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누군가를 만나러 마산에를 가고 싶었다.
가겠노라고 연락이라도 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며 아예 내려가지도 못하게 털어버릴 분이니, 아예 1박 2일이나 2박 3일 계획하고 무작정 내려갔었다.
"선배님, 제가 부산에 볼 일이 있어서 왔다가 일 모두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려는 참인데..... 여기까지 왔다가 선배님도 안보고 가버리면 필경 "괘씸죄"에 걸려 불원간에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 당연지사일테니 잠시 뵙고 가야겠습니다" 했더니.....
역시나... "어허... 이걸 어쩌나... 내가 모임이 있어서 밖으로 멀리 나와 있는데..."
"괜찮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마산에 있는 친구 얼굴도 보고 정담이라도 나누고 있을테니, 선배님 편하신대로 오늘이든 내일이든 연락만주십시오." 그랬더니.....
"내가 졌소. 2시간 후에 내 사무실에서 만납시다."
그래서 2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마산에 고향 친구나 학교 친구는 없고, 조직 선후배들이야 많지만 그분들 괴롭히고 싶지는 않고, 생각해보니 문득 "국립 3.15민주묘지"가 생각났다.
터덜터덜 쉬엄쉬엄 약 30 - 40 여분을 걸어서 묘역에 도착했다.
국립 3.15민주묘지(國立三一五民主墓地)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544-1 (3·15성역로 75)
이승만 독재정권 하에서 1960년 3월 15일 치러진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1960년 3월 15일과 같은 해 4월 11일 마산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희생된 시민·학생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된 묘지이다. 구암동 산 92번지 3만8,721평 부지에 묘역과 주차장, 기념관, 상징조형물, 유영봉안소, 편의시설 등으로 이루어졌다. 국가보훈처가 관리를 맡고 있다.
1968년 마산시 구암동 애기봉에 1,200평 크기의 묘역을 만들고 1969년 1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3·15의거 희생자 묘 13기를 이장하면서 묘지가 조성되었다. 1998년 3월부터 3·15성역공원 조성공사가 시작되고 2003년 3월 15일 준공식이 열렸다. 준공에 앞서 2002년 8월 1일 대통령령 제17668호에 따라 3·15성역공원이 국립3·15묘지로 승격되었다.
국립묘지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6년 1월 30일부터 국립3·15민주묘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모두 4개 묘역에 80위를 안장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으며, 2006년 5월 현재 26위가 안장되어 있다. 안장대상은 3·15의거 때 사망자와 3·15의거 때 부상당한 뒤 사망한자, 3·15의거 유공건국포장 수상자로서 사망한자 등이다.
묘역은 쉬는 날 없이 매일 개방되지만 기념관의 경우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기념관 영상실에서는 3·15의거의 배경과 과정, 의미 등을 알리는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김주열 열사(金朱烈 烈士) 묘
김주열 열사
3월 15일 1차 의거에 이어, 4월 11일 그 동안 행방불명 되었던 김주열(전북 남원 출신으로 당시 마산의 친척집에서 마산상고에 재학중) 군이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의 시체로 마산 중앙부두에서 떠오르자 격분한 시민들이 다시 2차 의거를 일으켜 피흘리며 싸웠습니다. 이 항쟁에서 12명이 사망하고 250여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거나 체포 구금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산시민과 학생들의 자연발생적이고 의로운 투쟁에 대한 경찰당국의 가혹한 탄압은 전 국민들로 하여금 슬픔과 분노를 불러 일으키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는 곧 부정선거 다시 하라. 구속된 마산 학생 석방하라는 구호와 함께 4 ·19로 이어져, 드디어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함으로써 민권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자유 · 민주 · 정의가 기본 정신인 3.15마산의거는 현대사에 있어 최초(?)의 민주 ·민족운동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으며 또한 민족 평화 통일운동으로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그 도도한 물결은 4 ·19혁명, 부마민주화운동, 6월항쟁, 5.18민중항쟁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진행형으로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국립3.15민주묘지 홈페이지의 상세한 자료를 참조 바람)
약속시간이 거의 다 되어 10분 전쯤 그 분의 사무실 앞에서 서성거릴 요량으로 내려가다가 그 분을 길에서 맞닥뜨렸다. 그 선배는 올라오시고 나는 내러가다가.....
사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그 선배께서 왈... 왜 그 쪽에서 내려왔냐고 하시길래.....
묘역에 좀 다녀왔다고 했더니..... 그럼 그 묘역에 무슨 연고라도??? 하셨다.
연고야... 선배님이나 저나 모두 그 분들께 빚진 게 있으니 연고가 있는 것 아닌가요?
그나저나 그 때 그 시절 선배님은 아마도 학교에 다녔었지요?
중학생이었어요. 그 가슴 아픈 이야기는 그만 합시다.
그러시지요. 가슴 아픈 얘기는 그만 하고.....
머리 아픈 공장(조직) 얘기도 하지말고 술이나 한잔 사주세요.....
김주열 열사 가족 사진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양 선비문화탐방로(정자문화탐방로) ..... 화림동계곡 (0) | 2015.11.11 |
---|---|
산청 동의보감촌 (2) | 2014.11.03 |
통영 청마문학관 & 이순신 공원 (0) | 2014.08.11 |
통영 박경리 기념관 (0) | 2014.08.07 |
불영사(佛影寺) & 사랑바위 & 왕피천 (2) | 2014.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