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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후원 입구
다른 고궁들은 휴무일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지만 창덕궁후원은 내가 찾아가야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꽃피는 봄과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의 성수기에는 입장권 구하기가 로또 당첨 수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창덕궁후원은 1405년에 태종이 창덕궁과 함께 건립하였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0년에 광해군이 재건하였다고 한다.
아주 옛날에 울릉도를 3번 도전한 끝에 다녀왔는데,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는 창덕궁후원을 4번이나 도전해서 다녀왔다. 처음에는 운현궁에 갔다가 후원까지 가려고 했더니 표가 매진되어버렸고, 두 번째는 맹하게도 월요일인 것도 모르고 갔다가 창덕궁과 창경궁을 한 번 더 돌아보았고, 세 번째는 일찍 간다고 갔는데도 또 표가 매진되어버렸으니 온라인은 까맣게 잊고 오프라인 마인드만 있었으니 확실히 할배와 할매였다. 네 번째는 인터넷 예매를 하고서야 갈수 있었으니 창덕궁후원이 울릉도보다 더 멀고 어려운 곳이다.
부용지(芙蓉池)와 주합루(宙合樓) 일대
맨 먼저 맞닥뜨리는 부용지 일대에는 주합루(宙合樓), 어수문(魚水門), 서향각(書香閣), 희우정(喜雨亭), 천석정(千石亭),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 영화당(暎花堂), 부용정(芙蓉亭) 그리고 춘당대(春塘臺) 등이 있으며, 부용지의 물은 바닥에서 샘솟는다고 하고 서쪽 계곡의 물이 용두(龍頭)의 입을 통해 들어오기도 한다는데 그 용두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왕들이 주합루와 부용정을 가장 많이 사용했을 것 같은데 보물 제 1763호인 부용정의 “부용”은 아욱과 무궁화속이라고 하는데 부용정의 부용은 연꽃을 의미한다고 하며 7∼8월이면 연꽃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연꽃처럼 아기자기하게 공을 많이 들인 정자다. 부용지의 둥그런 섬은 하늘을 뜻하고 사각형의 연못은 땅을 의미한다고 하니 천지인(天地人) 운운하는 생각이 반영된 것 같다.
내규장각이었던 규장각의 책들은 지금은 서울대규장각에 보관하고 있으며 외규장각은 강화도의 고려궁지에 있다. 서향각에서는 왕비들이 누에치기도 했었다니 그 시절에도 전시행정(展示行政)을 했던 모양이고, 춘당대에서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임시 과거인 춘당대시(春塘臺試)를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부용지와 주합루의 설명 중 재미있는 표현이 하나 있다.
“연못에 앞발을 담그고”라는 표현인데, 재미있는 표현 아닌가.....ㅎ
애련지(愛蓮池)와 의두합(倚斗閤) 일대
애련지 일대에는 애련지와 애련정(愛蓮亭), 의두합과 운경거(韻磬居) 그리고 불로문(不老門) 등이 있다. 의두합은 효명세자의 공부방이었다는데 현판은 기오헌(奇傲軒)이라고 되어있고, 애련지는 역시 연꽃으로 이름값을 하며, 불로문을 드나들며 늙지 않기를 바랐던 모양인데 요즈음엔 백세인생 바람이 불면서 늙음 예찬론이 한창인데 제대로 늙어나보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늙으면 서러운 거라던데.....
이쯤에서, 나는 내 아이들에게 북한산 백운대를 올라봐야 하고, 남산 서울타워를 올라가봐야 하며, 한강 유람선을 타봐야 하고, 예술의전당 오페라 홀을 가봐야 하고,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을 올라가봐야 비로소 서울특별시민의 자격이 있는 거라고 했는데, 여기에 창덕궁후원을 최우선으로 추가해야할 것 같다.
연경당(演慶堂) 일대
연경당은 이름이 시사하듯이 경사스러운 연회와 잔치를 위해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전형에 따라 건립한 것이며, 선향재(善香齋), 농수정(濃繡亭), 장락문(長樂門), 장양문(長陽門), 수인문(修仁門), 통벽문(通碧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대략 120칸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장락문(長樂門)과 농수정(濃繡亭) 그리고 고목(古木)
장락문은 오래도록 즐겁게 살며 드나들자는 문 같고, 농수정은 공주(?)들이 수(繡)를 놓았던 정자라며, 긴 세월을 버티고 있는 고목도 있다.
존덕정(尊德亭) 일대
존덕정 일대에는 이중처마로 한껏 멋을 낸 육각형의 정자인 존덕정이 존덕지(尊德池)에 있는데, 존덕정에는 깨알같은 글씨를 빽빽하게 쓴 정조의 편액이 걸려있지만 누가 그걸 제대로 읽어내는지 모르겠고, 지붕이 부채꼴 모양인 관람정(觀纜亭)이 반도지(半島池 또는 관람지 觀纜池)를 바라보고 있으며, 건너편에는 승재정(勝在亭)이 있고, 왕세자의 독서당으로 쓰였던 폄우사(砭愚榭)도 있다.
창덕궁후원의 가을은 바로 존덕정 뒤편에 있는 은행나무의 금빛 찬란한 단풍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며, 옥류천(玉流川)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오는 소요암(逍遙巖), 소요정(逍遙亭), 청의정(淸漪亭) 등의 옥류천 일대는 공사 중이었고, 신선원전(新璿源殿)은 비공개라는데, 원서동 빨래터에서 담 너머로 보이는 곳이다.
정조( 正宗 , 조선 제22대 왕, 1752∼1800)의 야심찬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는 글이 바로 이 존덕정에 있으며, 하늘의 달은 하나지만 만 개의 냇물을 비춘다는 것으로 하늘의 달은 바로 정조 자신이라는 말이라니 왕조시대의 군주로써 당연하기도 했겠지만 자신만만했던 모양인데, 47세에 승하했으니 쓸만한 사람은 하늘에서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관람정(觀纜亭) & 관람지(觀纜池 또는 반도지 半島池) 그리고 승재정(勝在亭) & 폄우사
관람지(반도지)에 있는 관람정은 부채꼴 모양으로 심플하면서 호방한 모습이며 관람지의 이명이 반도지인 것은 일제강점기에 이 연못에 변형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승재정은 연경당에서 존덕정으로 넘어가는 나지막한 언덕에서 관람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승재정(勝在亭)과 폄우사(砭愚榭)
창덕궁후원에만도 의두합과 폄우사 2개의 공부방이 있었는데, 머리 좋은 왕자는 재미있었을지 모르지만 고통스러운 왕자도 있었을 것 같다. 유학이 특히 암기 일변도여서 머리 나쁘면 난감한 일인데, 글공부만이 아니라 세상사 대부분이 머리 나쁘면 일정 수준에서 답보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는 거 같더라. 이해 암기 그리고 창의력이 부족하니...
뽕나무와 친잠례(親蠶禮)
수발 드는 사람들은 일자리는 얻었겠지만 고단했을 것이다.
영춘문(永春門)
창경궁에서 후원으로 드나드는 문.
창덕궁후원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해설사를 동반한 제한관람이 원칙이지만, 봄가을에 관람객이 많을 때는 해설사가 동행하지 않는 자유관람도 병행한다.
1회의 관람인원은 100명까지이며, 50명은 현장발매하고 50명은 인터넷 예매를 한다. 관람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소요되며 후원 내에는 부용지 지역에만 유일하게 화장실이 있다.
관람시간표 & 입장료
창덕궁후원이 최고라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래봤자 백담계곡과 무릉계곡 그리고 뱀사골계곡 등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궁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이 탁 트이는 산소 같은 공간이었을 것 같고, 그 시절에는 역마살(驛馬煞)이 끼었다고 하면 액운 중에 액운이었을 텐데,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서 지금은 역마살이 행운인 세상 아닌가......
권력과 돈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행복의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조건임에는 분명하니 권력의 핵심인 궁에 들어가려고 별의별짓을 다했고 백악관에 들어가려고 별짓들을 다하지만, 세상은 넓은데도 그 울타리 안에 갇혀 사는 인생이고,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면 모두가 일장춘몽일까.....
지금 같은 지구촌 시대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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