 도쿄생활을 하면서도 한번도 올라가보지 못한 도쿄타워를 어머니와 함께 올라가 보고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랜 투병생활로 체력이 고갈되어 항암치료를 포기하게 되고, 아들과 함께 도쿄타워에 올라가는 그 소소한 행복도 외면한채 남편과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요나라"를 고한다.

 

이 영화에서 "아빠"라는 존재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나는 아빠를 살펴보았다. 아들 마사야에게 삶의 항해도를 건네주었고, 가족에게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지만 필요할 때는 있었고, 부부의 관계는 둘 만이 아는 것 아니겠는가.....

 

주섬주섬 장례를 치르고, 마사야는 난생 처음으로 도쿄타워에 오른다.

지금도 친구인지 애매한 옛 여자친구를 도쿄타워에서 만난다.

그리고 그 여자친구에게 어머니가 남기신 편지를 전하고는 독백하듯이 말한다.

 

"사요나라는 무슨 사요나라, 우리는 지금도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만나면서 살아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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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고, 한 순간도 마음 편한 때가 없는 그런 영화였다.

그렇다고 어느 순간에 울음이 탁 터져버리지도 않지만, 관객이 가슴 애잔한 아픔에서 한 순간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절제된 감정의 표현과 생략의 맛이 절묘하게 조화된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영화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엄마와 아들에 액센트가 주어졌을지 몰라도, 가족과 사랑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완성도가 매우 높은 영화라고 생각된다.

 

몇 개의 생각을 해보았다.

 

우선 시대적 배경으로 산업화의 명(明)과 암(暗)이다.

 

런던을 필두로, 산업화는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농촌의 사람들을 도시로 빨아들였고, 사람들은 그 도시에서 성공을 잡아보겠다고 부나비처럼 몰려들어, 인간군상의 모든 것들이 펼쳐지는 조절과 통제가 되지 않는 괴물로 성장해왔다.

 

그 명암은 우리가 이미 보았고 느꼈고 예견하고 있는 것 그대로이다.

 

다음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설명이 필요없이 어머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도 근간에 와서는 변해가는 것 같다.

 

또 하나는 가족이라는 끈이다.

 

가족이라는 끈이 뇌세포 속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가족이라는 끈은 참으로 대단하다.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사랑하면서도 미워한다.

무관심하지만 관심있고, 안보지만 보고있다.

영원히 사랑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끈을 놔버리기 전까지는...

 

마지막으로 사랑이다.

 

가족과 혈연 밖의 사랑은 역시 배가 불러야 한다.

드물게는 배고픈 사랑도 있고, 사랑해서 사랑하는 사랑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