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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드 퐁파두르

아미고 Amigo 2007. 7. 24. 11:58

 

*****「권력과 욕망(마거릿 크로스랜드 著)」을 중심으로 ***** 

 

여기 3명의 여인이 있다.

젊어 방탕한 생활을 했고, 이제 아름다운 딸을 내세워 부귀영화를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슴까지 창백해진 어미와 갓 아홉살 난 다갈색 머리와 꿈꾸는 듯한 청록색 눈동자가 아름다운 잔-앙투와네트. 

 

그리고 파리의 내로라 하는 여인네들조차 그녀의 점괘를 듣기 위해 진귀한 보석을 아낌없이 내어 놓는다는 점술가 마담 르봉. 

 

탐욕스런 어미에게는 우주의 역사와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서서히 점쟁이의 입이 열린다.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한 마디가 이 소녀, 잔-앙투와네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이 소녀는 장차 왕의 애첩이 될 것이다." 

 

19년 동안 루이 15세의 정부로 군림하며 프랑스 정치의 핵심에 선 여인, 마담 드 퐁파두르는 그녀의 가는 새끼발가락에 이 혹독하고 아름다운 운명의 실을 매고 세상으로 나왔다. 

 

만약 그녀가 미모와 색을 앞세워 왕의 곁에 머물렀던 정부였다면, 역사에 숱한 그렇고 그런 여인으로서 묻혀 버려 오늘날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마담 드 퐁파두르는  "왕에게 상납되어질 운명" 을 타고난 여인답게 범상치 않은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흔히 우리가 로코코 양식으로 부르며 루이 15세 시절 프랑스를 넘어 유럽을 지배했던 우아하고 섬세한 예술 양식은 사실 마담 드 퐁파두르 양식으로 불러야 맞는 말이기도 하다.


예술에 남다른 조예가 있었으며 한갓 애욕이나 권력욕이 없었으며 희대의 사상가인 볼테르, 그 시절을 풍미했던 화가 푸셰 등 예술과 사상계의 별들의 뮤즈가 되었던 여인.


그녀는 볼테르와 함께 유명한 저서  "백과전서"를 편찬했고, 아직도 프랑스의 자랑이 되는  "프랑스 사관학교"를 건립하였다. 또한 변덕스런 루이 15세의 치세에서 혁신적인 사상가와 예술가들을 그녀의 치마폭에 감싸 안아 완벽하게 보호하였다.

 

 

왕의 정부였던 그녀가 불감증이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뛰어난 여배우이기도 했던 그녀는 왕의 침대에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르가슴을 연기해야 했지만 루이 15세는 그녀의 불감증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왕의 사랑은 식지 않았고 심지어 그들 사이에 더 이상 육체관계가 없던 말년의 세월 동안에도 왕은 베르사이유 궁전에 마련된 그녀의 방을 없애지 않았다. 43살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그녀는 멸실공히  "왕의 여자"였다.

 

정부, 그것도 왕의 정부가 더 이상 육체관계가 없이도 그 이름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마담 드 퐁파두르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섬세한 감각, 루이 15세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랑, 예술과 이상에 대한 남다른 조예, 깊은 학식에서 배어 나오는 자연스러운 인품, 화려하고 아름다운 용모.....


이 모든 것이 그녀가 왕의 여자에서 왕의 친구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바꿀 수 있게 해주었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녀가 딸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병으로 세상을 뜨자, 루이 15세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색욕이 넘쳤던 왕은 늘 젊은 아가씨들을 가까이 두고 있었으나 그 아가씨들은 마담 드 퐁파두르처럼 베르사이유 궁전에 입궐할 수 없었다. 왕인 줄도 모르고 찾아오는 남자를 맞았으며 임신을 하면 출산을 해 아이를 빼앗긴 후 막대한 지참금을 받고 사랑도 없는 결혼을 하여 심심한 일생을 살다 갔을 뿐이다. 

 

그들 중 몇몇은 빼어난 용모로 마담 드 퐁파두르의 자리를 위협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왕의 애정을 함부로 과시하거나 독차지 하기 위한 과욕으로 일찌감치 권력의 무대에서 퇴장해야 했다.


마담 드 퐁파두르가 19년 동안이나 한결같은 왕의 신임을 받으면서 권력의 정점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현명한 처신과 조심스런 행보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19년동안 왕의 곁에 있으면서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왕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짧은 말 속에 그녀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다. 그녀의 사랑, 그리고 그녀의 욕망, 왕을 "사랑"하고야 말았다면 그녀는 아마도 이삼년 동안의 짧은 절정을 누리다가 역사의 막 뒤로 쓸쓸히 퇴장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녀는 왕을 "사랑했고 또 사랑하지 않았기에" 몇백년을 뛰어 넘어 지금 우리 앞에 서있다. 

 

어느 짓궂은 악평가는 그녀가 죽은 후에 쓸 묘비 문구를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고 한다.

 

20년은 처녀로,
15년은 창녀로,
7년간은 '뚜쟁이' 였던 여인.
여기에 잠들다.

 

 

예쁜 아가씨로 성장하던 20년, 그리고 왕과 함께 침대를 쓰던 15년, 왕의 방에서 물러나 예쁜 아가씨들을 물색해서 왕의 침대로 보냈던 7년을 지칭한 듯 하다.

 

루이 15세의 애첩으로서 19년간 베르사유궁을 지배했던 마담 드 퐁파두르.
양귀비나 장희빈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삶은 '왕의 여인'이라는 야사의 영역에 머물렀다.

 

그러나 여성이 사회에 진출할 수 없었던 근대 이전, 능력 있는 남성을 유혹하는 일은 여성에게 가장 ‘정치적’인 일이었다.

 

 

정부(情婦)
mistress
남자의 마음을 지배하는 여자............................................

 

 파리의 몽마르트 ('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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