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동구릉(東九陵)과 태조 이성계 그리고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아미고 Amigo 2023. 1. 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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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와 조선왕릉

조선은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 1335∼1408)에서부터 마지막 제27대 왕 순종(純宗, 1874∼1926)까지 519년 동안에 42기의 능을 남겼는데 남한에 40기 그리고 북한에 2기가 있으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를 2009년에 조선왕릉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했다고 한다.

 

조선왕릉이 밀집된 곳으로는 동구릉(東九陵. 사적 제193호), 서오릉(西五陵, 사적 제198호), 서삼릉(西三陵, 사적 제200호)이 있으며 나머지는 이릉과 단독 능으로 조성되어 있다.

 

동구릉에는 왕릉에 있는 정자각 중 보물로 지정된 3채의 정자각이 있는데, 태조의 건원릉 정자각과 명성왕후의 숭릉 정자각 그리고 선조와 의인왕후 및 인목왕후를 함께 모신 목릉 정자각이란다.

 

 

 

 

 

 

홍살문

 

 

 

 

 

 

재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태조 이성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과 역성혁명(易姓革命)”에 있을 것 같다. 명나라와 고려 간에 분쟁이 있는 요동(遼東)을 정벌하라고 출병을 시켰는데, 위화도(압록강 하류)에서 말머리를 개성으로 돌려 고려왕조 474년의 막을 내리게 하고 이씨 조선왕조를 열었으니 말이다.

 

말머리를 돌리려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단 말이냐? - 王侯將相寧有種乎(왕후장상영유종호)”라고 했던 진승(陳勝, 기원전?∼기원전 208년)의 말을 생각했을까? 그리고 휘하의 장졸들에게는 회군하는 이유나 명분을 뭐라고 했을까? 또한 이성계의 회군을 막아섰던 노장 최영 장군(崔瑩, 1316∼1388)도 명장이고 회군했던 이성계 장군도 명장이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역성(易姓)은 성씨를 바꾼다는 것인데 여기에다 혁명(革命)을 붙여 “역성혁명”이라고 했는데 언제 누가 이런 용어로 역사를 정리했을까......

 

역성혁명이라고 역사정리를 해서인지 그 뒤에도 이런 형태의 명장들은 또 나왔다. 박정희 장군과 전두환 장군 말이다. 앞으로도 그런 명장이 또 나올까.....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현릉

 

 

 

 

 

 

14대 선조와 의인왕후와 계비 인목왕후의 목릉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휘릉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

 

 

 

 

 

 

20대 경종의 비 단의왕후의 혜릉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원릉

 

 

 

 

 

 

 

23대 순조의 세자인 익종과 신정왕후의 수릉

 

 

 

 

 

 

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경릉

 

 

 

 

 

 

국립서울현충원의 터줏대감 창빈 안씨 & 유명조선국

신도비(神道碑)는 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환조의 정릉(북한소재)과 이성계의 첫 부인 신의왕후의 제릉(북한소재)을 시작으로 조선 초기에 세우다가 제5대 문종의 현릉부터는 신도비 대신 표석을 세웠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도 신도비 하나 세우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 백성들의 불편을 감안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도비 하나 세우려면 대리석 또는 오석을 찾는 것에서부터, 소와 말 밖에는 동력(動力)이 없었던 시절에 엄청난 크기의 돌덩이를 운반하는 일은 그야말로 대역사(大役事)여서 많은 백성들이 동원되고 그에 따른 비용도 막대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묘갈과 묘비 그리고 묘표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유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왕의 신도비는 제4대 세종을 끝으로 중단되었지만, 추증(追贈)을 포함한 정이품(正二品 : 정헌대부와 자헌대부 : 판서, 참찬, 한성판윤) 이상의 관직을 지낸 사람들의 신도비는 수없이 많다고 하며, 신도비는 사자(死者)의 묘로(墓路), 즉 신도(神道 : 신령이 지나가는 길)인 무덤 남동쪽지점에 남쪽을 향하여 세운 비석으로 묘 주인공의 관직과 업적 등 삶을 기록한 비문이라고 한다.

 

제11대 중종의 후궁이자 국립서울현충원의 터줏대감인 창빈 안씨(昌嬪安氏, 14991549)”의 묘에도 신도비가 있는데 신도비의 글이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으로 시작되는데 많은 신도비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며, 그 뜻의 해석을 두고 갑론을박 할법한데, 하나는 “명나라에 있는 조선”으로 봐서 속국으로 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선의 통치이념인 “성리학”이 명나라의 것과 같다는 의미 같은데, 오늘의 영광이 훗날 치욕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오늘의 치욕이 훗날 영광이 되기도 하는 것이 세상사 같지만, 당시에 명나라의 눈치를 보는 것이나 지금 미국과 중국 눈치를 보는 것은 마찬가지 같다. 어쨌든 나는 국립서울현충원에 가면 꼭 창빈 안씨의 묘에 들러 예를 드린다. 이분의 손자들이 15대(?)에 걸쳐 조선의 왕들이었으니 말이다.

 

시간은 요술쟁이어서 시절따라 관습과 관행도 변해간다.

 

 

 

 

서울 강서구 개화산에 있는 풍산(豊山) 심씨 심수경(沈守慶, 1516∼1599)의 신도비(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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